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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림신문 > 사회일반

항미원조전쟁에서 탁월한 전공 세운 ‘백운산퇀’

유경봉      발표시간: 2025-10-22 13:44       출처: 吉林日报 选择字号【

1951년 5월, 447퇀이 지원군 총부로부터 수여받은 ‘백운산퇀’기발. 

10월 25일, 길림성 항미원조후원지 전시회가 집안시관광객봉사중심에서 개최된다.

이번 전시회에서 ‘백운산퇀’이라는 깊은 력사와 불멸의 정신을 담은 이름이 다시 대중의 시야에 들어오게 된다. 전시회에서 누렇게 색바랜 사진과 흠집이 나있는 전시품들은 마치 시·공간을 뛰여넘은 사자마냥 우리를 응시를 통해 력사의 온도를 느끼게 해줄 것이며 영웅의 웨침이 새시대에 오래도록 울려퍼지게 할 것이다.

사진은 응답자 제공

1950년 6월 25일, 조선 내전이 발발했다. 미국을 위수로 한 ‘유엔군’이 38선을 넘어 평양을 점령하고 중조 변경의 압록강까지 진격했다. 중공중앙은 이러한 준엄한 상황에 대비하여 조선 당과 정부의 요청에 따라 항미원조·보국위국의 결정을 내렸다. 같은 해 10월, 중국인민지원군 제50군이 조선으로 나아가서 작전에 참여했다.

“제50군의 전신은 국민당군 제60군으로 료심전역에서 장춘에서 봉기한 후 인민해방군 제50군으로 개편되였다.”

장춘사범대학력사문화학원 특임교수이며 박사과정 지도교수인 장효강은 부대가 개편을 거친 후 하소연운동과 고소운동 등을 통해 깊은 정치적 재교육을 하여 장병들의 계급적 각오를 고취시켰으며 그들이 누구를 위해서 전쟁에 참가하고 누구를 위해서 총을 들었는지를 깨닫게 했다고 말했다.

“이번 정치적 재교육은 이 부대를 근본적으로 탈바꿈시켰는바 예전에 ‘60번 곰부대’라고 불리던 부대를 조선 전쟁터에서 위험한 전투에서 번번히 싸워이기는 ‘50번 영웅부대’로 변모시켰다.”

1950년 겨울, 중국인민지원군이 압록강을 건너고 있다./신화사 사진

1951년 1월 25일, 항미원조전쟁 제4차전역이 시작되자 지원군 제50군 제149사 제447퇀 장병들은 조선 백운산진지에서 방어를 조직하라는 영광스럽고 간고한 임무를 명받았다.

백운산 일대는 조선 한강 남쪽기슭에 위치했는데 수원에서 서울로 통하는 철도와 두 도로를 통제할 수 있어 중국인민지원군과 ‘유엔군’이 서로 쟁탈하려는 중요한 전략적 요점이였다. 미군은 백운산진지를 공략하기 위해 2개 퇀의 정예병력을 동원하고 100여문의 중형 포를 배치하여 비행기, 탱크와 협동작전을 함으로써 지원군의 강철방어선을 무너뜨리려고 시도했다. 447퇀 장병들은 죽음을 초개같이 여기고 장비가 렬세에 처하고 보급이 극히 어려운 조건에서 적군 정예부대와 사투를 벌렸다.

장효강이 ‘백운산퇀’의 영웅사적을 얘기하고 있다.

“전투가 매우 참혹했는바 낮에 진지를 잃으면 밤에 다시 빼앗아오면서 반복적인 쟁탈전을 벌렸다.”며 장효강은 감개무량하게 말했다. 447퇀 장병들은 적의 융단식 폭격과 층층으로 되는 진공에 맞닥뜨려 완강하게 싸우면서 결사적으로 물러서지 않았다. 그들은 령활하고 기동적인 전술을 썼는바 간이공사에 의탁하여 ‘진지를 끝까지 지킨다”는 철같은 맹세로 11주야를 피흘리며 싸워서 적군의 밀물같은 공세를 막아내고 1,200여명을 섬멸함으로써 저격임무를 원만히 완수했다.

447퇀은 백운산지역에서의 기동방어전투에서 민족의 용맹함을 발휘하여 그 영웅사적이 조선과 조국의 대강남북에 널리 퍼졌다. 1951년 5월 28일, 탁월한 전적을 쌓은 447퇀은 지원군 총부로부터 ‘백운산퇀’ 영예칭호를 수여받았다. ‘백운산퇀’은 항미원조전쟁에서 유일한 퇀급 영웅단위이다.

전쟁의 포연은 수십년전에 이미 흩어졌지만 ‘백운산퇀’의 정신은 여전히 반짝반짝 빛나며 한세대 또 한세대 장병들을 용감하게 전진하도록 격려하는 강대한 동력으로 되였다.

/길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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