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기자는 길림성서란시박물관을 찾았다. 유리진렬장 안에는 녹쓴 일본군 검(刺刀) 하나가 놓여있었고 그 옆에는 찌그러진 일본군 통조림 깡통이 입을 벌린 듯한 흉측한 모습으로 놓여 있었다.
"이 검은 일본군이 '로흑골(老黑沟) 참사'를 자행한 직접적인 증거입니다."
서란시박물관 관장 왕복안은《피로 물든 로흑골》전시관으로 기자를 안내했다. 진렬장에는 일제가 발행한 《최신 동아철도 안내》 지도가 눈에 띄였는데 지도상의 라빈(拉滨)철도는 마치 동북대지를 가르는 상처마냥 붉게 표시되여 있었다.
1931년 9.18사변 이후, 일본 제국주의는 동북3성을 강점했고 각지에서 항일구국의용군이 활약했다. 서란 지역민들도 자발적으로 항일 무장대를 조직했는데 그중 송덕림과 주태평이 이끄는 '동북 반만항일구국의용군'은 라빈철도 남선과 길돈(吉敦)철도 로야령 일대에서 활동하며 철도를 파괴하고 일본군 렬차를 공격했다.
1935년 5월 31일, 일본군은 로흑골에서 무고한 민간인 1,017명을 학살했다. 생존자의 증언에 따르면 일본군은 임신부의 배를 칼로 갈라 태아를 꺼내는 등 극악무도한 만행을 저질렀다.
1995년, 서란시는 항일전쟁 승리 50주년을 맞아 로흑골참사 유적지에 기념비를 세웠다. 이후 이 유적지는 국가급 항전 기념시설 및 전국 중점 문물보호 단위로 지정되며 력사적 교훈을 전하고 있다.
"국치를 잊지 말고, 중화의 부흥을 이뤄내자." 녹쓴 검과 피로 물든 지도, 90년이 지났지만 이같은 철증은 여전히 우리에게 경종을 울린다.
/길림일보
编辑:유경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