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부모 봉양·친정 부모 모심·조카 양육까지, 장춘 주부 박금자 씨의 삶
백가지 선 가운데 효도가 첫째라 했다. 장춘시에 사는 박금자(1974년생) 씨는 중학교 교단을 지키는 평범한 교사이자 주부다. 하지만 그의 삶을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평범하다'는 말이 얼마나 무색한지 금새 알게 된다. 시부모 봉양 30년, 친정 부모 모시기 20년, 갓난 조카 양육 18년—숫자만으로도 범상치 않은 헌신의 궤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30년 며느리의 자리…"효도란 발걸음"
결혼과 함께 시부모와 한지붕 아래 살림을 꾸린 박금자씨는 수십 년째 로인들의 일상을 곁에서 챙겨 왔다. 끼니 하나를 차릴 때도 건강을 먼저 헤아렸고, 계절이 바뀌면 옷 한 벌 챙기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2010년 시어머니가 뇌출혈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뒤에도 박금자씨는 흔들리지 않았다. 홀로 남은 시아버지 곁을 더욱 가까이 지켰고, 로인이 페암 진단을 받자 병원 동행과 밤샘 간호를 도맡았다. 2024년 시아버지가 88세를 일기로 평안히 눈을 감기까지, 그의 손길은 단 하루도 멎지 않았다. "효도란 말이 아니라 발걸음"이라는 것을 박금자씨는 30년의 삶으로 묵묵히 증명했다.

시부모님 환갑잔치때 시어머니를 업고 덩실덩실 춤 추는 박금자씨

시아버님 생전에 효도관광길에 나선 박금자씨 부부
농촌 부모님을 도시로…"손 하나 까딱 안 하셔도 됩니다"
2007년, 박금자씨는 농촌에서 평생 고생만 해 온 친정 부모님을 장춘으로 모셔 왔다. 생활비는 물론 의식주와 병원비까지 부부가 전부 책임졌다. 해마다 시간을 따로 내여 부모님과 함께 려행을 떠나는 일도 거르지 않았다. 산천 경치를 함께 바라보며 나누는 담소 한마디가 부모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값진 선물임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부모님은 그런 딸의 곁에서 진정한 로년의 행복을 누렸다.

친정부모님을 모시고 매년 관광 다니는 박금자씨 부부
네 달짜리 조카를 18년…"책임이 곧 사랑"
남동생 부부가 한국으로 일을 떠나면서 생후 4개월 된 조카가 박금자씨 품에 맡겨졌다. 포대기에 싸인 아기가 어엿한 청년으로 자라기까지 18년, 박금자씨는 그 아이의 교육과 건강, 성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졌다. 잘못된 행동에는 단호히 원칙을 세웠고, 아이가 반발해도 흔들리지 않았다. 넘치는 사랑이 아닌 올바른 사랑으로 아이의 손을 잡아 이끈 결과, 그 아이는 어엿한 청년으로 자라났다.
련속 22년 섣달그믐 밥상…대가족의 구심점
2005년부터 시작된 섣달그믐 가족 모임은 올해로 꼬박 22해째다. 가장 많을 때는 스물여덟 명이 한 식탁에 둘러앉았다. 커다란 밥상을 차리는 수고로움도, 어른들을 챙기며 분주히 오가는 번거로움도 박금자씨에게는 기쁨이었다. 코로나19 류행 당시, 남편의 삼촌이 연길에서 위암 진단을 받고 홀로 남겨지자 박금자씨 부부는 망설임 없이 로인을 장춘으로 모셔와 치료를 도왔다. 로인이 연길로 옮긴 뒤에도 두 도시를 수차례 오가며 병간호를 이어 갔고, 로인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 뒷일까지 정성껏 마무리했다.

할아버지가 병환에 계실때 박금자씨 아들이 병간호 하고 있다
아들의 눈물이 말해 주는 것
박금자씨의 삶은 아들에게 고스란히 스며들었다. 아들이 외지에서 석사 과정을 밟던 어느 날, 영상통화 중 할아버지가 "손자야, 보고 싶구나"라고 한마디 하자 아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그리고 며칠 뒤, 가족에게 아무 말도 없이 먼 길을 달려와 할아버지를 꼭 껴안았다. 서로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는 그 장면 앞에서 박금자씨는 비로소 생각했다. '이 모든 것이 헛되지 않았구나.' 박금자씨는 그때 일생의 가장 큰 자랑이자 보람을 느꼈다. 길림성 의료자원봉사자협회 비서장, 장춘시 남관구 사회사업 및 자원봉사 련합회 부회장으로도 활동하는 박금자씨는 가정에서 쌓아온 따뜻한 마음을 사회로도 넓혀 가고 있다. "저는 특별한 일을 한 게 없습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량심껏, 최선을 다해 했을 뿐입니다." 평범한 듯 보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그 길을, 쉰을 넘긴 오늘에도 묵묵히 걸어가는 박금자씨. 효도와 헌신, 그리고 가족을 향한 사랑—그의 삶은 우리가 일상 속에서 잊고 지내는 소중한 가치들을 조용히 일깨워 준다.
/김민기자
编辑:김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