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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림신문 > 로인녀성

잊을 수 없는 집체호 생활과 딱친구 영자

유경봉      발표시간: 2025-12-15 15:06       출처: 길림신문 选择字号【

본문 작자 조기옥

거위털같은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겨울이 되면 나는 저도 모르게 젊은 시절의 집체호 생활이 생각나고 가끔 나의 딱친구 영자 생각에 빠지곤 한다.

1968년 10월, 같은 반 동창이고 딱친구로 지내던 영자와 나는 초중을 졸업하고 17살 어린 나이에 나라의 호소에 호응하여 집체호 일원으로 빈하중농의 재교육을 받으러 광활한 천지—농촌으로 내려갔다. 그때는 교통운수가 발달하지 못한 세월인지라 우리는 짐실이 용도로 쓰이는 해방패 자동차 밑바닥에 앉아 가게 되였다. 우리의 전부 재산이라야 누구나 고작 자그마한 나무궤 하나에 가벼운 이불짐이였다.

자동차는 우리가 사는 시내를 벗어나 교외로 줄달음치더니 금새 울퉁불퉁한 농촌길을 힘겹게 달리기 시작했는데 어찌나 둘러 메쳐놓는지 궁둥이가 박살나는 것만 같아 우리는 아예 자동차 옆 란간을 꼭 부여잡고 간난신고를 해야만 했다.

자동차는 끝내 찌그러질 듯한 거먼 흙집들로 늘어선 촌마을 길옆에 멈춰섰다. 이곳이 바로 우리가 재교육을 받고 앞으로 살아나가야 할 곳이란다. 재교육 대상이라 그런지 환영식도 없었다. 다만 해빛에 그을러 거머틱틱한 얼굴에 단단하게 생긴 중둥체격의 총각대장이 우리를 영접하고 안배하느라 분주히 돌아쳤다.

농촌에 도착한 이튿날 우리는 벼가을에 나섰다. 처음으로 농촌로동에 참가하는지라 우리는 누구나 풋풋한 젊음에 활기찬 꿈을 싣고 열정으로 벅찼다. 벼가을이란 벼를 낫으로 베면 되는 일이니 이런 일이야 못하랴? 열정에 넘치는 우리는 논밭에 한줄로 쭉~ 서서는 벼가을을 시작 하였다. 우리는 무작정 낫을 휘두루기 시작했다. 그런데 얼마 못가서 여기저기에서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다. 날이 잘 선 낫으로 벼를 벤다는 것이 어찌된 영문인지 자기의 손가락을 베여 시뻘건 피가 뚝뚝 떨어졌는데 나와 영자도 례외가 아니였다. 일을 시작한 첫날부터 우리는 대장을 따라 위생소 출입을 해야만 했다. 우리는 처치를 마치고 또다시 일을 시작하면서 농민들이 일하는 모습을 찬찬히 관찰해보았는데 우리와는 확실히 달랐다. 그들은 왼손으로 벼를 자기 앞쪽으로 향하게 많이 움켜쥐고 오른손으로 낫을 쭉 잡아당기는데 낫을 아래로 향하고 쭉 잡아당긴다. 그러면 벼들은 보기 좋게 뭉텅뭉텅 베여졌는데 그 벼를 논바닥에 곱게 줄지어 놓는다. 그런데 우리는 농민들의 본을 따서 왼손으로 벼를 잡고 오른손으로 낫을 잡아당기는데 아래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우로 향하니 당연히 손가락을 벨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에나 다 학문이 있고 요령이 있는 법이였다.

