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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이야기] 그 시절 시골의 별천지

안상근      발표시간: 2026-03-12 10:35       출처: 길림신문 选择字号【

◎현룡운

이미지 AI생성

요즘 도시의 밤하늘에는 별이 없다. 아니, 별이 없는 것이 아니라 별을 볼 맛이 없다. 가로등 불빛이 하도 많아 진짜 별이 설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네온싸인과 광고판 불빛이 밤을 낮처럼 밝히고 자동차 불빛이 끊임없이 흐르다 보니 사람들의 시선도 자연히 땅으로만 쏠린다. 하늘을 올려다 볼 마음의 여유부터 사라진 셈이다.

그래서인지 도시의 기억은 대체로 싱겁다. 밝기는 한데 깊은 맛이 없다. 별을 올려다볼 틈도 없이 하루가 지나가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50년쯤 전으로 돌아가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진다.

1970년대초 집체호 시절, 나는 처음으로 심산벽골 원경지 감자밭에 로동배치를 받고 올라갔다. 화룡현 덕화공사, 지금의 남평진 룡연마을에서 십여리 더 들어가는 골짜기였다. 그 골짜기 이름도 뒤골이라 불렀는데 낮에는 산들이 둘러싸 하늘이 좁아 보였지만 밤이 되면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감자농사를 처음 겪는 풋내기 농사군이였던 우리는 온종일 등굽혀 일했다. 새까만 부식토 먼지를 뒤집어쓰고 일하고는 해가 저물면 남녀가 갈라져 작은 오두막에서 잠을 잤다.

낮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감자밭 이랑을 따라 호미질을 하며 감자씨를 박아 넣었다. 이랑을 따라 허리를 굽힌 채 같은 동작을 수없이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등에 땀이 흥건히 배여 옷이 몸에 달라붙군 했다.

그 감자밭에는 나와 함께 집체호에 내려온 녀동창도 있었다. 소꿉시절부터 시내에서 같은 학교를 다니던 사이였다. 서로 새삼스레 친해질 것도 없는, 그렇다고 멀지도 않은 그런 사이였다. 낯선 심산골에서 그녀는 나에게 가장 익숙한 얼굴이기도 했다.

땀범벅이 된 나를 보면 그 친구가 슬쩍 아무말 없이 수건 하나를 내밀군 했다. 얼굴이며 목덜미에 흙과 땀으로 범벅된 나를 보고는 살짝 웃으며 닦으라는 눈짓을 했다. 나는 괜히 멋적게 웃으면서 그 수건으로 얼굴을 훔치군 했다. 수건에서는 해볕에 말린 천냄새와 함께 어딘가 정겨운 냄새가 났다.

점심때가 되여 밭머리에 둘러앉아 '단체식사'를 펼칠 때면 그 친구는 늘 자연스럽게 내 옆자리에 와 앉았다. 특별히 약속한 것도 아니 었는 데 늘 그렇게 되였다. 우리는 서로 반찬을 조금씩 나누어 먹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고향 이야기, 학교 이야기, 그리고 별것 아닌 롱담 같은 것들이었다.

그 친구는 그 곳에서 나에게 가장 가까운 말동무였다. 하루 종일 고된 로동속에서도 가끔 눈이 마주치면 서로 웃어 주군 했다. 그 웃음 하나만으로도 이상하게 힘이 조금 더 나는 것 같았다.

낮에는 그렇게 감자밭 이랑 사이에서 함께 일을 했고, 밤이 되면 별이 가득한 하늘 아래에서 다시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 곳의 밤은 어둠이 내려 앉는 것이 아니라 별들이 하나,둘 나타나 하늘 가득히 채우는 시간이였다. 마치 별들이 밤 근무를 서러 출근하는 것 같았다. 하늘이 별로 꽉 차서 우리가 별 아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별 속에서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몸은 늘 지쳤지만 초저녁이면 나는 오두막 밖의 통나무에 앉아 쉬군 했다. 그러면 그 친구가 살짝 나와 내 옆에 기대여 앉군 했다. 특별히 할 말이 있는 것도 아니였다. 우리는 잠시 웃다가 조용해지고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군 했다.

그러다 내가 괜히 아는 체를 했다.

