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림성 뢰봉따라배우기 일터 기준병’ 위호천의 변경사랑이야기
연변변경관리지대 화룡변경관리대대 고성리변경파출소 부소장 위호천
“대중을 위한 봉사에는 끝이 없다.”
이 깊은 신념을 가슴에 품고 12년간 변함없이 대중들의 따뜻한 수호자가 되여 사소한 일에도 신경 쓰고 봉사해온 경찰이 있다. 그가 바로 연변변경관리지대 화룡변경관리대대 고성리변경파출소 부소장 위호천이다.
사업에 몰두하고 있는 위호천
위호천은 2012년 12월에 사업에 참가한 이래 뛰여난 업무실적으로 선후하여 2등공 1차, 3등공 2차, 표창 6차, 선진개인 3차 외에도 ‘중국 좋은 사람’, ‘새중국 창건 70돐 경축 보안의 별’, ‘길림 좋은 사람’, ‘길림 출입경변방검사총역 10대 경찰’, ‘연변 좋은 사람’, 전주 우수 기층 경찰’ 등 수두룩한 영예를 수여받았다. 또한 최근에는 성당위와 선전부에서 발표한 제2회 ‘길림성 뢰봉 따라배우기 일터 기준병’ 개인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최근 기자는 우불구불한 산길을 차로 달려 그의 일터를 찾아 그의 사적을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 마음으로 쓴 ‘민생 수첩’
2018년, 위호천은 화룡변경관리대대 고성리변경파출소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그의 매일 아침은 그가 책임진 행정촌인 대동촌으로 향한 그의 발걸음으로 시작된다. 푸른 제복을 입고 이슬을 밟으면서 마을을 누비며 위호천은 주민들의 작은 고민부터 큰 문제까지 해결한다. ‘현대판 봉사정신’을 실천한 그의 발자취는 마을 사람들의 가슴에 깊이 새겨져 있다. “호천이는 단순히 경찰이 아니라 우리의 손주이고 가족이라네!”라는 말은 주민들ㅋ가장 큰 칭찬이다.
촌민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는 위호천
위호천은 항상 '민생요구 수첩'을 가슴에 품고 다닌다. 이 수첩에는 대동촌 327가구의 생활상이 상세히 기록되여 있다. ‘리할머니 장작 패기’, ‘장씨네 닭장 고치기’, ‘유할아버지 귀국후 집 수리하기’…... 작은 필기 하나하나가 촌민들을 위한 그의 진심을 보여준다.
지난 가을, 위호천은 해외로무를 마치고 돌아온 유할아버지네 집 벽에 온통 긁힌 자국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에 위호천은 비를 무릎쓰고 마을 조사를 진행했고 결국 옆집 진씨가 옥수수 운반중 실수로 벽을 끍은 사실을 확인했다. 그는 즉시 경찰들을 이끌고 세멘트와 모래를 날라다가 직접 벽을 수리해드렸다. 진씨가 미안해하자 그는 “다음번에는 옥수수를 운반할 때 미리 말씀해주세요. 우리가 도와드릴게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이런 '작은 일'이 그의 일상이다. 부부싸움으로 리혼을 고민하는 로부부를 위해 11시간 동안 해외에 있는 자녀들과 영상회의를 주선해 화해하도록 했고 “싱싱한 남새를 먹고 싶다.”는 독거로인의 말에 마을과 협력해 '애심기금역'을 설립해 300여건의 물품을 기부했다.
◆ 발로 뛰며 만든 '평화의 지도'
위호천의 경무실에는 특별한 지도가 걸려있다. 한족과 조선족 촌민이 혼재한 대동촌의 지형, 순찰 경로, 민감 지역 등이 상세히 표시된 이 지도는 그의 발자취로 완성된 '평화의 기록' 이다.
류동인구를 관리하는 난제에 직면하여 그는 경찰을 이끌고 밤낮으로 분투하면서 류동인구의 정보를 등록하고 순라예방통제 강도를 강화하여 그 어떤 치안우환도 놓치지 않았다. 마을 모순의 특점에 비추어 그는 선후로 '경민 공동건설 작업실’, ‘호천조정실’을 설립하고 관할구역의 군중, 자원봉사자, 기업대표들을 초청하여 치안관리에 참여하도록 하였으며 12건의 지역사회 치안문제와 해결방안을 함께 토론하였다.
촌민들에게 법률보급을 하고 있는 위호천
봄추위가 쌀쌀한 어느날 새벽, 촌민 장씨가 자신의 닭 32마리가 하루밤 사이에 전부 죽었다며 도움을 청했다. 위호천은 손전등을 들고 닭장을 조사했고 흩어진 깃털과 발자국을 추적해 오할아버지네 개 3마리가 ‘범인’임을 밝혀냈다. 그는 단순히 배상에 그치지 않고 <반려견 문명관리 협약>을 제정하고 '주민합동순찰대'를 조직해 사건 재발을 방지했다.
