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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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텔레비죤을 보다가 넓은 초원을 가득 메운 양떼를 보면서 지나간 옛시절의 추억에 잠겼다.
지식청년들이 농촌에 내려가 빈하중농의 재교육을 받던 시절, 나도 열일곱 살 어린 나이에 이불짐을 둘러메고 찾아간 곳이 있었는데 고작 11세대가 사는 편벽한 중성골 마을이였다. 로약자와 환자가 많아 로동력이 모자라고 농사도 흉년이 들어 일년내내 땀흘려 가꾼 량식을 나누면 공량 낼 여유조차 없었다. 일년 농사가 한공에 고작12전이였으니 현금 분배는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래도 한집에서 한솥밥을 먹는 집체호 식구들이 있었기에 우리 또래는 농사일 배우기에 열중할 수 있었다. 현성에서 자라고 교원이신 부모님의 슬하에서 자란 나에게는 모든 것이 낯설고 힘겨웠다. 아버지는 “젊어서 고생은 돈 주고도 못 산다”며 내가 온실 속 화초에서 들판의 억새로 강하게 자라길 바라셨다. 그 바람대로 나는 마을 농민들에게서 힘든 일을 하나씩 배워 나가며 농업 기술과 의지를 닦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이듬해 봄, 밭갈이가 시작될 무렵 생산대 대장은 마을회의를 열고 로동력이 부족해 양몰이 하던 아저씨를 잠시 다른 일에 배치하려 했으나 아무도 대신 나서지 않았다.
그때 내가 손을 들었다. 모두 의아한 눈길을 보냈고 대장은 처녀애가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라며 남자들 중에서 나서라고 동원했지만 아무도 없었다. 다음 날 나는 다시 대장을 찾아가 “양몰이 아저씨에게 이틀만 가르침 받고 하겠다”고 간청했다. 사실 나는 평소 읽고 싶던 책들을 양몰이 하면서 읽을 수 있다는 속셈도 가지고 있었다. 생산대장은 하는 수 없이 허락하며 내게 안전을 신신당부했다.
나는 곧바로 양몰이 아저씨에게 달려가 이틀 동안 함께 방목하면서 양몰이 요령과 실기를 배웠다. 아침에 양우리에서 양을 산으로 내보내는 시각, 저녁에 다시 몰아넣는 요령, 물 먹이는 법, 채찍 휘두르는 법, 그리고 양들과 소통하는 암호들까지... 사람의 지휘로 양떼의 집단생활이 이루어지는 신비함에 나는 감탄했다.
사흘째부터 혼자 서른여섯 마리의 양을 몰아냈다. 양몰이 아저씨에게서 배운 요령을 떠올리며 긴장 속에 하루를 보냈다. 저녁이 되여 양우리에 넣을 때 주인이 바뀌였다고 심술부리는 몇 마리 양들때문에 애간장을 태우고 있었는데 마침 일을 마치고 돌아오던 양몰이 아저씨가 와서 도와주셨다. 다음 날 아침에 보니 양우리가 깨끗이 청소되여있었다. 새벽 일찍 양몰이 아저씨가 와서 청소해주고 간 것이였다. 너무 감동적이였다.
며칠간 배운 대로 애쓴 덕에 양들은 점차 길들여졌다. 바지에 각반을 치고 팔토시를 끼고 양모자를 쓰고 채찍을 휘두르는 나는 제법 양몰이 처녀의 자태였다. 무엇보다 자유로운 시간에 책을 읽을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기뻤다.
화창한 봄날, 아지랑이 피여오르는 아침, 양들을 양지쪽 산비탈에 풀어놓고 나는 나무 아래 앉아 장편소설《림해설원》을 펼쳐 들었다. 예쁜 간호사와 젊은 지휘관의 사랑 이야기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런데 멀리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드니 해가 중천에 떠 있고 양들은 흩어져 밭 근처까지 내려가 있었다. 깜짝 놀란 사람들이 나를 찾아다닌 것이였다. 맨 앞에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생산대장과 양몰이 아저씨가 서 있었다. 너무 미안하고 난처했다. 그날은 대충 얼버무렸지만 이후로 책임감과 자책감 속에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해야 한다는 도리를 깨우쳤다.
풀숲의 아침 이슬에 젖은 다리가 마르기도 전에 낮에는 뜨거운 태양에 땀범벅이 되였고 비 오는 날은 물벼락을 맞으며 하얗던 얼굴이 까맣게 탔다. 그래도 길들여지는 양떼들이 사랑스러웠고 온종일 양들과 함께 수십 리 산길을 걸으며 내가 생산대를 위해 한몫 할 수 있다는 자부심에 가슴이 벅찼다.
맑은 하늘의 흰구름과 나는 새들도 나를 칭찬하는 듯했고 시내물도 양떼들이 시원하게 마시라고 재잘거리는 듯했다. 양들을 개울가로 몰고 가니 흐르는 물에 입을 대고 꿀꺽꿀꺽 물을 들이키던 양들이 흡족한 눈빛으로 나를 보며 감사 인사를 하는 것만 같았다.
봄 파종이 거의 끝나갈 무렵, 새벽부터 비가 내려 휴식 통지가 내려졌다. 나는 양몰이를 나갈 차비로 무장하고 있었는데 생산대장이 들어오더니 “오늘은 내가 대신 할 테니 하루 쉬여라”고 말슴하시였다. 대장의 배려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이날 나는 하루 종일 소설 읽는 행복을 누렸다.
그날 저녁 생산대장은 대무회의를 열고 다음 날부터 다시 양몰이 아저씨에게 양을 맡기기로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대장은 “처녀애가 지금까지 견뎌낸 것이 대견하지만 계속 양몰이를 시킬 수는 없다”고 말씀했다. 그 후 나는 정든 양들이 보고 싶어 짬만 나면 양우리로 달려갔고 양들을 자식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양몰이 아저씨의 일거일동에 존경을 금치 못했다.
가을철이 되지 양몰이 아저씨의 수고로 깎은 양털을 집집마다 나누어 주었다. 우리도 한몫 얻어 농촌 어머니들의 가르침을 받아 엉킨 털을 씻고 골라서 손 도르레로 실을 뽑고 새하얀 양털실로 조끼를 떴다. 내 첫 뜨개질 솜씨로 지은 조끼를 어머니께 드렸더니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모른다. 그 행복해 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선하다.
농촌에서 잘 배우고 훌륭한 인간으로 성장하길 바라셨던 부모님은 《연변일보》와 《길림일보》에 실린 나의 양몰이 사적을 보시며 무척 자랑스러워하셨다. 비록 간고한 시골생활의 나날들이였지만 그곳은 나를 단련하고 성장시킨 광활한 천지였고 잊지 못할 력사의 한 페이지로 소중하게 남아있다.

한진숙 프로필
1955년 룡정시에서 출생.
1972년 연길현 석정공사 중성대대에 하향.
연변의학원 졸업.
룡정시병원 간호사, 연변 부유보건원 간호사로 사업하다가 퇴직.
编辑:안상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