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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림성음악당, 백년 극장의 재탄생

주동      발표시간: 2025-12-08 18:13       출처: 吉林日报 选择字号【

―력사의 무대에서 문화의 새 장을 열다

장춘의 중경로와 문화거리가 교차하는 지점에는 독특한 스타일의 건물 하나가 고층 빌딩들 사이에 우뚝 솟아 있다. 지나 다니는 행인들은 아마 미처 주의해 보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갈색 줄무늬 패턴의 벽돌로 꾸민 외벽과 생동감 있는 곡선을 가진 이 건물은 근 백년 가까이 도시의 변화를 묵묵히 지켜봐 왔다. 이 건물은 장춘 사람들의 기억 속에 ‘과거 가장 호화로운 영화관’으로 남아있는 풍락극장이다.

1933년 11월 25일, 풍락극장은 위만주국 시기 장춘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중 하나였던 풍락로(현 중경로)에서 착공식을 가졌다. 풍락로는 당시에 상점과 차량, 행인으로 북적거렸으며 장춘의 고급 식당과 백화점들이 모여있는 곳이였다. 극장의 부지 면적은 3,800평방메터로 지상 3층 규모의 건물에는 다양한 곡선 요소가 도입되였다. 1935년 12월, 극장이 정식으로 개관하였으며 1,124개의 고정 좌석중에는 장식이 호화로운 특별석도 포함되였다. 또한 당시 최신형 독일제 ‘심플렉스’ 영사기도 도입하여 당시 일본 고위 관료들이 방문하는 ‘극동 일류 영화관’으로 되였다.

건설중인 원 위만주국 시기의 풍락극장

일본 식민통지하의 산물인 풍락극장은 건립 초기부터 뚜렷한 차별적 색채를 띠였다. 일본인만 출입이 허용되였고 중국인의 출입은 엄격히 금지되였으며 이 공간은 침략자들이 장춘에서 특권을 과시하고 사치스러운 오락을 즐기는 장소로 되였다. 따라서 이 건물의 초기 력사에는 식민지배의 억압적 그림자가 깊이 새겨져있다.

력사의 흐름은 극장의 변화를 가져왔다. 1946년, 풍락로는 중경로로 개명하였고 극장은 ‘중경대희원’(重庆大戏院)으로 재명명되여 국민혁명군 신1군 응양평극사(鹰扬评剧社)의 본거지로 되였다. 이곳에서는 경극 작품과 상해 또는 미국 영화회사에서 제작된 영화들이 번갈아 상영되였다. 그러나 1947년 장춘의 대규모 정전 이후 이 번화한 극장은 점차 쇠퇴하기 시작했다. 1948년 10월 장춘이 해방되면서 극장은 새로운 활력을 얻어 ‘승리영화관’(胜利电影院)으로 다시 이름을 바꾸었고 당시 장춘에서 시설이 가장 좋은 극장이 되였으며 도시의 주요 행사를 책임지는 역할을 맡게 되였다. 해방전쟁 시기에는 여기서 여러 차례 의연이 열려 빈민 구제와 전쟁 지원 자금을 모았으며 항미원조전쟁 기간 900여명의 각계 대표들이 이곳에서 ‘장춘시 항미원조 분회’의 설립을 선포했다. 장춘시문공단은 가극 〈동존서〉를 10회 련속 공연하여 3,000만원(동북페)을 모금하여 전선에 지원했다.

20세기 50년대 승리영화관 문앞을 지나고 있는 궤도렬차(자료사진).

1952년, 매란방극단의 공연은 승리영화관에 화려한 기록을 남겼다. 극단이 떠나는 날, 매란방과 매보구 부자는 무대에서 함께 〈금산사〉(金山寺)와 〈단교〉(断桥)를 연기했으며 이는 장춘 문화사에 아름다운 이야기를 남겼다. 1954년, 당시의 길림성문화국은 전 성의 영화관을 상대로 등급을 평가했고 그중 승리영화관은 이변없이 1등급 영화관중 최고로 꼽혔다.

1958년에 승리영화관은 또 ‘춘성극장’(春城剧场)으로 이름을 변경하였다. 오락 자원이 부족했던 그 시절 이 건물의 불빛은 사람들에게 따뜻한 추억으로 기억되고 있다. 수십년 동안 수많은 장춘 시민들이 이곳에서 인생 첫 영화인 류삼제다섯송이 금화를 관람하였으며 많은 명작들도 이곳에서 상영하였다. 국산 애니메이션 대작 《보련등》(宝莲灯)과 노래 그대를 그리는 365일의 선률도 오래동안 이곳에서 울려퍼졌다. 80~90년대에 접어들면서 이 력사 깊은 극장은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당시 길림성내에서 비교적 일찍 노래방과 커피숍을 극장내에 설치해 장춘 시민들에게 인기 있는 오락 선택지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길림성음악당 내부

이 소중한 력사문화 유산을 지키기 위해 길림성당위, 성정부는 과감한 결정을 내려 이 백년된 극장에 대해 철저한 보수 공사를 실시하고 2025년 전 성의 주요 문화 사업으로 지정하였다. 보수 사업은 ‘문화재 원형 변경 금지’와 ‘최소 관여’ 원칙을 엄격히 준수하면서 전통 기술과 현대 과학기술을 융합하여 문화재의  안전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활성화 수요를 고려하였다. 주체 건물에 대해 전면적인 보강 복원을 진행하여 그 력사적 모습을 재현했을 뿐만 아니라 800평방메터 규모의 부속 건물을 증축했다. 동시에 주변 력사거리 환경을 최적화하여 백년 건축물이 세월의 품격을 간직하면서도 현대 문화 써비스 기능을 갖추도록 하였다.

1년간의 보수를 거쳐 극장은 2025년 11월 30일에 검수를 통과하고 정식으로 준공되였다. 그 이름도 ‘길림성음악당’으로 명명했다.

이 백년 극장은 이제 공공문화의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하여 시민을 위한 새로운 문화 랜드마크로 거듭나고 있다. 력사적 유적에서 문화적 상징으로, 원 위만주국 시기의 풍락극장에서 시대의 빛을 발하는 ‘길림성음악당’으로 변모하며 력사적 계승과 현대적 기능의 유기적인 결합을 이루었다.

이는 길림성이 력사적인 건축물을 활성화하는 또 하나의 모범 사례로 자리잡으며 길림성에 세계적 수준의 예술 명함을 하나 더 추가하게 되였다.

/길림일보 편역 주동

编辑:김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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