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흐밀 흐라발의 《너무 시끄러운 고독》 ◎ 심명주(시인)

체코 작가 보흐밀 흐라발의 경장편소설 《너무 시끄러운 고독》의 주인공은 한탸라고 하는 페지 압축공이다.
1인칭에 도합 8장으로 구성된 소설에서 앞의 첫 3개 장의 머리에 주인공 한탸는 “35년째 페지를 압축해왔다.”는 고백으로 시작한다. 그는 페지를 압축하는 일을 자신의 “온전한 러브 스토리”라고 말한다. 페지를 압축하고 나면 한탸는 “엄청나게 맥주를 마셨다.”. “내 손 밑에서, 내 압축기 안에서 희귀한 책들이 죽어가지만 그 흐름을 막을 길이 없다.”는 것이 그가 술을 마시는 리유다.
자신을 “상냥한 도살자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한탸, 그는 왜 이 일에 이토록 환멸을 느낄가.
책 내용을 보면 35년 동안 프라하 지하실에서 폐지를 압축하는 로동자로 살아온 한탸의 일은 겉보기엔 단순하다. 지상에서 쏟아지는 페지와 책들을 유압 프레스로 압축해 납작한 덩어리로 만드는 것, 하지만 한탸는 그 과정에서 결코 단순하지 않은 일을 벌인다. 그는 압축기에 밀려 들어오는 책들 사이에서 반짝이는 희귀본을 발견하는데그때면 그는 멈춰 서서 그것을 읽는다.
“나는 독서를 할 때 단순히 읽는 것이 아니다. 아름다운 문장을 입에 넣고 마치 사탕처럼 빨아들이거나 리큐어처럼 한모금씩 음미하며 생각이 내 안에서 알콜처럼 녹아들게 한다.”는 말은 한탸가 자신의 독서에 대한 묘사다.
수많은 귀중한 책들이 기계에 의해 거리낌없이 사라지는 현실, 그것이 환멸의 근원이다. 생계를 위해 그 일을 하면서도 한편 그는 페지 더미에서 끊임없이 사고한다.
하루 일과가 끝나면 그는 그중에서 구해낸 책들을 집으로 가져가 쌓아둔다. 그의 방은 책으로 가득차 천장까지 높이 쌓여 위험할 지경이다. 친구도 가족도 없이 그는 책 속의 철학자들의 말과 함께 살아간다. 헤겔, 칸트, 니체, 로자... 어느 누구도 그를 리해하지 못하지만 그는 결코 외롭지 않다. “내가 혼자인 건 오로지 생각들로 조밀하게 채워진 고독 속에 살기 위해서다... 영원과 무한도 나같은 사람들은 당해낼 재간이 없을 테지.”라고 그는 말한다.
과거에 그에게는 두번의 사랑이 있었다. 첫사랑 만차는 나치에게 끌려가 죽음을 맞았고 두번째 녀인은 그에게서 떠나갔다. 모든 것을 잃은 그는 책과 프레스, 그리고 맥주만을 벗으로 삼아 살아간다. 35년을 이렇게 버티며 살아온 것이다.
그가 일하는 곳은 혼자 있는 고독한 지하실이다. 하지만 그의 고독은 참을 수 없이 시끄러운 것이다. 유압 프레스가 ‘푸쉬’ 하는 소리, 물이 ‘보글보글’ 끓는 소리, 쥐들이 책장을 갉아먹는 소리, 그리고 그가 페지 속에서 건져낸 책들의 주인인 헤겔과 니체, 로자가 머리속에서 ‘웨치’는 철학의 함성... 그 모든 소리가 뒤엉켜 고독이라는 이름의 박잡한 화음을 만든다. 그러니 그의 지하실은 결코 조용하지 않다.
어느날 그는 거대한 현대식 자동 압축기가 있는 작업장을 방문한다. “깔끔한 작업복을 입은 청년들이 우유를 마시며 일하는 그곳”에서 한탸는 자신의 시대가 끝났음을 깨닫는다. 그의 오래된 수동식 프레스는 퇴역해야 했고 그는 일자리를 잃는다.
그는 자신이 구해온 모든 책들과 함께 마지막 선택을 한다. 자신의 몸과 책들을 프레스 안에 함께 넣고 버튼을 누른다. ‘도살자’이자 ‘수호자’였던 그는 결국 자신이 집요하게 지켜온 것들 속에서 스스로를 압축하며 이야기를 마친다.
글을 읽노라면 마치 한편의 시적인 고백같다. 주인공 한탸의 입을 통해 인용되는 수많은 사상가와 예술가들과 해후하게 된다. 작품 곳곳에서 구체적으로 언급되는 고흐와 고갱 등의 명화들... 이 명인과 명화들은 한탸가 스스로를 규정하는 방식이자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단어같은 것이다. 마치 그들 모두가 한탸의 묵묵한 삶의 빽이 되여 그 힘으로 다시 한탸는 자신 내면의 어떤 소리를 끌고 나가는 느낌이다. 당시 정치적 억압과 사회의 비인간화 속에서도 “생각하고 읽는 인간”의 존엄성을 포기하지 않은 한사람의 심지, 그런 것이 보인다. 실제로 소설은 1976년에 씌여졌지만 당시에는 발표할 수 없었으며 1989년에야 빛을 보게 된다.
소설에서 한탸는 소음 속에서 살았다. 그리고 결국 그 소음 속에서, 자신이 지켜온 책들과 함께 스스로를 압축하며 사라졌다. 지하실의 어둠 속에서 가장 밝게 빛났던 한 인간의 고독한 저항, ‘너무 시끄러운 고독’이라는 제목처럼 한탸의 지하실은 결코 조용하지 않았겠지만 그 속에서 가장 인간다운 순간이 피여났을 것이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은 체코 대중에게 령혼적인 인물로 추앙받는 작가 보흐밀 흐라발의 대표작이다. 체코 하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노벨상을 수상하여 세계적인 명성을 이룬 밀란 쿤데라가 떠오른다. 흐라발은 체코 대중들에게 쿤데라보다 더 사랑받으며 위상도 높다. 그 리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나라가 혼란할 때 모국에 남아 체코어로 작품을 구사하고 자신의 구체적인 삶의 공간을 통해 민족의 정체성을 깊이 각인시킨 작가였다는 것이 가장 큰 리유다.
밀란 쿤데라는 존재의 가벼움을 견딜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보흐밀 흐라발의 한탸에게 가벼움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의 삶은 너무나 무거웠으니깐. 35년간 프라하 지하실에서 페지를 압축해온 로동자, 그의 손은 책들을 납작하게 누르는 ‘도살자’의 손이였지만 그 손으로 희귀본을 건져내 입술에 대고 읽을 때 그는 가장 부드러운 ‘사랑군’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