년말을 맞아 각종 년간 결산이 한창이다. 경제와 과학기술 성과에 주목하는 한편, 지역사회에 깊이 뿌리내리고 민족 문화와 정체성을 이어온 기층 실천도 함께 기억할 가치가 있다. 최근 1950년-1970년대 연변, 장춘, 북경 등지에서 활발히 활동했던 조선족 로인독보조의 소중한 력사가 다시 조명받고 있다.

1956년 장춘시칠마로독보조 단오절 기념촬영
장춘 칠마로: 가정 독서모임에서 지역사회의 기둥으로
1956년, 장춘시 관성구 칠마로에 조선족로인독보조가 설립되였다. 해방전부터 칠마로 부근에는 조선족들이 밀집해 살았다. 1957년, 칠마로와 가까운 상해로에 장춘시조선족군중예술관이 설립되였고 그후로 이 일대에 차츰 조선족 학교, 유치원, 서점, 상점, 식당들이 자리를 잡았다.
박옥봉의 집에서 시작된 독보조 모임은 이내 인원이 늘어나 정책 선전, 위생 운동, 농촌 지원, 어려운 가정 위문 등 다양한 지역사회 활동을 펼치는 힘찬 모습으로 자리잡았다. 회원은 40명까지 증가했고 활동 장소는 장춘시조선족군중예술관의 지원을 받아 고정된 공간을 마련하게 되였다. 1986년에는 이를 기반으로 장춘시 최초의 조선족 사회단체인 관성구조선족로인협회가 공식 출범하였다.

1965년 북경시화평리독보조 단체사진
북경 화평리: 고향을 잇는 문화공간
북경시 동성구 화평리(和平里) 지역은 1956년부터 민족출판사, 민족화보사, 민족단결잡지사, 중국민족문화출판사, 북경시민족문화교류중심, 동방가무단 등 주요 문화기관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이로 하여 전국 각지에서 소수민족 인구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김순령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의 가족은 1956년 연변교육출판사에서 민족출판사로 전근하는 아버지를 따라 연길에서 북경으로 이사했고 그는 1959년 북경에서 태여났다.
화평리지역에는 동북3성에서 온 조선족 자녀를 따라 상경한 로인들을 중심으로 독보조가 꾸려졌다. 이곳은 국가 정책과 시사를 학습하는 공간이자 고향 이야기를 나누고 민족음식을 함께하며 전통문화를 이어가는 소중한 장이였다. 정기적인 모임과 노래, 춤, 린근 예술단과의 교류를 통해 로인들은 화평리에서 따뜻한 모임을 형성해나갔다. 이 동네에는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조선족식당 ‘내고향’도 자리하고 있어 문화적 정착을 실감케 했다.

1971년, 룡정현 광신공사독보조 기념촬영
‘독보조’에서 ‘로인협회’로: 형태의 변화, 정신의 계승
1980년대에 들어서며 당시 연변조선족자치주당위 서기 조남기의 제안으로 ‘로인독보조’는 보다 공식적인 사회단체인 ‘로인협회’로 개편되기 시작했다. 명칭과 조직 형태는 변했으나 그 뿌리에는 1950년대부터 이어져 온 자발적인 독보조조직, 문화 전수, 상호 부조의 정신이 그대로 흐르고 있다. 이는 민족 구성원들이 시대 변화 속에서도 스스로의 문화를 지켜나간 생동한 력사의 한 단면이다.
/박명화기자
编辑:유경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