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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길림신문] 이국땅에서 나를 찾아가는 길 열어주었다 

안상근      발표시간: 2025-10-28 14:25       출처: 길림신문 选择字号【

《길림신문》미국특파원으로 뛰였던 재미조선족 리화옥씨

고향떠나 멀리 이국에서 살아온 지도 어언 열일곱 해가 되던 2016년 8월, 《길림신문》일본특파원을 맡고 있던 대학교시절 친구로부터 뜻밖의 전화가 걸려왔다.  

"《길림신문》사에서 미국 조선족들의 사연을 전해 줄 특파원을 찾고 있으니 한번 도전해 보라"는 것이였다. 감히 감당하지 못할 어려운 제안이였다. 

내가 살고 있는 미국 플로리다주의 주도인 탈라해시는 주정부와 대학가가 중심인 중소형 도시로 아쉽게도 조선족이 거의 살고 있지 않았다. 

미국에 이주한 첫 몇 해 동안, 나는 낯선 언어와 문화속에서 좌충우돌하며 늦깎이 영어 공부와 씨름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말로 글을 써야 할 리유도,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었다.

고향에서 고급중학교 조선어문 교원으로 지내던 나는 다만 문학에 대한 애착의 끈만은 놓지 않은 채 꾸준히 독서를 이어왔다.

“너 아직도 책 읽기를 좋아하잖아. 글 한번 써봐.”

오래도록 잠들어 있던 자아가 속삭이듯 다가와, 내 감성을 콕콕 자극했다.

고향을 향한 자석같은 끌림과 웬지 모를 책임감이 나의 등을 툭툭 떠밀었다. 

‘내가 직접 조선족들을 찾아 나서면 안될까?' 그때에야 문득 우리 조선족들이 미국 곳곳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하는 호기심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막연한 가능성과 현실적인 두려움 사이에서 며칠간 망설이다가 떨리는 마음으로 친구의 제안을 덜컥 받아들였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그러나 이 낯설고도 거대한 미국 땅에서 과연 어디로 가야 조선족 뉴스 인물을 만날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했다. 

우선 내가 사는 도시에서 곧 열릴 중국인들의 추석 행사를 취재하기로 했다. 나는 인터넷 길림신문을 뒤져, 목마른 사람이 물 마시듯 선배 기자들의 취재 기사를 탐독하며 만전을 기했다.  

교단을 떠난 지 20년 만에, 무디고 녹쓴 필치로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온 마음을 실어 글을 써 내려갔다. 

〈탈라해시에서 맞이한 중국인들의 추석 명절〉이라는 나의 첫 기사가 《길림신문》에 실렸을 때, 온몸에 전류가 스치듯 짜릿한 감동이 밀려왔다. 

'시작이 절반'이라고 했지만, '맨 땅에 헤딩하는 격'이였다.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그제야 미국 동부 조선족 웹사이트 한두곳을 발견했고 저명한 조선족 과학자 김득철 교수의 단서를 포착해냈다. '가뭄 끝에 내린 단비' 같은 발견이였다. 대학 이메일 주소록을 샅샅이 뒤져 그의 련락처를 찾아냈고 마침내 장거리 인터뷰가 무사히 이루어졌다.

<조선족 물리학자, 명금류 노래소리의 신비를 발견하다>라고 제목을 단 첫 인물 탐방 기사가 인터넷 길림신문의 메인기사로, 지면신문의 제 1 면 톱기사로, 그리고 《길림신문》위챗계정에까지 실렸다. 두려운 마음으로 첫발을 내디딘 나의 특파원 려정에 이만큼 큰 격려가 또 있을까?!  

나는 마치 '모래밭에서 바늘을 찾듯'이 미용사, 철공 기술자, 한의사, 네일 아티스트 등 미국 이민 생활의 고달픔과 역경을 딛고 새로운 삶을 일궈낸 주인공들을 찾아냈고 심혈을 기울여 하나하나 기록해 나갔다.  

애타게 취재 인물을 찾던 중, 문득 전에 조지아주를 려행하면서 스쳐 지났던 연변지명 상호가 떠올랐다. 나는 대뜸 애틀란타 업소록 웹사이트에서 ‘연변특색’이 묻어나는 상호들을 찾아 무작정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마치 우연인 듯 필연처럼—올해 초에 중국조선족협회가 막 설립되였다는 소식을 접하는 순간,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듯 심장이 쿵쿵 뛰였다. 

그 이듬해인 2017년 2월 12일,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조지아주, 애틀란타를 향해 직접 취재길에 올랐다. <미주 동남부 조선족협회, 만남의 자리 마련>이라는 짤막한 보도기사는 내가 편도 5시간, 왕복 10시간의 운전으로 난생처음, 주와 주의 경계를 넘나들며 쓴 '력사적인' 취재기사였다.  

길치인 나에게는 무모한 도전이였지만 조선족협회분들과의 만남은 고향을 찾은 듯 반가웠고 무엇보다도 내가 재미 조선족사회에 첫 걸을을 내 딛는 전환적인 계기가 되였다. 

