내가 어려울 때 기대가 되였주었고, 내 자존심을 상하지 않게 배려해주었으며, 내 말을 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손금보듯 알아주던 친구 철수, 그와 헤여진 지 어느덧 서른 해가 되여 간다. 그 친구를 떠올릴 때마다 그 때의 잊지못할 일들이 마치 어제 일처럼 눈앞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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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려울 때 기대가 되였주었고, 내 자존심을 상하지 않게 배려해주었으며, 내 말을 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손금보듯 알아주던 친구 철수, 그와 헤여진 지 어느덧 서른 해가 되여 간다. 그 친구를 떠올릴 때마다 그 때의 잊지못할 일들이 마치 어제 일처럼 눈앞에 선하다. 더보기……
그때는 내가 교원사업을 시작 한 지 얼마 안되는 30대 초반의 시절이였다. 그 시절 반주임들은 청명절과 추석명절이면 학생들을 데리고 렬사기념비를 찾았다. 경모의 마음으로 기념비를 위문하고, 소선대 입대식이나 초청보고가 있을 때면 그곳에서 모였다. 학생들은 흰 대복에 붉은 넥타이를 매고 엄숙한 표정으로 대례를 올렸다. 혁명선렬들의 희생을 마음 깊이 새기는 듯 했다. 더보기……
시어머님의 그 '불호령'은 나를 외롭게 내버려 두지 않으려 했던 웃세대 어른들의 사려깊은 사랑이였음을... 이제 나는 그 사랑의 빚을 갚기 위해 내 손주들에게 그 '아름다웠던 불호령' 을 맘껏 이야기해주려 한다. 시부모님의 그 뜨거웠던 마음의 참사랑을 말이다. 이제는 그 참사랑을 내가 이어받아 후세대들에게 위대하고 아름다운 참사랑을 전하련다. 더보기……
어느덧 나도 칠십대 중반의 로년에 이르렀다. 비록 나이 탓에 많은 기억들은 희미해가지만 지금으로부터 47년 전 노을이 진붉게 물들었던 저녁무렵에 파출소 민경이 여덟시간만에 잃어 버렸던 나의 아들을 안고 우리 집 대문안으로 들어서던 기억만은 또렷하다. 그리고 그날의 주인공, 평생 잊지못할 어느 한 어르신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이 글을 통해 세상에 알리고 싶다. 더보기……
며칠 전, 연길에서 보낸 택배 한 상자가 도착했다. 친구가 보내준 조선족 전통음식이 가득 담겨 있었다. 전화할 적마다 나는 빠짐없이 친구에게 부러움을 표시하군 한다. 다른 건 몰라도 연길에서 조선족으로 산다는 것 자체가 복받은 일이라고 말이다. 얼마나 많은 입맛 돋구는 음식들이 연길에 있는가? 친구는 그게 뭐 대수냐는 투로 심드렁하게 말한다. 더보기……
훈춘 시내 중심가, 아침 6시가 조금 넘은 시간, 아직 거리는 조용하기만 한데 ‘본죽&비빔밥’ 가게 안은 벌써 분주하다. 젊은 사장 구명화(35세)가 오늘 쓸 재료를 손수 골라내고 남편 리광일(37세)이 칼질을 시작한다. 두 사람이 이 가게를 오픈한지는 벌써 13년째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