“야— 별들이 우릴 내려다 본다. 저기는 동쪽이고 이쪽이 화룡 쪽이고 저기 저기는 아마 동해 바다일걸…”

지금 생각하면 별들에게도 민망한 말이다. 별자리 하나 제대로 모르던 내가 괜히 큰 소리를 친 셈이다. 그러나 그때는 꽤 그럴듯하게 들렸는지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내가 가리키는 쪽의 별들이 마치 대답이라도 하듯 깜박깜박 빛났다.

그 관계를 련애라고 부르기에는 어설펐고, 그렇다고 혼자라고 하기에는 덜 외로웠다. 별빛이 외로움을 대신해주던 사이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나는 참 서툴렀다. 지금 같았으면 손이라도 잡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을 텐데, 내 어깨에 살며시 기대 앉던 그 마음씨 고운 녀자친구를 나는 어딘지 모르게 랭랭하게 대한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마치 밤하늘의 찬 별을 대하듯 가까이 있으면서도 괜히 거리를 두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때는 정말 그랬다. 서로 좋아하는 마음이 있어도 함부로 표현 할 수 없는 세월이였다. 악수 한 번도 제대로 못 한 채 서로의 눈빛으로만 마음을 전해야 했다. 우리는 말 대신 눈빛과 침묵으로 마음을 전하며 절도를 지켜야 했다.

매일 고달픈 로동을 끝내고 그 심산속의 별나라를 함께 올려다보던 열흘 남짓한 밤들이 있었다. 우리는 많은 말을 나누지는 않았지만 작은 속삭임들이 오가군 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말들이 아물아물하다. 다만 기억나는 것은 하나다. 그때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좋아한다”는 말까지가 한계였다. “사랑한다”는 말은 그 시절 우리에게 금기어와도 같은 것이였다. 너무 크고 조심스러운 말이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때 하늘에 떠 있던 별들은 이미 다 알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끝내 말하지 못한 그 한마디를 말이다.

집체호시절의 그리운 얼굴들

세월은 그렇게 흘러갔다. 집체호 생활도 끝나고 우리들은 각자의 길로 흩어졌다. 누구는 도시로 가고, 누구는 다른 고장으로 시집장가가고, 누구는 다시 만나지 못한 채 소식이 끊겼다.

엉뚱한 생각도 들었다. 친목회 하나를 조직해 볼까. 우리 집체호 시절의 옛 친구 할배 할매들을 한 번 모시고 그 삼산벽골로 가보는 이벤트를 조직 해 보는 것이다. 옛날 감자밭, 원두막이 있던 골짜기에서 하루밤쯤 지내 보는 것이다. 

친구 녀석들 모두 잠든 뒤 나는 살짝 밖으로 나와 통나무에 앉고, 그때 내 어깨에 살며시 기대 앉아 주던 그 녀자 친구도 어디선가 조용히 내 옆에 와 앉아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둘이서 아무 말 없이 다시 한 번 그때 그 별무리를 올려다볼 수 있다면?...

자칫하면 난리가 날지도 모르겠지만, 별을 생각하다 보면 그런 꿀잠같은 상상쯤은 해 보는 것도 괜찮다. 가짜 별천지로 도배된 도시에서는 그런 랑만을 찾기 어렵다. 밤 하늘이 전등과 네온싸인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별빛 아래 마음을 나누던 그 시절을 지금 사람들이 과연 알기나 할까.

오늘 밤도 나는 잠깐 하늘을 올려다본다.

혹시라도 오십 년 전 그 밤, 내 어깨에 기대 앉아 함께 바라보던 그 별 하나가 아직도 거기서 조용히 깜박이고 있을까 해서다.

그때 별 아래에서 싹 텄던 첫 사랑은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세월 속에서 사람들은 흩어지고 길도 달라졌지만, 그 밤하늘의 별들은 아직도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다만 우리가 바쁘게 살아오느라 한동안 고개를 들어 그 별들을 다시 찾지 못했을 뿐이다.어쩌면 그때 우리의 첫사랑은 별나라에서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현룡운 프로필 

현 중국조선어 정보학회 회장. 70년대 '하향지식청년'으로 6년 생활, 1980년대 대학 졸업 후 30년 넘게 조선언어문자 정보기술 국가표준 연구에 종사, 현재 력사기록들을 정리중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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