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광인교수 우리 력사연구 50주년 기념좌담회'가 10월19일 상해에서 있었다.
화동조선족주말학교, 상해조선족로인협회, 상해진달래가야금팀 등을 비롯한 상해의 여러 단체 회원 및 북경, 심양, 남경, 항주, 소흥 등지에서 달려온 지성인 70여명이 이날 기념좌담회에 참석하였다.
력사학자와 작가로 불리우는 리광인교수는 평생을 조선족력사연구에 바쳐가는 조선족사회 지성인이다. 화룡현광평농장에서 사업하던 시절인 1975년 리광인은 농장 당조직의 지지로 현내 각지를 다니며 광평농장사를 현지조사하고 정리하는 가운데 우리 민족의 빛나는 항일력사자료를 널리 수집하면서 항일력사연구에로의 뜻을 굳히였다.
1978년 10월 연변대학 조문학부 대학생으로 된후 리광인은 력사학자의 뜻을 실제 행동에 옮기면서 과외로 항일력사공부를 힘있게 내밀었다. 대학 재학시절 리광인은 중공당사를 가르치는 최후택교수님을 계몽스승으로 모시고 항일력사연구의 나래를 펼치였다.
대학 2학년때인 1980년 여름방학 기간 리광인은 할빈의 동북렬사기념관을 견학하고 돌아와 항일력사공부와 함께 아직 생존해있는 우리 민족의 항일지사들에 대한 현지방문을 본격적으로 추진, 선후로 수십명의 항일지사들을 방문취재하는 성과를 거두었으며 《연변일보》에 항일렬사전기를 륙속 련재하기도 했다.
대학졸업후 리광인은 선후로 중공화룡현위 당사연구실, 연변일보사, 연변력사연구소, 절강월수외국어대학을 거치면서 우리 민족의 력사학자로 성장했다.
중국의 광활한 대지, 조선민족의 발자취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갔고 2만 5천리 장정길 현지답사에도 올라 보았다. 리광인교수는 우리 력사연구 50주년을 맞이하면서 《홍군장령 양림》《광복전 겨레작가론》 등 30여부의 평전과 연구저서를 펴냈고 100여편의 연구론문에 항일이야기, 력사문화기행, 수필 등 2,000여 만자의 글을 펴냈다. 지금도 리광인교수의 우리 민족 력사연구는 의연히 현재형으로 꾸준히 전국각지 력사현지답사길에 오르면서 력사연구의 끈을 놓지 않고있다.
이날 기념좌담회 참가자들은 리광인교수의 그동안의 력사탐구와 학문적 성과들을 충분히 긍정하면서 향후 우리민족 력사연구에 보다 새로운 획을 그어갈 것을 기대했다.
/안상근 기자
编辑:김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