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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이야기37] 내게 두번째 생명을 준 생면부지의 처녀

안상근      발표시간: 2026-06-23 11:54       출처: 길림신문 选择字号【

◎김성옥

나는 '기억과 망각'에 대해 이렇게 생각한다. 남에게서 받은 도움은 반드시 기억하고 내가 베푼 것은 잊어버리라는 것이다. 내 나이 올해 일흔셋, 나는 평생 이 말을 마음에 새기며 살아왔다. 오늘 길에서 807번 공공뻐스를 보자, 10년 전 생면부지의 그 한족 처녀 덕분에 두 번째 생명을 찾았던 순간이 생생히 떠올랐다.

2016년 봄의 어느 날 아침 9시쯤이였다. 마트에 가려고 자전거를 끌고 동네 골목길로 나섰다. 좁은 길이라 천천히 페달을 밟으며 앞을 보니 백 메터쯤 떨어진 정류장에 666번 공공뻐스가 서 있었다. 내가 그 뻐스 뒤까지 거의 도달했을 때 빨간 불이 깜빡였다. 출발 신호였다.

같은 방향으로 가는 뻐스가 출발하면 오른쪽으로 움직일 테니, 나는 자연스럽게 핸들을 왼쪽으로 돌리며 그대로 페달을 밟았다. 그런데 그것은 잘못이였다. 뒤에서 오던 807번 뻐스가 나를 덮친 것이다. 이 뻐스는 출퇴근 전용이라 작은 정류장은 그냥 지나치고 속도만 내며 달리는 차였다. 그날도 조금만 속도를 줄였더라도 사고가 나지 않았을 텐데  그 뻐스는 속도를 내면서 내 자전거 뒤편에 달린 아기 안장까지 그대로 걸어가버렸다.

순식간에 '팍' 하는 소리와 함께 자전거는 멀리 튕겨 나갔고 나는 그대로 땅에 나동그라졌다. 왼쪽에서 출발하려던 666번 뻐스 앞바퀴 옆 콩크리트 바닥에 심하게 머리를 부딪치고 의식을 잃었다. 터진 머리에서 흘러나온 피가 길바닥을 적셨다.

두 뻐스는 모두 멈췄고 승객들이 모두 내려와 둘러섰다. 길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였다. 사람들은 내가 666번 뻐스 앞에 누워 있으니 그 뻐스 탓인 줄 알았다. 807번 기사가 자신의 잘못을 알고 달려와 나를 일으켜 안았다.

그때, 생각지도 못한 귀인이 나타났다. 807번 승객 중 한 명인, 헬스코치라는 한족 처녀였다. 그녀는 차 안에서 사고 전말을 모두 지켜보고 뛰여 내려왔다. 후에 알게 된 일이지만 처녀는 체육중등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청소년 헬스장에서 코치로 일하며 위급 상황에 침착하고 단호하게 대처하는 훈련을 쌓았으며 응급 처치에도 능숙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런 재주가 많은 처녀가 그날 어쩌다가 내 곁에 있었던 것이 정말 신기할 따름이다.

그 처녀는 내 머리에서 흐르는 피를 개의치 않고 운전사 손에서 나를 받아 안았다. 그리고 내 코 아래 인중을 세게 눌렀다. 한 번, 두 번, 네 번쯤 누르자, 나는 '후―' 하는 깊은 숨을 내쉬며 간신히 눈을 떴다고 한다. 그때까지의 일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내가 눈을 뜬 것을 확인한 처녀는 다정하게 물었다. "이모, 깼어요? 제 말 들려요?" 그러고는 자기 휴대폰을 내밀며 가족 전화번호를 불러 달라고 했다. 그래야 병원에 데려갈 수 있다고 하면서 말이다. 나는 그 말은 알아들었지만 갑자기 말이 나오지 않았다. 처녀는 휴지로 내 머리의 피를 닦아주며 "이모, 급해하지 마세요. 천천히, 천천히..." 하며 계속 격려해주었다. 한참 뒤에야 겨우 정신을 차린 나는 딸의 전화번호가 떠올랐다. 그녀는 나를 안은 채 바로 딸과 통화하며 위치를 알려주고 빨리 오라고 당부했다.

마침 집에 있던 딸이 허겁지겁 달려왔지만 현장은 인파로 가득했고 120구급차가 다섯 대나 대기 중이라 쉽게 나를 찾을 수 없었다. 계속 처녀와 통화하며 겨우 나를 찾을때까지, 그녀는 여전히 나를 꼭 안고 있었다. 잠시 후 구급차가 다가오자 그녀는 의료진과 함께 나를 구급차에 실어주며 "이모, 잘 치료받으세요."라는 인사를 남기고 자리를 떴다.

아, 면목 모르는 한족 처녀! 마음씨 고운 그 처녀! 구급차에 실려 가면서도 나는 계속 그녀 생각뿐이였다.

응급실에 도착하자, 교통사고 위급 환자라 바로 전면 검사를 받았다. 주치의사는 딸에게 말했다. 머리 상처가 심했지만, 의식을 되찾은 것이 다행이고 더 잘된 일은 뼈에 이상이 없고 피를 많이 흘려 오히려 머리 안에 혈종이 적게 생겨 수술 없이 봉합과 보존 치료만으로 가능하다고 했다. 의사는 상처 주위의 머리카락을 자르고 일곱 바늘을 꿰맨 뒤 입원을 권했다.

난생 처음 입원하여 한 달간 치료를 받고 마침내 완쾌되여 퇴원했다.

생각만 해도 아찔했던 그 순간이 어제 일 같은데, 벌써 10년 세월이 흘렀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교통사고 후유증이 다시 올가 봐 늘 불안했다. 하지만 그 면목 모르는 한족 처녀 덕분에 그 걱정은 점차 사라졌고, 오늘까지 평안히 만년을 보내고 있다. 만약 그날 그녀의 신속한 응급 처치가 없었다면 내가 어떻게 그렇게 빨리 의식을 되찾고 딸에게 련락할 수 있었을지, 또 병원도 제때에 갈 수 있었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그리고 666번 뻐스 기사님에게도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시동이 걸린 상태에서, 내가 그 밑에 쓰러졌을 때 어떻게 그렇게 급정거하여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었는지 그저 감사한 마음뿐이다.

나는 이제 인생의 황혼길에서, 면목 모르는 고마운 분들의 이야기를 거울삼아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베풀며 살아가고 싶다. 고향 아닌 이곳에서 만난 다정한 친구들과 함께 전자 오르간도 배우고 태극권도 익히며, 흥겨운 삶의 멜로디가 저 산너머까지 메아리치길 두 손 모아 기도한다.

오늘도, 래일도, 파이팅!

김성옥 프로필

1954년생, 대학졸업, 북경에 거주.

연변작가협회 회원


编辑:안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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