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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한채에 한국사 반쪽이 깃들어있다

박명화      발표시간: 2026-02-26 16:10       출처: 新华社 选择字号【

2025년 12월 29일, 한국 대통령 이재명이 탄 차량이 청와대에 도착하고 있다. /신화넷

2024년 1월 13일, 관광객들이 청와대 본관 내부를 관람하며 사진을 찍고 있다. /신화넷

“청와대 한채에 한국사 반쪽이 깃들어있다.”

2025년 12월 29일 새벽, 한국 국가원수를 상징하는 봉황기가 3년여  만에 다시 청와대에 게양됐다. 새로운 시대가 조용히 막을 열었다.

오전 9시 무렵, 나는 몇몇 한국 기자들과 함께 청와대로 초청받아 이재명 대통령의 청와대 복귀 첫 출근 현장을 지켜보았다. 겨울 서울의 매서운 한기 속에서도 청와대 정문 앞은 이미 태극기를 든 지지자들로 가득찼다. 이재명 대통령 차량 행렬이 나타난 순간, 현장은 마치 불이 붙은 듯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환호 속에 전용차는 천천히 이 한국 최고 권력의 상징인 뜰 안으로 들어섰다.

기자로서 나는 이곳에서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정부 시절 중대한 국사를 다루던 엄숙한 순간들을 지켜보며 청와대의 삼엄함과 위엄을 느꼈다. 윤석열정부가 청와대를 개방했을 때는 관광객으로 뜰 안을 거닐며 위엄을 벗어던진 채 도시의 고즈넉한 풍경으로 자리잡은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제 다시 기자로서 이곳에 돌아와 대통령실의 청와대 복귀를 목격하고 있다. 같은 길, 같은 문이지만 완전히 다른 시대의 숨결이 느껴진다.

정치 현장의 파란만장을 지켜보다

청와대는 서울 종로구 세종로 1번지에 위치해있다. 뒤로 북악산을 등지고 앞으로는 한강을 바라보며 조선왕조의 정치 중심지였던 경복궁과 이웃하고 있다. 터가 높아 서울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다.

이 땅은 대한민국보다 력사가 훨씬 깊고 길다. 청와대 안 공식 안내에 따르면 북악산에서 경복궁 방향으로 이어지는 이 일대는 예로부터 풍수지리상 명당으로 알려져있다. 1104년 고려 숙종 시절, 청와대 터는 처음으로 고려 왕실의 이궁(离宫)으로 사서에 기록되여있다. 조선왕조 시절, 청와대 터는 경복궁 후원(后苑)의 일부로 왕궁을 지키는 요충지였다.

일제강점기, 조선반도는 온통 유린당했다. 일본 통치자들은 경복궁 후원의 대부분 건물을 철거하고 1939년 조선총독 관저를 세워 이를 식민통치의 상징으로 삼았다. 새로운 권력 체계로 오래된 력사의 맥을 덮고 이곳의 전통적 기억과 존엄을 지우려 한 것이였다.

1945년 광복후, 조선총독 관저는 한동안 미군정 사령관  관저로 쓰였다. 1948년, 이승만 대통령이 이를 대통령 집무실 겸  관저로 정하고 ‘경무대’(景武台)라 이름지었다. 이로부터 이곳은 한국 대통령의 생활과 집무 공간이 됐다. 1960년 윤보선 대통령이 취임한 뒤 독재 이미지를 없애고자 ‘경무대’를 ‘청와대’로 고쳐 불렀다.

1990년대초, 노태우 대통령 시절 지금의 청와대 본관과 관저가 세워졌다.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은 일제강점기 때 지어진 옛 조선총독  관저를 철거했다. 철거 과정에서 건물 중앙의 돔 형태의 첨탑 일부는 분리·보존되였으나 원래 자리에 남겨두지 않았다. 그 철거 부재는 지금 충청남도 천안독립기념관 서쪽 부지에 반쯤 땅에 묻힌 채로 있다. 마치 그 우에 굴욕의 식민 력사가 새겨져 있었음을 말해주듯.

2024년 1월 13일, 관광객들이 청와대 본관 내부를 관람하며 사진을 찍고 있다. /신화넷

관광객들이 청와대 본관 안에 전시된 력대 한국 대통령들의 사진을 관람하고 있다. /신화넷

청와대가 개방된 1,179일

2022년 3월, 윤석열은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청와대 대통령실 이전 방안’을 내놓았다. 대통령실을 청와대에서 옮겨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에 새 대통령실을 설치한다는 내용이였다. 소식이 전해지자 놀라움과 의문, 론란이 한꺼번에 터져나왔다.

윤석열이 내세운 명분은 그럴듯 했다. 청와대가 산자락 깊숙이 자리잡고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형국이라 민의와 멀어질 수 밖에 없고 용산으로 옮기면 소통이 쉬워져 효률성을 높이고 민심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였다.

같은 해 5월 10일, 청와대는 공식적으로 대중에게 문을 열었다. 청와대 력사상 처음 있는 대규모 개방이였다.

그 시절은 특별했다. 개방 첫 두달 동안에만 약 140만명이 한때 ‘가까이 하기 어려웠던’ 이 뜰을 찾았다. 통계에 따르면 2022년 5월부터 2025년 8월까지 문을 연 1,179일 동안 루적 약 852만명의 국내외 관광객이 청와대에 발자취를 남겼다.