위호천은 대중들의 자질구레한 일도 살피고 처리하고 조선어와 한어를 동시에 구사하는 ‘두가지 언어 조정팀'을 만들어 마을 분쟁을 해결했다. 그는 21키로메터의 변경선을 누비며 주민들을 위한 법률보급을 진행했다.
◆ 사랑으로 '하나된 마을'
85세의 리할머니는 위호천의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지만 가마목에 ‘경찰복을 입은 손자’사진을 붙여두고 있다. 위호천은 매번 리할머니집을 방문할 때마다 장작을 패드리고 약상자를 확인한다. 할머니는 “친손자보다 더 자주 온다."며 감사를 표한다.
“할아버지, 이번에도 짧은 머리로 하실거죠?” 대동촌촌민위원회 활동실 한켠, 76세의 왕로인이 의자에 앉아 미소를 짓는다. 위호천은 리발기를 손에 쥐고 숙련된 동작으로 머리를 다듬는다. ‘호천리발실’의 리발무료봉사가 시작됐다.
촌민들에게 리발봉사를 제공하고 있는 위호천
대동촌에 리발소가 없다보니 주민들은 한번 리발하려면 80여키로메터나 떨어진 화룡시내로 가야 했다. 굽이굽이 산길이 멀기도 하고 눈이 내리거나 얼음이 뒤덮일 때에는 리발하러 간다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였다.
촌민들의 리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위호천은 직접 사비로 리발 도구를 구입해 무료 리발봉사를 시작했다. 지어 주민들의 집을 방문할 때면 리발도구를 꼭 챙기고 필요한 주민들에게 리발을 해주었다. 그의 리발봉사는 마을 주민들의 큰 환영을 받았고 후에는 활동실 한켠에 ‘호천리발실’까지 전문 마련하게 되였다. 처음에는 간단한 '군인머리'만 하던 데로부터 이젠 인터넷으로 기술을 배워 다양한 스타일을 완성할수 있다고 위호천은 말했다.
리발소는 이제 촌민들이 고민을 털어놓는 공간이 됐다. 이 간이‘민심 청취실’에서 김할머니는 머리를 다듬다가 토지분쟁 이야기를 털어놓았고 위호천은 즉시 현장조사를 통해 문제를 해결했다. 그는 ‘호천리발실’을 통해 100여차례에 달하는 법률 보급선전을 펼쳤고 여러 모순, 분쟁 100여차례 조률했다.
‘위경찰’, ‘위소장’ 에서 ‘호천이’, ‘천이’로 불리우며 그는 어느덧 이 촌의 구성원으로 되였다. 위호천은 “수많은 영예보다도 촌민들의 미소가 더 큰 원동력이 된다.”라고 말한다.
촌민들은 “그간 지켜본 위소장은 나이는 비록 많지 않지만 촌민들의 일에 진심을 다하고 어지럽고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는 책임감이 뛰여난 청년이다.”면서 이 ‘90후’ 젊은이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 변방에 피여난 봉사의 꽃
위호천은 지난 12년간 변경촌에서 한줄기 빛이 됐다.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그의 모습은 오늘날 ‘뢰봉정신’의 계승이다.
군중들의 ‘작은일’을 자신의 ‘큰일’로 대하며 열성스럽게 도와주는 위소장의 긍정적 영향하에 동료 경찰들도 촌민들을 위한 일에 주동적으로 나서고 있었다. 촌민들을 도와 밤새 내린 눈을 제거한다든지, 봄철 농사준비 때면 촌민들의 일손을 주동적으로 돕든다던지, 경찰들도 위호천의 영향하에 ‘뢰봉 정신’의 계승에 앞다투고 있다. 그러면서 그들은 “촌민들이 기뻐하고 고맙다는 인사 한마디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비록 변경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촌민들의 응원이 이곳에서 안착하고 성수나게 일하는 동력으로 되는 것 같다.”고 분분히 표했다.
촌민들의 농사일을 돕고 있는 위호천
위호천은 “대중을 위한 봉사에는 끝이 없으며 군중을 위해 봉사하는 초심과 사명을 잃지 않고 변경마을 수호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동촌의 새벽은 또다시 그의 발걸음으로 시작된다. 어제와 같은 일상이지만, 그 안에는 변함없는 열정이 담겨 있다. 위호천은 오늘도 수첩을 들고 촌으로 향한다. 변경의 흙토를 밟으며 그는 색바래지 않는 봉사이야기를 쓰고 있다.
/길림신문 리전기자
编辑:유경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