그날 저녁 우리는 부녀대장의 통지에 따라 촌회의실에 가서 사원대회에 참가하였다. 회의실이란 마을에서 면적이 좀 크고 그나마 괜찮다 하는 가정집이였는데 구들은 장판이 아니라 ‘구름까래’를 폈었다. 구름까래란 참나무를 벗겨서 얇게 찢어서 오리오리 다듬어서 결은 삿자리인데 터덕터덕하여 닦기 아주 말째였다. 처음에는 그래도 너무 검은색이 아니였을텐데 시간이 지나니 제대로 닦지 못하는지라 까마반지르르한 장판이 되고 말았다. 회의실의 희미한 석유등잔 불빛에 아래 정지에는 녀자들이 앉고 웃방에는 남자들이 앉았는데 담배연기로 집안은 새뽀얗고 숨쉬기도 가빴다. 하루의 고된 로동으로 지쳐서인지 저도 모르게 코를 고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끔 다양하고 괴상한 방구소리가 놀랍게 들려왔다. 농민들은 그래고 습관된 것 같았는데 우리 집체호 젊은이들은 너무 놀랍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여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고 죽을 지경이였다. 회의에서 대장이 석쇠한 목소리로 하루 일과를 총화짓고 다음날의 일과를 안배한다. 그다음 형식적으로 대비판 문장을 읽는데 지친 사람들은 듣는둥마는둥 하다가 회의가 끝나버렸다.

가을이 지나 겨울이 오니 사원들은 소발구에 비료를 싣고 밭에 거름을 낸다. 이날, 나와 영자도 소발구 운수에 나섰다. 처음으로 비료를 싣고 소를 몰라 하니 우리들의 마음은 황황하고 무서웠다. 그러나 자존심이 작동해 무섭다는 말은 감히 못하고 농민들이 하던 모양대로 될수록 소와 멀리감치 떨어져 소바줄을 쥐고 농민들을 본따서 ‘이랴!’ 하고 소를 몰았는데 사람이 소를 모는 것이 아니라 소가 사람을 모는 격으로 우리는 소 바줄을 꽉 잡은채 소에게 끌려갔다. 그런데 철 모르는 소는 앞에 웅덩이를 보고도 피하지 않고 마구 가다나니 웅덩이에 걸려들어 소와 발구가 전복했는데 소도 너무 아픈지 네 발을 버둥거리며 좀처럼 일어나지를 못했다. 우리도 발구에 깔린채 거름벼락을 맞고 쓰러졌다. 다행히 대장이 제때에 발견하고 도와주었으니 망정이지 햇내기인 우리가 어떻게 그 장면을 수습하였을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해난다.

우리 집체호는 녀자 8명에, 남자 7명 도합 15명 대가정이였다. 우리는 초가집에서 거처를 했는데 녀자들이 정지에서, 남자들이 우방에서 자면서 날마다 한집에서 살고 한솥 밥을 먹으며 지냈다. 남자들이 산에 가서 도끼를 휘두르며 나무를 해오고 녀자들이 취사 당번을 짜고 번갈아 밥을 지었는데 이 역시 골치아픈 일이였다. 집에 있을 때는 어머니가 해주는 밥을 먹고 곱게 자라다나니 밥 할줄을 전혀 몰랐다. 참 답답한 일이였다. 첫날 취사 당번은 영자에게 차례졌다. 그날 영자는 밥을 짓기 위해 다른 사람들보다 좀 더 일찍 밭에서 돌아왔다. 우선 그녀는 물길으러 물통을 들고 우물가에 갔는데 우물이 어찌나 깊은지 보기만 해도 아찔해났다. 우물옆의 드레박 줄을 쥐고 드레박을 우물에 떨어뜨렸는데 물은 드레박에 담기지 않고 드레박이 물우에 동동 뜨기만 하여 여간 애간장을 태우지 않았다. 처음인지라 요령을 알 수가 없었다. 숱한 애를 써서야 영자는 겨우 물 한통을 길어왔다. 영자는 옥수수쌀과 입쌀을 씻어 가마에 넣고 물을 부었다. 그 다음 아궁이에다 불을 지피는데 아무리 애를 써도 불이 붙지 않았다. 갖은 애를 다 써서 불을 붙여놓으면 연기만 솔솔 새여나오고 불은 좀처럼 일지 않았다. 젖은 나무이다보니 영자는 숱한 애간장을 태워야만 했다. 급해난 영자는 아궁이에 엎드려 푸~푸~ 하고 입김을 불어댔는데 도리여 연기에 쏘여 얼굴은 눈물범벅, 코물범벅으로 되였다.