개방 기간 영빈관, 본관, 관저 등 핵심 건물이 모두 공개됐다. 본관은 청와대의 중심 건물로 대통령 집무실, 연회장, 접견실 등 기능 공간이 들어서있다. 건축 양식은 한국 전통 미감을 녹여냈다. 푸른빛 한식 기와로 덮인 상징적인 지붕이 가장 눈에 띈다. 예전에는 외국 정상이나 장관급 이상 고위 관료만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던 본관이 개방 기간엔 가장 인기 있는 명소가 됐다.

본관 로비에 들어서면 높은 천장의 공간이 펼쳐진다. 바닥엔 붉은 융단이 깔려있고 널찍한 계단이 로비 중앙에서 우로 이어지며 시야가 탁 트여 장중하다. 이 장면은 대통령이 외빈을 접견하는 TV 화면에 수없이 등장했기에 개방 기간 계단 앞은 항상 줄이 길게 늘어섰다. 사람들은 휴대전화를 들고 각도를 맞추며 력사와 함께하는 특별한 순간을 간직하려 애썼다.

신화사 서울 특파원실은 청와대에서 1키로메터도 떨어져 있지 않다. 청와대 개방 기간, 외국인은 려권만 지참하면 예약 없이 무료로 관람할 수 있어 청와대는 내가 자주 산책하던 공원이 됐다. 가을 청와대는 더욱 아름다웠다. 본관 뒤로 북악산의 능선이 펼쳐지고 가까운 산책로와 담장 모퉁이, 뜰에서부터 먼 산비탈까지 단풍이 물들어 가을빛은 층층이 더욱 선명했다.

2024년 5월, 관광객들이 청와대 안 대통령 관저를 관람하고 있다. /신화넷

대통령실 환원의 정치적 계산

윤석열은 청와대를 떠난 첫 대통령이지만 지난 수십 년간 ‘청와대 이전’은 사실 대선 때마다 단골 구호처럼 되풀이됐다. 노무현, 문재인 모두 ‘청와대 이전’ 구상을 밝힌 적 있다. 어떤 이는 광화문으로 옮겨 대통령을 도시 중심에 두자고 주장했고 어떤 이는 세종시를 지목해 국가 중심을 남쪽으로 밀어내자고 했다. 매번 제안마다 비슷한 정치적 비전이 담겨있었다. 높은 담장을 허물고 국민 곁으로 가며 개혁을 완수하겠다는 것이였다. 그러나 안보, 비용, 행정 효률성, 법적 론란, 정치적 합의… 뒤따르는 론쟁이 끊이지 않으면서 청와대는 정치적 롱단 도구이자 여론 광풍의 중심지로 전락하기를 반복했다.

2022년 윤석열이 단행한 청와대 이전은 언론으로부터 ‘정치적 도박’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전 비용은 당초 예산을 훌쩍 웃돌았다. 각종 부대 공사비가 계속 추가되면서 최종 실제 지출액은 832억원(약 4억원)에 달했다.

‘친민’(亲民), ‘제왕적 대통령제 청산’을 내건 용산 집무실 이전은 줄곧 국민의 비판을 받아왔다. 2025년 4월, 헌법재판소가 탄핵안을 인용하면서 윤석열은 한국 헌정 사상 두번째로 파면된 현직 대통령이 됐고 임기의 반도 채우지 못한 채 쓸쓸히 물러났다.

‘청와대 복귀’는 2025년 이재명이 대선 기간 반복적으로 언급한 ‘정치적 선언’중 하나였으며 윤석열의 ‘용산시대’와 선을 긋는 상징처럼 여겨졌다. 실제로 이재명은 용산 대통령실 시절 외부 민원 증가, 안보 위험 등의 론란을 해소하는 것 외에도 청와대가 오래동안 대통령실로 기능해온 만큼 시설과 운영 체계가 더 안정적이라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정부는 취임후 신속히 청와대 복귀 작업을 추진했다. 6월 국무회의에서 이전 계획을 의결하고 8월 1일부터 일반 공개를 중단한 뒤 전면적인 보안 강화, 시설 점검 및 개보수에 들어갔다. 12월 9일 대통령실 이전이 본격 착수돼 각 부서 집무 시설이 용산에서 청와대로 분산 이전됐으며 12월 22일부터 대통령실 기자실이 있는 춘추관이 운영을 재개했다. 12월 29일 0시 무렵, 청와대에 봉황기가 게양되면서 복귀 절차가 완료됐음을 공식화했다.

청와대가 오래동안 비판받아온 ‘왕궁식 페쇄성’을 깨기 위해 이재명은 집무실을 원래 보좌진이 사용하던 ‘여민관’(与民馆)에 두고 비서실장, 정책실장, 국가안보실장 등 핵심 참모진과 한 건물에서 일하며 더 자주 더 투명하게 소통하는 방식으로 새 정부의 남다른 통치 행보를 보여주려 하고 있다.

한국 정계에서 청와대는 언제나 골치거리였다. ‘청와대 저주’, ‘풍수지리상 좋지 않다.’는 말이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박정희에서 노무현, 박근혜에서 윤석열에 이르기까지 여러 대통령이 퇴임후 비극적 결말을 맞았다.

‘흉지’와 ‘복지’ 론쟁이 일정 기간마다 되살아나는 것은 바로 청와대가 현실 정치의 짐을 너무 많이 짊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제도 운영이 대립에 빠지고 권력 행사에 절제가 사라질 때면 사람들은 복잡한 정치 론리를 풍수라는 꼬리표에 의존하곤 했다. 이는 마치 쉬운 해명거리를 찾듯 여론으로 하여금 제도와 인간 본성의 난제를 외면한 채 신비로운 풍수 타령에 기대게 만든다.

그러나 풍수가 정치를 결정한 적은 없으며 청와대가 정치 인물의 운명을 좌우한 적도 없다.

/신화넷


编辑:박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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