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박순녀
요즘 나는 신문에서 메모하여 수집한 ‘신문 메모책’ 을 또다시 훑어보기 시작했다. 몇십년이나 보고 또 읽는 문장들이지만 읽을 때마다 감수가 다르다. 이‘신문 메모책’ 은 내가 교원사업을 하면서 36년간 신문에서 메모하여 모아 온 문장들이다.
어려서부터 아버지께서는 신문을 보신후에는 중요한 문장들을 메모하여 보관해 두시군 했다. 그 영향을 받아서인지 나도 그런 습관이 몸에 배였다.
교학을 마치고 교무실에 들어서면 나는 신문부터 찾아쥐고 한면한면 펼치면서 내 마음에 드는 문장들을 찾군 하였다. 시간이 허락 될때에는 그 자리에서 읽었고 시간이 없으면 그 신문을 따로 건사하였다가 꼭 읽어보군 하였다.
《길림신문》 에는 내가 좋아하는 글들이 많았다. 반주임사업을 하면서 늘 바삐 돌아쳐도 문학에 관한 글들은 놓칠세라 열심히 보았다. 이런 글들을 읽고나면 마음이 후련해지고 격정으로 차 넘치였으며 피곤도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는 것 같았다. 하여 접수실 선생님이 신문 배달하러 오시면 가장 반갑게 맞아 주었고 인츰 신문를 받아 손에 쥐군 하였다. 접수실선생님께서는 "박선생님은 내가 신문를 가져다 주면 제일 좋아하신다니깐..." 하며 익살을 피우기도 했다.
신문을 보기 시작하면 상학 종소리가 울릴때까지 그 자리에 앉아서 신문에 빠져있군 하였다. 글 쓴 이의 이름은 볼념도 안하고 제목부터 훑어 보았는데 수필이나 수기, 시같은 문학작품을 제일 먼저 애독하군 했다. 《길림신문》 에는 좋은 문학작품들이 많이 실려서 볼멋이 있었다.
나는 가끔 학교 독서활동시간이면 반급 학생들에게 나의 '신문 메모책' 글들을 한편한편 나누어 주면서 번갈아 바꾸어 보게 하였다. 하여 우리 반급 학생들은 모두 글짓기를 잘했는데 한번은 전시 작문경연에서 중앙소학교의 33명이나 되는 학생들이 등수에 뽑히였다. 그중 우리 반급 학생들이 17명이나 수상하게 되여 작문지도를 잘했다면서 기타 교원들의 부러움과 칭찬을 받기도 했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데 아버지의 낡은 가죽 비밀가방안에는 가위로 메모하여 오려낸 글들이 가득 차 있었다. 그 기억이 나에게 모름지기 신문을 효과적으로 구독하는 방법을 잘 터득하게 해준 것 같다.
나는 글을 쓸때마다 책보다 먼저 신문들에서 메모하여 두었던 글부터 보군 한다. 그것들은 내가 제일 마음에 드는 글들을 골라내여 모아둔 글들이였기에 찾아 보기 쉬웠다. 많은 글들은 나의 문학 흥취를 불러 일으켰고 우리 민족 전통문화에 대하여 알게 하고 깨우쳐 주었다.
신문보기를 좋아하였기에 신문에 글을 발표해보고 싶은 생각이 싹텄다. 원래 글을 발표하는 것에 용기가 없었던 나는 처음으로 《길림신문》 에 <잊지 못할 처녀교원시절의 추억> 이란 수기를 써서 보내려고 생각했다. 퇴짜를 맞을가봐 지인에게 부탁하여 신문사에 글을 보내게 되였다. 그런데 그 글이 인츰 《길림신문》 에 발표될줄이야! 나는 무등 기뻤다. 글 발표에서 큰 용기가 솟았다.
돌이켜보면《길림신문》 은 나에게 글쓰려는 불씨를 지펴놓았고 용기를 주었으며 퇴직후 로년의 인생을 문학인으로, 꿈이 있는 로후의 삶을 살아가도록 깨우쳐 준것 같아 항상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다.
编辑:안상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