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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버드나무와 아버지

      발표시간: 2025-09-24 11:33       출처: 길림신문 选择字号【

⦿김태욱

내가 살고 있는 화룡시 서성진 소재지에서 봉밀하를 따라 서쪽으로 20여리 거슬러 올라가면 버드나무가 많기로 소문난 장항촌이란 동네가 있다. 

지금은 진달래민속촌으로 합병되였지만 노루골에서 목동고개까지 사이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노루목골로 불리우다가 한어로 번역되면서 장항으로 불린 력사는 자그만치 백여년이 된다. 그러다가 1930년대 중기부터 일제가 이 지역의 풍부한 삼림자원을 략탈하기 위해 팔가자로부터 이도구, 장항, 와룡을 지나 각 림장에 이르는 철로를 부설하였는데 장항에 위치한 역을 류수평역이라 불렀다. 

3년전 친척 동생의 자가용을 리용하여 고향마을을 돌아보게 되였다. 고향마을과 그 북쪽에 우뚝 솟은 솟대봉이 멀리 바라보이는 동쪽 굽인돌이에서 차를 세우고 오불꼬불하던 흙길 대신 시원하게 확 트인 세멘트포장도로 옆으로 주절주절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며 쉼없이 흐르는 봉밀하와 강가에 줄지어 자란 아름드리 버드나무를 바라보느라니 저도 모르게 강기슭에 줄지어 뿌리 내리고 푸르싱싱 자라던 버드나무들과 그 버드나무를 심은 아버지가 떠올랐다. 

나는 아름드리 버드나무를 부여잡고 그 옛날 고향마을의 첫 개척자였던 외할아버지와 머슴으로 일했던 나의 아버지 그리고 이 버드나무에 담겨진 사연들을 동생들에게 들려주었다. 

이 마을의 개척자인 외할아버지 리창민은 키는 크지 않았지만 다부진 체격의 소유자로 독실한 감농군이였다. 그에게는 한가지 특수한 별명이 있었는데 수가 틀리면 항상 “흥!흥!”하고 크게 코방귀를 뀐다고 해서 붙은 ‘코풍구’다. 외할아버지 ‘코풍구’는 매사에 급하지 않았다는데 소낙비가 억수로 쏟아져도 달린 적이 없다고 한다. 남들이 뭐라고 말하면 그는 “이 사람아, 앞에도 비요, 뒤에도 비인데 달린다고 안 젖겠는가?”라고 대답하였는데 하여튼 그는 느릿느릿하면서도 특별한 사람이였다. 

나의 아버지는 17살에 ‘코풍구’령감네 집에 들어가 머슴살이를 하면서 농망기에는 농사일에 전념하고 농한기에는 땔나무를 하고 가축을 거두었는데 무슨 일이나 막힘이 없고 일을 걸싸게 하여 동네에 소문이 높았다. 그는 겨울철에 밭주변의 돌각담의 돌을 소발구에 실어 강변에 날라다 제방뚝을 쌓았는데 그 흔적은 지금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하루는 ‘코풍구’령감이 나의 아버지를 불러놓고 “이 사람, 종손이(나의 아버지 아명) ,앞에 흐르는 강은 몇해에 한번씩 큰 물이 지는데 강변에 버드나무를 심으면 빨리 자라는 버드나무가 깊이 뿌리 내리고 크게 자라면 물곬이 변하지 않아 밭을 보호할 수 있을거네.”라고 하면서 강변의 제방뚝을 따라 버드나무를 심으라고 하였다. 그렇게 심은 버드나무가 인젠 수령이 백년을 넘겼다. 그동안 수차례의 홍수가 범람하였지만 버드나무들은 끄떡없이 농경지를 보호하면서 튼실히 자라났다. 

아버지가 20세를 넘긴 어느 여름, 그해는 여느해보다 장마가 일찍 시작되였다. ‘코풍구’령감은 아버지와 함께 강변의 위험한 구역에 버드나무를 베여다가 물곬이 변하지 않게 강에다 쌓아놓고 큰 돌로 눌러 놓는 방수작업을 하였는데 그때 의외의 사건이 터졌다. 

