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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이야기8] 잊을수 없는 송옥련선생님

안상근      발표시간: 2026-03-16 15:05       출처: 길림신문 选择字号【

◎ 권오용

사람들은 각자의 인생길을 살아가며 배움 속에서나 생활 속에서, 혹은 일터에서까지 쉽게 잊혀지지 않는 순간들을 마음속 깊이 간직한다. 나 역시 수많은 순간들을 간직하고 있지만 초중 시절에 있었던 잊지 못할 사연들을 떠올려본다.

초중에 입학했을 무렵, 우리 어문과 담임선생님은 송옥련이라고 부르는 녀선생님이시였다. 사범학교를 막 졸업하고 외지에서 우리 마을 학교인 아라디중심학교로 배정받아 오신 젊은 선생님이셨다. 약간 통통한 얼굴에 키는 좀 작았지만, 언제나 환한 미소로 학생들을 대하시던 분이였다. 당시 함께 부임한 다른 젊은 선생님들 역시 철부지 농촌 아이들로부터 많은 어려움을 겪으며 힘든 시기를 보내셨을 거라 생각된다.

학교에서는 이 젊은 선생님들의 생활을 조금이나마 편하게 해주기 위해 학교 바로 옆 단층집을 숙소로 마련해 주었다. 어느덧 동북 지역은 매서운 겨울로 접어들었고 저녁 자습은 물론, 낮에 학교에 가는 것조차 쉽지 않을 만큼 추운 날씨였다. 하지만 초중부터는 저녁자습 시간이 있었기에 추위와 어둠을 마다하지 않고 매일 저녁 7시 전에는 다시 학교로 가야 했다.

가끔 일찍 학교에 도착할 때도 있었는데 어느 날 몇몇 학생들과 함께 송선생님의 숙소에 들리게 되였다. 원래 학생들은 젊은 선생님들에게 더 친근감을 느끼기 마련인데 선생님께서도 학생들을 매우 따뜻하게 맞아 주셨다. 동북의 겨울 저녁은 정말 매서워 모자와 장갑을 끼고 있어도 금시 귀와 얼굴, 손이 빨갛게 얼어들군 했다.

선생님께서는 불을 피워 따뜻해진 방에 학생들을 앉히고는 한 명, 한 명의 귀와 손을 직접 만져 주시였다. 나는 당시 반장이였기에 많은 선생님들로부터 사랑을 받았지만 원래부터 성격이 내성적이라 선생님께서 내 귀를 감싸 주실 때 오히려 부끄러워 귀와 얼굴이 더 빨갛게 달아오르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어머니한테서도 이런 보살핌을 받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막 사춘기가 시작되던 시기는 감정이 단순하면서도 미묘하던 때였고 지금 다시 떠올려 보아도 인생에서 단 한 번뿐이였던 그 순간은 너무나 소중하고 행복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또 한 번은 저녁 자습 시간에 뒤에 앉은 몇몇 남학생들이 너무 떠들고 장난을 쳐서 당시 반장이였던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중 가장 시끄럽던 한 남학생의 이름을 부르며 "조용히 하자!"고 말했다. 그 말이 마음에 걸렸는지 저녁 자습이 끝나자마자 그 학생이 밖으로 나오기도 바쁘게 주먹쥐고 달려들지 않겠는가. 다행히 주변 학생들이 급히 말려 큰 싸움은 피할 수 있었지만, 이 소식은 이미 송선생님의 귀에까지 들어가 있었다. 일이 벌어진 지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선생님께서 급히 나타나셨던 것이다.

이후 당사자였던 두 학생은 선생님을 따라 교무실로 들어가게 되였다. 사연을 모두 들으신 선생님께서는 먼저 주먹을 휘두른 학생을 엄하게 꾸짖으셨고 그는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는지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 일이 있은 후로 반에서는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때 선생님께서 보여 주신 당당한 보호는 나에게 얼마나 큰 버팀목이 되였는지, 지금도 떠올리면 가슴이 든든해진다.

매년 봄이 되면 학교에서는 멀지 않은 태평산으로 소풍을 갔다. 하지만 농촌에서는 마침 모내기 철이라 어머니는 한 번도 소풍에 오신 적이 없었다. 소풍에 부모님이 함께 오지 못하는 것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였지만 유독 마음이 섭섭했던 순간이 하나 있었다. 바로 점심을 먹는 시간이였다.

다른 아이들은 대부분 부모와 함께 와서 친구들끼리 모여 앉아 각자 챙겨온 맛있는 음식들을 나누어 먹고 있었지만 나는 늘 누나를 따라 부모가 오지 않은 몇몇 아이들과 구석에 모여 대충 도시락을 먹어야 했다. 마치 '다리 부러진 노루가 한곳에 모이듯' 말이다.

그런데 어느 해에는 송선생님께서 부모와 함께 오지 못한 학생들을 불러 함께 점심을 먹게 해 주셨다. 그러나 또 하나 난감했던 순간은 도시락을 여는 일이였다. 다른 아이들의 도시락에는 그래도 고기볶음이나 여러 색다른 반찬들이 있었지만, 내 도시락에는 계란볶음과 더덕구이뿐이였다. 그래서 즐겁게 음식을 나누어 먹기보다는 차라리 1초라도 빨리 점심 시간이 끝나기만을 바랐던 기억이 난다. 하루 소풍 일정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어머니도 힘든 논밭 일을 마치고 막 집에 도착하시는 때였다. 그것이 바로 당시 우리 집의  현실이였다.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송선생님과 얽힌 이러한 사연들은 내 기억 속에 또렷이 남아 있다. 그 일, 그 장면, 그리고 그 선생님을 떠올리며 늘 추억 속을 거닌다. 송선생님 덕분에 만들어진 이 잊을 수 없는 이야기들은 내 성장 과정 속에서 커다란 무형의 자산으로 남아 있다.

다시 한 번 송옥련선생님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다음에 선생님을 만나 뵙게 될 때는 이 잊지 못할 사연들을 함께 되새기며 나누고 싶다.


권오용프로필

1979년 3월, 길림성 영길현 출생

길림의학원 본과, 길림대학 제3병원 석사, 일본 야마구치대학 박사 졸업

현재 복건성 하문장경병원 안과에서 근무


编辑:안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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