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제2진‘길림 좋은 사람’ 호련진의 이야기

이통만족자치현 경대진 부산촌에서 호련진의 이름을 말하면 사람들은 모두 엄지를 내민다. 수십년간 호련진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효와 가족에 대한 사랑의 참뜻을 보여주며 가족을 따뜻하게 보살폈다.
호련진은 평범한 농민 가정에서 태여났다. 친정부모님들이 몸이 허약하고 병환으로 앓다보니 장녀로서 그는 어려서부터 남다른 강인함과 책임감을 보였다. 아홉살 되는 해 또래의 아이들은 논밭에서 즐겁게 뛰어놀며 동년을 보내고 있었지만 호련진은 이미 가족의 짐을 어깨에 짊어졌다. 호련진은 날이 채 밝기도 전에 풀을 베여서 가축에게 먹이를 주었고 그 일이 끝나면 인차 밭에 달려가 채소를 따다 가족의 식사를 준비했다.
22살에 결혼한 호련진은 집안살림이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부지런한 두손과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남편과 함께 화목한 가정을 꾸려 나갔다. 시집에는 남편 우로 형님이 두명과 남동생 총 4형제였다. 결혼 후 부지런한 호련진은 스스로 시댁의 살림을 떠맡았고 틈틈히 시간을 내여 청소를 해주면서 집을 깨끗하게 정리해주었다. 뿐만 아니라 시부모님, 큰형, 작은 동생의 빨래도 묵묵히 가져다 씻었고 더럽고 힘든 일을 꺼리지 않았다. 그의 노력으로 시댁은 환경이 한층 깨끗해졌고 가족 분위기도 훨씬 따뜻하고 화목해졌다.

1993년, 큰 형님이 리혼하고 외지로 로무를 나가면서 3살난 조카가 집에 홀로 남겨지게 되였다. 어린 조카의 모습을 보며 마음이 아팠던 호련진은 주저없이 조카를 데려와 친딸처럼 돌보기 시작했다. 당시 호련진의 집에는 막 태어난 딸이 있었고 또 로인을 모시고 있었다. 여기에 조카까지 함께 생활해야 한다는 것은 고단함이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주위에서 호련진의 고단함을 보다못해 여러번 조카를 다른 곳으로 보내 부담을 줄이라고 권고했지만 호련진은 “아이가 이렇게 어린데 차마 보낼 수 없어요. 꼭 잘 키우겠습니다.”고 단호히 거절했다. 이렇게 그는 혈연관계가 없는 조카를 친자식처럼 여기며 정성껏 키워 건강하게 성장시켰다. “이제 아이도 결혼해 자기만의 행복한 가정을 꾸렸어요. 그동안의 수고가 다 보람있었던 것 같아요.”라고 조카 이야기를 꺼내는 그의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가득했다.
아이들을 키우는 와중에도 그는 량가 로인을 모시는 일에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2008년 시아버지가 세상을 뜨자 시어머니와 미혼인 둘째 형님을 모셔와 함께 살며 돌보았다. 모든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한편 시어머니께 취미생활을 만들어 촌의 로인들과 교류하도록 권장했으며 편안한 로후를 보낼 수 있도록 배려했다.

2014년 친정 부모님이 잇따라 뇌경색 진단을 받아 스스로 생활하기 어려워지자 그는 망설임 없이 부모를 돌보는 일을 짊어졌다. 매일 두집을 오가며 하루에 여섯끼 식사를 차리고 로인들의 일상을 돌보느라 바쁘게 돌아쳤지만 농망기에는 또 남편과 함께 부모님의 논밭도 함께 일궜다. 생활이 힘들었지만 호련진은 불평 한마디 없이 묵묵히 자기의 일을 해냈다. 2020년 친정 아버지가 세상을 뜨자 혼자 지내기 어려운 친정어머니를 모셔와 세가족이 한집에 조화롭게 모여 살기 시작했다.
혈연보다 더 깊은 정으로 더 큰 사랑과 효성을 다하며 여러 로인을 모시는 데 조금도 후회가 없었던 호련진, 그의 남다른 헌신과 지속적인 실천은 ‘효’와 ‘사랑’이라는 따뜻한 빛이 되여 온 가족을 비추고 있다. 그는 앞서 ‘사평 좋은 사람’에 선정되였고 일전에는 2025년 제2진 ‘길림 좋은 사람’으로 선정되였다.
/길림일보
编辑:정현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