광활한 미국 대지에서 현장 취재의 물리적 한계를 돌파하며 만난, 조선족협회 알렉스 양 초대회장과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온 전태호 사장의 인터뷰는 가히 감동적이였다. 나는 그들의 훌륭한 사연을 하루속히 고향에 전해야 한다는 절박함에 밤늦게까지 원고작업을 이어갔다. 

그뒤로 나는 조선족협회의 일원이 되여 해마다 두번 정도 정기모임에 참석하였다.  

2018 년 초에는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주 중국조선족련합회의 장진영 회장과 련결이 닿았고, 참신한 이야기들이 나의 취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해 음력설 련휴를 앞두고 편집 마감 시간에 맞춰 아틀란타와 캘리포니아주 두 조선족협회의 설맞이 행사기사와 '신년 합동세배' 동영상 및 사진을 제공하며 긴장하게 원고마무리작업을 하던 그때가 인상 깊게 남아있다.

이민 1.5세로 중국어·조선어·영어 세가지 언어의 우세를 살려 엄마의 ‘연변중의원’을 물려받은 정혜영 중의사와 콜롬비아 대학에서 학생 관리 업무에 종사하는 전금령씨, 그리고 연변과 서울에서 공부하고 석사는 하버드대학에서 마친 김명교 등 조선족 대학생들의 사연은 독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끌었다.

신기할 정도로 취재 기사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연변 출신의 클라리넷 연주가 백철, 더블베이스 연주가 허만호, 피아노 연주가 김해 등 우리민족 걸출한 음악가들이 세계적인 무대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치는 소식들이 고향에 널리 전해질 때마다 나는 더없는 보람을 느꼈다.  

고향에 전해지는 기사들은 태평양을 가로 지르는 '무지개 다리'가 되여 타향과 고향사림들의 마음을 잇는 통로가 되였다. 백철선생님에 관한 기사는 오래동안 찾고있던 친척과 련결고리가 되여 ‘리산가족 상봉’을 이루어 내기도 했다.

2019년 봄, 나는 오랜만에 고향을 찾아 그동안 미국특파원으로 있으면서 안면을 익힌 《길림신문》편집기자들과 만남의 시간을 가지였다. 이국땅에서 고군분투하던 외로운 시간들이 눈 녹듯 사라지는 시간이였고 고갈되여 가던 특파원의 마음이 다시 채워지는 충전의 시간이였다.  

진달래축제에 참가하여 《길림신문》사 여러 직원들과 함께 《길림신문》홍보에 나선 리화옥씨(왼쪽 네번째)

며칠 뒤인 4월 27일, 진달래축제에 참가하여 《길림신문》사 홍길남 사장과 한정일 부주필의 따뜻한 환영을 받으며 《길림신문》사 여러 직원들과 함께 《길림신문》홍보에 함께 나섰다. 그때 고향에서 온 몸으로 느꼈던 《길림신문》과의 친밀한 소속감은 지금도 아름다운추억으로 남아있다.  

그때 《길림신문》담당편집선생님이 나에게 '고향 방문기'를 써 보라고 권유하였지만, 나는 따분하지 않을까 잠간 주저했다. 하지만 《길림신문》사에서는 <미국 특파원의 고향 방문기> 시리즈를 위해 귀한 지면을 마련해 주었고 특별히 ‘편집자의 말’까지 정성껏 덧붙여 주었다. 

덕분에 나는 자기도 모르게 마음속에 고이 쌓아왔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봇물 터지듯 쏟아냈고 결국 일곱차례에 걸쳐 '고향 방문기 시리즈'를 감격스럽게 완성할 수 있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길림신문》미국 특파원으로 열정을 불태웠던 시간들은 이국땅에서 나를 찾아가는 길이였다. 

《길림신문》은 세월이 흘러 갈수록 이국의 삶속에서 멀어져 가던 나의 조선어문전공을 붙잡아주었고 잠자고 있던 나의 글쓰기 재주를 깨워주고 키워주었다.  

《길림신문》은 이국땅에 흩어진 조선족들의 삶과 단절되였던 나에게 조선족사회를 찾아나설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해 주었으며 그들의 이야기를 애정어린 시선으로 담아낼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주었다.  

《길림신문》은 이방인으로 살고 있는 나의 변함없는 고향사랑을 따뜻이 보듬어 주었고, ‘특파원’이라는 이름으로 지구 반대편에서도 고향에 수시로 편지를 보내며 소통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  

그 경험을 발판으로 삼아, 나는 지난해부터 《동북아신문》미국 특파기자로 이국의 땅에서 나만의 의미를 찾아가는 길을 계속해서 걸어 나가고있다.  

나와 《길림신문》의 소중한 인연을 이어준 일본특파원 친구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길림신문》창간 40돐을 진심으로 축하함과 동시에 고향신문의 무궁한 발전과 번영을 두손 모아 기원한다! 

/리화옥


编辑:안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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