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제3기 ‘중국 좋은 사람 리스트’ 정의용사 입선자 장위건
“정말 특별한 일도 아닙니다. 누구든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주저없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을 것입니다.”
주변의 칭찬에 34세의 장위건은 항상 이렇게 겸손하게 답한다.
바로 그 뼈속까지 새겨진 정의감으로 그는 2024년 8월 2일 새벽, 한 생명을 구하는 치렬하면서도 감동적인 사투를 벌여 장춘시민들 마음속의 빛나는 영웅으로 되였다.
장위건은 당시 장춘천여소방기재유한회사 종업원이였다. 그날 아침, 그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직장에서 물품을 정리하고 있었다. 갑자기 가게 밖에서 시글벅쩍한 소음이 들려왔고 소리나는 쪽을 바라보니 간담이 서늘했다. 50대 정도로 보이는 한 남자가 화물운송용 삼륜차를 타고 한 가게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으며 차가 완전히 멈추기 전에 내려 그는 가정용 식칼을 꺼내 들고 가게 주인 조모의 머리를 향해 내리쳤다. 조모가 본능적으로 손을 들어 막았으나 날카로운 칼날은 순간 그의 왼팔에 깊게 박혔고 심한 통증에 조모는 저항능력을 잃은채 바닥에 쓰러졌다. 그러나 폭행범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오히려 더욱 광기를 부리며 련거퍼 칼을 휘둘렀다.
목숨이 오가는 순간, 장위건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용감히 나서 폭행범을 뒤에서 껴안아 행위를 제지시키려 했다. 폭행범은 미친 듯이 버둥거리며 속박에서 벗어난 뒤 이번에는 칼을 들고 장위건을 향해 덤벼들었다. 서슬이 번쩍이는 날카로운 칼날 앞에서 장위건은 굴하지 않고 민첩하게 몸을 피하며 조모의 안위를 살폈다. 위험한 상황에서 그는 현장의 물건들을 교묘하게 리용하여 폭행범과 신경전을 벌였다. 결국 장위건의 완강한 제지로 폭행범은 포기하고 삼륜차에 뛰여올라 황급히 도망쳤다. 그제서야 장위건은 자신의 왼손 식지가 어느새 칼에 베여 상처가 난 것을 발견했다.
당시 무서웠던 상황을 떠올리며 장위건은 “전 조금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만약 그때 제가 물러났더라면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이 일어났을 턴데 그것이 오히려 제 일생의 가장 큰 후회로 되였을 것입이다.”라고 하면서 “저는 무고한 사람이 제 앞에서 다치는 것을 절대 지켜볼 수 없습니다. 이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께서 가르쳐주신 도리이며 더우기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최저저선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밝혔다.
송원 농촌에서 자란 장위건은 어릴 때부터 부모를 따라 밭에서 일하면서 봄파종과 가을걷이로 건강한 몸과 마음을 달련하고 선량과 정직의 씨앗을 마음속 깊이 심었다. 대학 졸업 후 그는 여러 직장을 전전하며 자동차 생산라인에서, 기계작업장에서 일하면서 시종 남을 돕는 뜨거운 마음을 유지했다. 하여 동료들은 모두 “어려움이 있으면 로장(老张)을 찾아라, 절대 틀림없다.”라고 말했다.
2024년 10월, 중앙정법위원회에서 발표한 2024년 제3분기 정의용사 명단에는 장위건의 이름이 올랐다. 2025년 그는 ‘길림 좋은 사람’으로 선정되였고 최근에는 2025년 제3기 ‘중국 좋은 사람 목록’에 이름을 올리면서 그의 용기와 선행이 국가적 차원에서 인정받았다.
이어지는 영예 앞에서 장위건은 감동과 자부심을 느꼈다. 장위건은 “중요한 순간에 생명을 구하고 한 가정을 지킬 수 있어서 자랑스럽습니다. 이는 저에게 주어진 책임이며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하면서 “앞으로도 위급한 상황을 만나면 여전히 용감히 나설 것이고 일터에서 자신의 역할을 빛내며 실제행동으로 긍정적에너지를 전파하고 더욱 많은 사람들이 정의용사 대오에 동참하도록 호소하여 사회 정의의 빛이 영원히 꺼지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길림일보
编辑:유경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