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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 근대 중국의 경제중심도시

김영화      발표시간: 2025-04-28 10:35       출처: 국제방송-조선어 选择字号【

무한은 유구한 력사를 자랑하고 수많은 이야기가 깃들어 있는 유명한 문화의 도시이자 짙은 형초문화의 특색을 띤 유명한 력사의 도시이다.

이 곳에서 만나는 장강과 한수강, 그리고 곳곳에 보석처럼 산재한 크고 작은 호수들이 대범한 기질의 도시 무한에 부드러운 느낌을 안겨주어 무한은 경치도 아름답다.

호북성 성도인 무한은 장강과 한수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한 화중지역의 물자 집산지로 예로부터 ‘주변의 9개 성을 련결’하는 교통의 중심지였다.

무한은 ‘무한3진’의 통칭이다. ‘3진’은 장강과 한수강에 의해 분류된 무창과 한구, 한양 세 지역을 말한다. 그 중 한구는 가장 번화한 상권이자 화중지역 상품의 집산지이고 무창은 대학교가 집중된 문화구역이자 무한의 현대도시문화를 잘 보여주는 곳이다.

무한이 집중적으로 발전시키는 개발단지가 들어선 한양은 무한의 미래를 대변한다. 따라서 무한의 대부분 명소는 모두 무창과 한양에 집중되여 있으며 이 두 지역은 ‘강의 도시’ 무한의 아름다운 경치와 다양한 풍속, 무한한 매력을 보여주는 무한의 대표이다.

무한성은 최초로 1800여년 전 동한때에 축성했다. 당시 오늘의 한양에 성을 쌓았는데 여남(汝南), 돈양(沌陽)이라 불리다가 수나라 초반에 한양으로 개명해 오늘에 이른다.

무한의 고성들은 모두 방어에 편리한 목적으로 강을 마주한 산자락에 축성했다. 하지만 오늘날 이런 고성은 모두 력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그 모습을 찾을 수 없다.

한구는 원래 성을 쌓지 않다가 1600년대에 이르러 홍수 방지 목적으로 강가에 언제를 쌓았다. 1800년대에 농민 봉기군인 태평군이 언제를 기반으로 한구보를 축조했으며 1900년대에 이르러 한구보를 철거하고 거리를 조성했는데 그 거리가 바로 지금의 중산대로이다.

력사적으로 무한은 상업을 중심으로 발전해왔다. 동서남북으로 사통팔달의 요충지에 위치한 무한은 예로부터 중원과 남방, 장강 중류와 하류지역간 경제교류와 문화융합의 중심이였다.

1600여년 전에 무한은 벌써 유명한 항만이였고 1000여년 전에는 상업이 번창하고 수로 교통이 발달한 도시로 부상했다. 500여년 전 한구가 흥기하면서 ‘십 리에 돛이 숲을 이루고 만가구의 등불이 밤을 밝히는’ 당시 중국 4대 도시 중 하나였으며 화중지역 물자 집산중심이 되였다.

장강 기슭의 강한로에서 황포로, 중산대도까지 부지 1.8평방키로메터의 량옥지역이 조성되여 오늘까지 보존되고 있다. 길이 1,600메터, 너비 20메터의 이 거리는 백년의 력사를 보유한 무한의 유명한 상업거리이다.

이 거리는 기존의 구도를 보존한 동시에 근대의 서양식 건축물 500여 채를 거느린다. 그 중 50여 채가 ‘무한시 력사 우수 건축 보존’ 리스트에 선정되였다.

무한은 경제가 번영할 뿐만 아니라 인문도 아주 풍부하다.  황학루는 무창의 사산(蛇山)에 높이 솟아 ‘천하의 절경’을 이룬다.

높이 51메터의 황학루는 겉으로 보기에는 5층이지만 내부는 9층으로 되여 있고 등정이 가능해 정상에 올라서면 무한3진의 아름다운 경관이 한 눈에 안겨온다.

황학루는 처음에 군사적 방어 목적으로 축조했으나 당나라때에 이르러 점차 유명한 명승이 되였으며 최호가 시 <황학루에 올라>를 쓰면서 더욱 명성이 자자해졌다.

한양의 구산 산자락에 위치한 고금대는 북송때 거문고의 명수 백아와 그의 절친인 종자기를 기념하기 위해 축조한 것으로 백아대라고도 부른다.

황학루, 청천각과 함께 무한의 3대 명승으로 불리는 고금대는 중국의 정원 조성에서 사용하는 ‘차경’ 기법을 활용해 구산의 산수를 교묘하게 접목시켜 광활하면서도 심원한 예술적 경지를 보여준다.

메인 건물외에 정원과 숲, 화원, 다실 등 다양한 경관을 아우르는 고금대는 그 배치가 교묘하다. 전각앞에 돌로 쌓은 네모난 금대는 백아가 거문고를 타던 곳이라고 전해진다.

청천루라고도 하는 청천각은 구산의 동쪽 기슭에 위치해 북쪽으로 한수강을 마주하고 동쪽으로 장강을 사이 두고 황학루를 바라본다.

명나라 때 한양지부의 행궁으로 신축되였다가 1984년에 개축한 청천각은 당나라 최호의 시 <황학루에 올라> 중에서 ‘맑은 내물 저쪽엔 한양의 나무들이 력력하고 봄 풀은 앵무주에 무성히 자라도다’ 라는 시구에서 이름을 취했다.

17.5메터 높이의 청천각은 목조건물을 모방한 철물구조에 전통적인 기법으로 채색의 그림을 그리고 정교한 조각을 새겼다. 2층으로 된 청천각은 ‘산세에 의해 단을 조성하고 그 우에 루각을 짓는’ 초나라 사람들의 웅장한 기상과 문화적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무한은 유구한 력사를 보유한 도시이다. 1800여년 전의 동한 후반에 구산과 사산에 군사적 목적으로 성을 쌓은 것을 시작으로 700여년 전의 명(明) 나라 때에 이르러 무한 3진이 기본 구도를 형성했으며 뛰어난 지리적 여건과 독특한 경제적 위상으로 내외에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황학루와 청천각, 고금대, 귀원사 등 많은 명소는 무한의 유구한 력사를 증명하고 오늘날도 그 자리를 지키면서 사람들에게 과거 무한의 눈부신 문화를 말한다.

오늘날도 무한에는 신해혁명기념관과 무창봉기군 정부 사적지, 경한철도 총공회 사적지, 무한 국민정부 건물 등 많은 혁명사적지들이 보존되어 무한의 영광스러운 력사를 증명한다.

아름다운 무한은 장강 중류에 위치한 눈부신 보석이다. 산도 많고 물도 많은 무한의 주변에는 크고 작은 호수 100여개가 산재해 동호와 남호, 사호가 무한 3진을 산 좋고 물 맑은 도시로 만든다.

장강을 가로질러 무창의 사산과 한양의 구산을 련결하는 무한장강대교는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후 처음으로 건설한 장강교량이자 무한의 중요한 대표 축조물로 ‘만리 장강의 제1 교량’이라는 미명을 가지고 있다.

/국제방송


编辑: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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