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족(满族)은 중국의 55개 소수민족중 인구가 두번째로 많은 소수민족이다. 2010년의 통계수치에 따르면 만족의 총인구는 1,041만명 정도에 달한다. 오늘날 만족은 주로 료녕성과 하북성에 분포되여있으며 길림성, 흑룡강성, 내몽골자치구, 신강위글자치구, 광동성, 복건성 등 중국 전역에 산재해있다.
만족은 력사가 유구한바 그 기원은 무려 6,800여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1972년 중국의 고고학팀은 로씨야와 린접한 흥개호(兴凯湖)지역에서 6,800여년전의 만족 전통 의상, 말과 사슴 뿌리로 조각한 만족의 토템, 모래가 섞인 도자기 등 귀중한 문화재들을 발견했다.
만족의 선민은 중국 고대의 상나라와 주나라의 숙신(肃慎),수나라와 당나라의 말갈(靺鞨)로 알려져있다. 숙신과 말갈은 녀진족의 선민이며 녀진족은 만족의 선민이다.
만족은 중국 력사에서 유일하게 중원왕조(中原王朝)를 두번 세운 민족이다. 하나는 만족의 선민인 녀진족이 기원1115년에 세운 금나라이고 다른 하나는 1644년에 세워져 1912년에 멸망한 중국의 마지막 봉건왕조인 청나라이다.
만족은 엄격히 호칭하자면 만주족(满洲族)이다. 1635년 청태종 황태극이 ‘녀진’을 ‘만주’로 개명하라고 명령을 내린 뒤 만주족이라는 호칭을 줄곧 사용해왔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서면서 ‘만주’라는 두글자가 만주국(伪满洲国)을 련상케 한다고 하여 불필요한 오해를 줄이기 위해 ‘만족’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만족은 중국 력사에서 중대한 기여를 한 민족이다.
우선 만족은 중국 동북 변강을 개척한 공로가 있다. 발원지가 중국 동북지역의 백산(长白山), 흑수(黑龙江)지역으로 장백산 북쪽과 흑룡강 중하류, 우수리강 류역에 이르는 광활한 지역에서 대를 이어 삶의 터전을 가꾸어온 만족은 이 땅을 중국의 불가분리의 신성한 령토로 보위하는 데서 큰 공로를 세웠다.
둘째, 만족은 북경을 전국의 정치중심으로 부상시켰다. 기원 1153년 만족의 선민인 녀진족이 세운 금나라는 국도를 흑룡강에서 연경(燕京)즉 오늘날의 북경으로 옮기고 중도(中都)라고 명명하였다. 금나라는 북경에 국도를 정한 첫 봉건왕조이며 이로써 북경이 중국의 정치중심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큰 기반을 마련했다. 북경은 금나라 이후 원, 명, 청 세개 조대의 국도이기도 하다.
셋째, 만족은 오늘날 중국의 판도 확정에 큰 기여를 햇다. 1644년 만족은 대일통의 다민족 청나라를 세우면서 세계의 동방에 우뚝 섰다. 그리고 용감한 8기(八旗)병사들이 피와 생명으로 짜리로씨야(沙皇俄国) 침략자들을 물리치고 동북 변강을 지켰다. 8기병사들은 동으로는 바다, 남으로는 증모암사(曾母暗沙), 서북으로는 발하슈호(巴尔喀什湖), 북으로는 대사막에 이르기까지 1천여만평방키로메터의 국토에 대해 효과적인 행정관리를 실시했다.
넷째, 중화민족의 전통문화를 고양했다. 지식과 문화를 중시하는 만족은 타민족의 우점을 받아들여 자신을 발전시키는 데 능하다. 청나라시기 황제들은 많은 서적의 편찬과 수정에 만족 지식분자들을 참여시켜 중화민족 문화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다.
다섯째, 만족은 전국의 언어를 규범화했다. 북경에 입성한 만족은 전국 각지의 한족들과 왕래하면서 방언이 서로의 교류에 많은 불편을 가져다주는 것을 인식하고 북경의 한족과 함께 ‘북경말’을 창조했다. 또한 북경말을 기반으로 궁중에서 사용하는 ‘관어(官话)’를 창제해 황제를 배알하는 전국 관원들이 이를 사용하도록 하였으며 이는 이후 중국 표준어 보급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였다.
사실상 만족은 민족 고유의 언어와 문자가 있다. 만족의 만어는 알타이어계에 속하며 만족의 문자는 16세기말, 누르하치가 창제했다. 만문은 관변측 문자로 청나라시기에 장기간 사용됐고 한때는 중국 전역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면서 대량의 문헌자료도 남겨 중화민족문화유산보물고의 귀중한 자산으로 남았다. 그러다 청나라 중엽 이후 만족들은 만어를 기본상 사용하지 않고 한어 북방 방언을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일부 특정된 장소에서만 만어를 사용했다. 그리고 20세기 80년대에 이르러서는 동북지역의 일부 편벽한 집거 마을에서 생활하는 일부 로인들만이 만어를 구사하게 되였다.
만족은 또 성씨가 무려 600여개나 되여 중국의 여러 민족중에서 한족 다음으로 성씨가 많은 민족으로 꼽힌다. 그러나 신해혁명 이후 대다수 만족인들이 한자 성씨를 사용하게 되면서 오늘날 많은 만족인들은 자신의 옛 성씨를 모르고 있는 상황이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후 만족은 전국의 여러 민족 인민들과 함께 나라의 주인이 되여 민족평등 권리를 향유하고 있다. 1957년 북경시 외곽에 일련의 만족향이 세워지고 만족이 산재해있는 지역에서는 만족과 기타 소수민족 련합민족향이 설립되였다.
/중국국제방송 사진 길림일보
编辑:김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