식시시간이 되여 집체호 식구들이 밥상에 마주앉았는데 가마 뚜껑을 열고 보니 밥도, 죽도 아닌 먹을래야 먹을 수 없는 범벅이 눈앞에 펼쳐졌. 맨 입쌀로 밥을 지으면 그래도 괜찮았을텐데 그때는 간고하게 사는 때인지라 잡곡이 더 많았다. 그런데 잡곡과 입쌀을 함께 앉혔으니 밥이 제대로 될리 만무했다. 다행히 소문을 들은 총각대장이 집에서 밥을 한밥통 갖다주어 발등에 떨어진 불은 끈 셈이였다. 우리가 곤난에 부딪칠 때마다 나타나는 총각대장은 그때 우리들의 ‘급시우’였다.

그 간고한 환경에서도 청춘의 랑만은 여전히 불타올랐다. 시간이 지나면서 청년남녀 사이에는 애정이 싹텄고 미래의 행복을 동경하게 되였다. 영자와 총각대장은 련애를 하였다. 영자는 자상하게 진심으로 도와주는 대장이 고마웠고 비록 신분은 농민이였지만 과학영농을 하려고 꾸준히 벼품종 개량 실험을 하는, 리상이 있고 포부가 있는 대장을 우러러보게 되였던 것이다. 대장도 녀자답고 부지런한 지식청년 처녀 영자가 마음에 들었으며 하루라도 보지 않으면 못견딜 지경으로 홀딱 반했다.

그들은 남몰래 편벽한 산간마을 뒤산의 울울창창한 소나무 숲속에서 사랑을 속삭였으며 마을앞 산굽이를 에돌아 흐르는 맑은 물이 있는 공기 좋고 경치 좋은 버들방천의 몸만 잠그면 물고기들이 몸을 간지럽히는 천연수영장에서 마음껏 물장난을 하였다. 놀다가 배고프면 샘터의 샘물에 고추장을 풀어 밥을 말아먹으니 이 또한 꿀맛이였다.

당시 지식청년과 현지 청년간의 혼사에는 애로가 많았다. 특히 영자 부모들이 견결히 반대해나섰는데 그들은 심지어 부모자식 관계를 끊겠다고까지 위협하였건만 영자의 마음을 돌려세우지 못했다. 그들은 일체 저애를 물리치고 끝내 결혼식을 올리게 되였다. 결혼후 귀여운 딸을 둘 낳은 그들은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다고 느꼈다.

그러나 운명은 그들을 조롱했다. 지식청년들이 농촌에서 추천받아 도시에 로동자로 올라오고 대학에도 진학했는데 결혼한 사람은 제외였다. 우리 집체호 청년들도 하나둘 떠났고 영자와 제일 딱친구인 나까지 떠나게 되였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니 영자의 가슴에는 큰 파문이 일었다. 한평생 투박한 농촌에서 땅을 뚜지며 살 생각을 하니 가슴에서 불이 날 지경이였다. 영자의 남편 역시 고민에 빠졌다. 안해가 언제 훌쩍 떠날 것만 같아 애간장을 태웠다.

녀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는 말처럼 고통속에서 모대기던 영자는 애들을 위해 농촌에 남기로 결심하고 남편과 손잡고 애들의 공부 뒤바라지에 모든 정력을 기울였다.  

속담에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온다고 영자의 두 딸은 심신건강하게 잘 자라 선후로 중점대학을 졸업하고 대도시에서 자신들의 능력을 마음껏 펼치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 그들 부부도 애들의 효도를 받으며 로년의 천륜지락을 만긱하고 있다. 나는 수십년 딱친구 영자의 행복한 만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조기옥 


编辑:유경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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