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3일, 장춘영화촬영소(이하 장영) 창립 80주년을 맞아 ‘인민 예술가'로 존경받는 저명한 영화 예술가 전화(田华)가 장영을 방문했다. 97세 고령인 전화는 장영 옛터 박물관에 들어서며 감격에 겨워 말했다. “집에 돌아왔습니다! 이곳은 제 영화 꿈이 시작된 곳입니다.” 올해는 중국 영화 탄생 120주년이자, 장영이 중국 영화 사업의 요람으로 80년간 뿌리내려온 중요한 리정표이다. 한달여전, 습근평 총서기는 전화 등 8명의 영화 예술가들에게 친필 서한을 보내 문화적 자신감을 굳건히 하고 생활의 비옥한 토지에 뿌리내려 시대를 노래하고 인민의 마음을 표현하는 우수한 작품을 더 많이 창작하기를 격려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 8명의 예술가들이 모두 ‘새중국 영화 사업의 요람’으로 불리는 장영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으며 장영에서 일하거나 창작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1951년, 영화 《백모녀》(白毛女)의 ‘희얼’(喜儿) 이미지가 모두의 마음에 깊이 새겨졌다. ‘희얼’역을 맡은 배우이자 처음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은 전화는 이로부터 그의 예술 인생을 시작했다. 73년후인 2024년 9월 29일, 전화는 ‘인민 예술가’ 국가 명예 칭호를 받았다.
이날 장영 옛터 박물관에서 전화는 ‘전화―영화 예술 인생’ 전시회의 개막식에 참여했다. 그녀는 ‘인민 예술가’ 국가 명예 칭호를 받은 자신의 사진을 보면서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박물관 문화전파원 서가림은 감동적인 순간을 기록하며 말했다. “전화 선생님이 사진 속의 자신과 ‘눈물로 대면’하는 순간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박물관을 관람하는 동안 전화의 행동은 현장에 있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녀는 오래도록 전시 패널에 걸린 옛 사진들을 바라보았고 귀중한 단체 사진을 만지며 사진 속 사람들의 이름을 조용히 불렀다. 전화는 그중 한명의 소녀를 가리키며 자랑스럽게 “이 사람이 바로 나예요”라고 말했는데 현장분위기는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했다. 영화 《당의 딸》(党的女儿)은 그녀에게 삶의 방향을 찾아 주었다. 바로 영원히 당의 좋은 딸이 되는 것이였다! 영화 스틸 사진(电影剧照) 앞에서 전화는 굳게 주먹을 쥐고 영화 속 리옥매(李玉梅)의 고전적인 동작을 재현했다. 그녀의 초심과 힘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수십년이 지났지만, 저는 장영이 저를 키워준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저의 성장은 길림의 지원과 장영의 배양 없이는 불가능했습니다. 길림과 장영은 저의 집입니다. 이번에 저는 집에 돌아온 것입니다.” 이는 전화의 진심 어린 소감이였다.
이날 저녁, 제20회 중국장춘영화제 개막식에서 전화는 3분간의 진솔한 연설을 진행하였다. 전화는 연설을 통해 80세 장영에 생일 축하를 전하며 새중국 영화 사업 80년의 발전 과정에 대해 진심 어린 축원을 보냈다. 현장에서 열렬한 박수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졌는데 이는 한 인민예술가에 대한 최고의 찬사이자 중국 영화사업의 휘황찬란한 미래에 대한 가장 강력한 축복이기도 했다.
/길림일보
编辑:안상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