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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이야기32] 시어머님의 '불호령'

안상근      발표시간: 2026-06-01 16:30       출처: 길림신문 选择字号【

◎정금련

 류수같은 세월이 흘러 이젠 나도 일흔의 문턱에 들어섰건만, 오늘도 시어머니처럼 손발이 분주해진다.

손수 반찬을 지지고 볶고 설 차림상을 차렸지만 손주들은 둬저가락 뜨네 마네 하고는 핸드폰 삼매경에 빠져든다. 텅 빈 듯한 아이들의 눈동자를 보노라니 야속해서 도망치고 싶었던 그때 그 시절 시어머님의 '불호령'이 못내 그리워진다.

매년 설명절을 즐겁게 쇠고 나면 시어머님은 '불호령'을 내리시군 했다.

"모두 와서 함께 메주를 써야겠다." 하시면서 아침 일찍 우리 형제들을 모두 부르신다. 어머님은 "초닷새, 초엿새 메주가 달고 맛있다." 고 하시면서 콩을 정선하기 시작하셨다. 그때는 갓 시집 와서 어쩌다 휴식하는 명절인데 하필이면 명절에 귀찮게 메주를 하시는지 참 시어머님이 야속하기만 했다. 그러나 시어머니의 '어명'이라 별수없이 따르기로 맘 먹고 집을 나설수밖에 없었다.

문을 떼고 들어서는 순간, 두 눈이 휘둥그래지고 눈굽이 젖어 들었다. 새벽 3시부터 시아버님은 불을 때고 시어머님은 두 가마에 콩을 안치고 여덟 시가 되기도 전에 삶은 콩을 손절구로 모두 찧어 놓으셨기때문이다.

너무도 미안한 마음에 "벌써 다 해놓으셨네요. 어머님, 제가 너무 늦게 왔습니다."라고 사죄하면 시어머님은 “빨리 올라 오오. 함께 빚으면 되오.” 하시면서 무랍없이 환하게 웃으셨다.

우리는 모여서 금방 뭉겨 놓은 메주를 둥글게 빚어 벼짚을 깔고 올려놓고, 또 묵은 장 한 소래에 햇 메주를 버무려 '오누이장'을 만들었다. 그리고 집에서 대물림한 나무 소쿠리에다 벼짚을 펴고 청국장을 띄우기도 했다.

그때 우린 뜨끈 뜨끈한 가마목에서 청국장에 명태를 넣고 보글보글 끓인 국물 한 그릇에 옥수수밥 한그릇 뚝딱 비우고 나면 그 맛이 또한 천하별미였다. 

저녁밥을 맛나게 먹은 우리 형제들은 윷판으로 옮겨 즐겁게 놀기 시작한다. 

그러는 사이에 시어머님은 없는 살림에도 어느새 오누이장이며 마른 산나물이며를 꽁꽁 싸서 보따리를 여러개 만드시군 했다... 

 시어머님은 항상 우리에게 "한끼 못 먹은 티는 나지 안아도 없고 못 사는 티는 난 다" 고 하면서 아껴 드시고 아껴 쓰면서도 항상 우리들에게 휴일만 되면 "오늘은 두부를 앗을테니 함께 하자" "오늘은 순대를 함께 만들어 먹어보자"... 이런 저런 각가지 '불호령'을 내리시였고 우리는 또 시어머님의 이런 제안을 항상 '가풍'으로 받아들이면서 장장 25년을 내내 이어 왔다. 이렇게 시어머니가 항상 자식들에게 일솜씨를 모름지기 배워주고 이끌어주니 형제들의 정도 더욱 두터워 졌다.

 그런데 그 잊지 못할 '불호령' 중 마지막 '불호령'이 내 마음속의 마지막 여한으로 남아 지울래야 지울수 없는 평생의 후회로 남아있다.

그날, 무역 물자를 싣고 먼 길을 갔다 집에 오는 길에 시댁에 잠간 들렸더니 시어머님의 '불호령'이 또 시작되였다.

"래일 집에 오너라. 감자국수를 푸짐히 사왔으니 형제들이 모여 함께 먹자." 라고 하셨다. 그날 따라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열 몇시간이나 차를 타고 온 터라 몸이 피곤했다. 그래서 싫은 마음에 시어머님께 "감기 기운이 있어 좀 쉬겠습니다."라고 외면했고 시어머님도 그렇게 하라고 선선히 대답해주시였다. 그후 며칠 뒤에 외국 출장을 떠나게 되였다.

그런데 출장을 나온지 스무날만에 부고가 날아 올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다. 시어머님이 심장병으로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나셨단다. 청천벽력이 가슴을 쳤다. 자식들을 보고 싶어서 또 맛있는 것 을 주려고 오라고 했던 그 한마디, 시어머니의 그 마지막 '불호령'을 끝내 지키지 못한 내가 너무나 미워졌고 그 후회는 가슴 한구석에 영원한 흑점으로 남아있다.

세월이 지나니 시어미니의 자식들을 향한 '불호령' 의 날들이 너무나도 소중한 추억의 날들이였음을 뒤늦게야 깨닫게 된다.

'불호령'속에 깃든 시어머님의 참뜻을 떠올리기만 해도 목이 메여 눈시울이 젖어든다. 비록 세상은 변해가고 가마목에서 지지고 볶던 그 미량풍속들은 점점 멀어져 가고 있지만 그 옛날 따뜻했던 시어머님의 인정보꾸레미를 풀어 그리운 마음을 되새기며 달래보군 한다.

그때 시어머님의 그 '불호령'은 나를 외롭게 내버려 두지 않으려 했던 웃세대 어른들의 사려깊은 사랑이였음을... 이제 나는 그 사랑의 빚을 갚기 위해 내 손주들에게 그 '아름다웠던 불호령' 을 맘껏 이야기해주려 한다. 시부모님의 그 뜨거웠던 마음의 참사랑을 말이다. 이제는 그 참사랑을 내가 이어받아 후세대들에게 위대하고 아름다운 참사랑을 전하련다. 

아,ㅡ 그립고 그리운 잊지 못할 시어머님의 '불호령'이여!


정금련 

연변시조협회 회원

1978년부터 연길시조양천공소합작사 직원

1998년부터 무역사업에 종사


编辑:안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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