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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전통의 향도계가 지켜온 상부상조의 장례문화

최승호      발표시간: 2026-06-23 13:47       출처: 길림신문 选择字号【

—장백조선족자치현 현성조선족향도계 탐방

l 마지막 길을 함께 지키는 사람들

지난 4월말의 토요일 오전이다.

“최도감이죠? 우리 어머니가 오늘 오전에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주소를 보내주십시오. 령구차를 보내겠습니다. 향도계 회원이시죠?”

“예, 맞습니다. 우리도 준비하겠습니다.”

전화를 받은 장백조선족자치현 현성조선족향도계(이하 장백조선족향도계) 총도감인 최창남은 곧바로 령구차를 련락하고 다른 두명의 도감을 불렀다.

잠시후 세 사람은 장백현조선족장례당에 도착해 가슴에 ‘도감’ 명찰을 달고 고인을 맞을 준비를 했다.

이윽고 령구차가 도착했다. 흰 장갑을 낀 세명의 도감은 조용히 고인을 랭장관에 안치한 뒤 그 둘레에 전통 병풍을 세웠다. 병풍 앞에는 음식과 술, 장명등을 갖춘 제사상을 차려 조문객들이 례를 표할 수 있도록 했다.

이튿날 이른 아침, 최창남 총도감은 유가족들과 함께 현성 부근의 산으로 향했다. 장백현 조선족들은 지금도 대부분 3일장을 치른다. 이번 고인은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과 합장해야 했기에 발인에 앞서 묘지를 미리 정비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두 도감과 함께 명정을 쓰고 있는 최창남 총도감

사흗날 발인날 아침, 장례당에는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최창남 총도감은 향도계의 례법에 따라 장례를 진행했다. 의식이 끝난 뒤 고인을 입관하여 산으로 모셨고 가족과 친지, 조문객들은 함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모든 절차가 끝난 후 고인의 맏아들은 최창남 총도감의 손을 꼭 잡으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어머니를 갑자기 잃고 경황이 없었는데 도감님들이 친가족처럼 하나하나 챙겨주면서 마지막 길을 정성껏 모셔주었습니다. 젊은 세대들은 전통 장례 절차를 잘 모르는데 향도계가 있어 정말 든든했습니다. 밤낮없이 애써주신 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것이 장백조선족향도계가 하는 일이다.

누군가 세상을 떠나면 함께 슬픔을 나누고 마지막 길을 지켜주는 것, 이것이 장백 조선족사회에서 백여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상부상조의 전통이다.

l 백년을 이어온 상부상조의 전통

기자가 알아본 데 따르면 향도계의 뿌리는 190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척박한 산간지대에서 화전농사를 지으며 어려운 생활을 했던 장백의 조선족들은 한집에 상사가 나면 이웃들이 함께 나서 장례를 치렀다.

1930년대 집단부락이 형성되면서 비교적 체계적인 향도조직이 생겨났다. 당시에는 상가의 식사를 이웃들이 돌아가며 책임지고 장례에 필요한 일들도 모두 함께 해결했다. 장례는 한집만의 일이 아니라 온마을 사람들이 함께 치르는 공동의 일이였다.

새 중국 창건 이후에도 이러한 전통은 계속 이어졌다. 그뒤로 농촌인구가 감소하면서 단독으로 장례를 치르기 어려운 상황이 나타났지만 조선족 군중들은 주변 한족 군중들과 서로 힘을 보태며 상사를 치렀다. 장례 례법은 각자의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어려운 일은 함께 해결하는 과정에서 민족 간의 정이 더욱 깊어졌다.

조문객들이 찾아와 고인에게 례를 올리고 있다.

l 시대와 함께 변화한 향도계

개혁개방 이후 현성에 조선족 인구가 집중되면서 여러 향도조직이 생겨났다.

1986년 조선족 간부들과 군중들의 노력으로 기존 조직들을 통합한 장백현성조선족향도계가 정식 출범했다. 이후 향도계는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끊임없이 제도를 보완해왔다.

2000년에는 민정부문에 등록하고 그 이듬해에 제 1기 리사회를 설립해 조직 운영을 보다 규범화했다. 2014년에는 기존의 호상과 유사 제도를 정리하고 총도감 책임제를 실시했다. 현재는 세명의 전문 도감이 장례의 전 과정을 책임지고 있다.

현임 리사회 회장인 남경호 리사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향도계는 단순한 장례조직이 아니라 조선족사회의 상부상조 전통을 이어가는 공익성 조직입니다. 선배들이 남겨준 좋은 전통을 후대에 전해주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대가 변해도 서로 돕고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 초심만은 변해서는 안됩니다.”

향도계의 가장 큰 특징은 무상봉사이다. 도감들은 새벽에도, 명절에도 상가에서 전화가 오면 곧바로 달려간다. 수시와 입관, 발인, 하관 등 여러 절차를 책임지며 유가족들이 마음 놓고 고인을 보내드릴 수 있도록 돕는다.

향도계의 한 도감은 이렇게 말했다.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입니다. 밤중에도 전화가 오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산에 올라가 묘지를 준비해야 할 때도 많습니다. 하지만 유가족들이 안심하고 고인을 보내드리는 모습을 볼 때마다 큰 보람을 느낍니다.”

서로를 이어주는 따뜻한 등불

장백조선족향도계의 발전에는 사회 각계의 관심과 지원도 큰 힘이 되였다. 1996년 여러 단위와 계원들의 공동 노력으로 현재의 조선족장례당이 건설되면서 보다 편리한 환경에서 전통 장례를 치를 수 있게 되였다. 오랜 세월 동안 조선족 장례당과 한족 장례당은 서로 협력하며 화목하게 지내왔고 장백현의 민족단결과 사회 조화에도 긍정적인 역할을 해왔다.

장백현조선족장례당

장백현민정국 관계자는 향도계가 군중들의 부담을 덜어주고 문명한 장례문화를 형성하는 데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향도계가 상부상조 전통을 계승하는 동시에 공동체 의식을 높이고 민족 전통문화를 보호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월은 많이 변했다.

예전의 멜채는 령구차로 바뀌였고 집에서 치르던 장례는 현대식 장례당으로 옮겨왔다. 그러나 누군가 어려움을 당하면 함께 달려가고 슬픔을 나누는 인정만은 변하지 않았다.

기자가 장례당을 나설 무렵, 최창남 총도감의 휴대전화가 다시 울렸다.

“예, 알겠습니다. 지금 곧 가겠습니다.”

짧은 통화를 마친 그는 다시 장례용품을 챙기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마지막 길을 함께 지키기 위해서였다.

백여년 세월 동안 이어져온 장백현성조선족향도계의 등불은 오늘도 조용히 켜져 있으며 그 속에는 서로 돕고 함께 살아온 장백 조선족들의 따뜻한 정이 담겨 있다.

/최승호, 정현관 기자


编辑:유경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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