아버지가 소수레에 돌을 실어나를 때 한 마을에 살면서 돈깨나 있다고 위세를 부리는 조남칠이라는 자가 강변에서 일하고 있는 ‘코풍구’령감에게 큰 소리로 시비를 걸어왔다. 

“령감, 당장 걷어치우시오! 여기서 물길이 번지면 강건너 편에 있는 내 밭이 뜯기운단 말이요!” 이에 그만 둘 ‘코풍구’령감이 아니였다. “아니, 자네 밭은 높은 언덕우에 있고 이쪽은 지세 낮아 자칫하면 숱한 논과 밭이 물에 밀릴 판인데 그러면 밭임자들은 무엇을 먹고 산단 말이요? 흥, 흥!” 하며 연거퍼 거센 코방귀를 뀌였다. 

이렇게 옳거니 그르거니 말다툼을 하다가 결국은 손찌검으로 번졌는데 젊은 조씨가 작달막한 ‘코풍구’령감을 콱 밀쳐 사품치는 물속에 처넣었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면서도 조씨를 향한 ‘코풍구’령감의 욕설은 멈추질 않았다. “푸~푸~, 이 근본도 없는 놈아, 네가 얼마나 잘났느냐? 나는 그래도 리씨조선의 왕손이다. 흥, 흥!”

마침 소수레에 돌을 싣고 오던 아버지가 이 광경을 목격하고 달려왔다. 그는 다짜고짜 조남칠을 붙잡아 씨름의 엎어치기 동작으로 땅에 둘러메쳤다. 조씨는 땅에서 벌벌 기면서 “이놈, 이놈의 머슴군!”하면서 소리소리 지를 때 아버지는 물에 뛰여들어 ‘코풍구’령감을 둘쳐 업고 집으로 달려갔다. 그날 이후로 조씨는 더는 심술을 부리지 않았으며 아버지도 ‘코풍구’의 사위로 되였다...

아버지와 외할아버지가 강가에 심은 버드나무를 바라보느라면 봉밀하 맑은 물에서 피둥피둥 살진 버들치들이 나무그늘 아래에 모여들어 무리지어 사랑을 속삭이고 강가의 아늑한 그늘에는 지나가던 행인들이나 밭일을 하고 돌아오는 촌민들이 다리쉼을 하면서 담소를 하던 모습이 훤히 떠오른다. 봉밀하 강가의 버드나무는 백여년동안 마을을 지켜오면서 마을의 력사를 새겨온 나무였다. 

나의 아버지가 사망된 후 어느 한해 여름 우뢰소리가 부서지는 듯 요란하게 들려서 나가보니 마을앞 합수목에 위치한 아름드리 버드나무가 번개에 맞아 우로부터 중턱까지 쩍 갈라지면서 불에 타고 있었다. 그 나무가 가장 실한 나무였는데 아마 아버지와 외할아버지가 보고싶어 옮겨간 모양이다.  

이제 2~3년이 지나면 이곳에 명암수리중추가 건설되고 그러면 한포기 그림같은 멋진 호수속에 개척한지 100년 넘는 장항촌이 잠기게 된다. 아버지가 심은 버드나무도 례외가 아니다. 나는 개척민의 후대였고 우리의 후대들도 이곳에서 나고 자랐다. 이 오지마을을 살기 좋은 고장으로 만들려고 묵밭을 일구고 논을 풀던 조상들의 로고가 가슴속에서 처연하다. 

오늘의 젊은이들은 개척민의 농경사회를 통한 아름다운 꿈을 모른다. 또 알려고도 하지 않고 옛날옛적의 일이라고만 주장한다. 우리가 들려주지 않으면 모를 이야기, 이제 물에 잠기게 되는 개척이야기는 안타깝지만 시간이 흘러가면서 점차 아름다운 명암호의 풍경이야기로 대체되고 전해질 것이다.


编辑:안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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