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동렬의 장편소설 ≪불타는 숨결≫을 읽고
윤윤진(산동대학교)
리동렬의 장편소설≪불타는 숨결≫(리동렬 저, 연변인민출판사, 2024년 7월 제1판)은 서울에서 태여나 일본에서 공부하고 할빈에 와 자리잡는 지식인 장서준과 그의 애인 부아란의 이야기를 주선으로 우리 민족인 테리의 중국 할빈에서의 정착과정을 형상화하고 있는데 소설은 전체적으로 보아 우선 력사소설이고 력사기록이다. 1910년 ‘한일합방’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소설을 력사소설이라 하는 것은 소설에 력사적인 사실과 진실, 그리고 그러한 력사적 진실들이 작가가 서술하고 있는 예술적인가상 현실과 허구에 의해 부각된 인물과 사건들과 유기적으로 융합되고 결합되면서 한 시대를 력사적으로, 그리고 예술적으로 반영하고 묘사하고 있다는 얘기인데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여기에는 력사적인 사실과 력사적인 진실이 있을 뿐만아니라 력사적인 기록이 있으며 예술적으로 부각된 픽션에 기댄 허구적인 성격, 즉 가상적인 현실과 소설적으로 엮은 측면도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리동렬의 이 소설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우리가 흔히 보아오던 일반적인 력사소설과는 좀 다른 특색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력사소설이란 대개 력사사실에 기대 력사를 재생하거나, 기술하여 배경으로 삼는 력사사실을 중심으로 거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나 사건에 약간의 수정, 일정한 첨가와 삭감, 말하자면 허구란 예술적 방식을 리용하여 일부 가공을 거친 인물이나 사건들로 소설을 엮어가는 것들을 말한다. 이러한 소설들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삼국연의≫와 같은 완전히 력사사실에 기반하면서 거기에 일부 가공을 거친 허구적인 성격을 가진 내용들이 첨가되여 꾸며진 소설들이다. 그러나 우리 문학사에는 분명 력사소설에 속하지만 일부 력사사실이나 사건만을 배경으로 삼고 거기에 허구된 인물이나 사건을 그려넣어 한 력사시대를 묘사하는 작품들이 적지 않다. 이러한 소설들로는 우리에게 익숙한 안수길의 ≪북간도≫, 리근전의 ≪고난의 년대≫, 박선석의 ≪압록강≫, 최홍일의 ≪눈물젖은 두만강≫과 같은 소설들이 있는데 여기서는 력사사실보다는 허구로 된 예술적으로 부각된 인물이나 사건이나 가상적인 현실이 위주로 되면서 고향을 떠난 이주민들이 이땅에 와서 개발하고 정착하는 스토리가 전개된다. 그러나 리동렬의 이 소설은 이러한 소설들과도 좀 다르게 력사사건을 배경으로 허구적인 인물과 사건, 그리고 가상적인 현실들을 쓰고 있지만 자기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소설의 이러한 특징은 주로 두 가지 측면에서 표현된다. 하나는 우리 민족의 이주사를 반영한 대부분 소설들이 이주민, 주로는 농민들을 주인공으로 그들이 어떻게 중국 동북 지역에 와 척박한 이 땅을 개발하고 새로운 삶을 영위하였는가 하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인물과 스토리로 구성되고 있는 반면, 리동렬의 이 소설의 주인공은 그러한 소설에서 보기 드문 지식인들을 주인공들로 부각하면서 이 땅에서의 그들의 생사고락을 비롯, 그들의 어려운 정착사를 치중하여 묘사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 중국의 조선족문학사에서 아주 이색적인 것으로서 필자 역시 상기 농민위주와 이주위주, 개척위주, 개발위주, 또는 ‘제2의 고향건설’이란 고정관념으로 이 소설에 접했으나 읽어내려가는 동안 소설에서 거의 농민들을 중심으로 하는 력사 인물들을 발견하지 못했고 이주나, 이땅의 개척과 개발 같은 내용도 거의 접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와 반대로 도시생활과 지식인들이 주로 묘사되면서 다른 한 시각에서 이 땅에서의 우리 민족의 희로애락과 정착사가 그려지고 그것들이 형상화, 서사화되고 있었다. 이것은 이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서 소설이 묘사하고 있는 력사적 진실과 예술적으로 부각된 인물, 또는 사건들이 유기적으로 융합되면서 한 시대가 기록되고 력사로 되는 것이다. 사실 우리 민족의 동북 이주사는 농민들을 주체로 하고 있는데 주로는 19세기 후반기에 조선반도 북부에서 일어난 자연재해를 비롯하여 많은 이주민들이 살길을 찾아 동북지역으로 밀려들어왔다는 이주의 력사와 그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으나 거기에 등장하는 인물 대부분은 허구된 인물로(실재한 력사인물들이라 하더라도 예술적으로 많이 가공된 인물), 이러한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이 땅에서의 그들의 개척과 개발, 그리고 정착의 력사가 재현되고 있다. 따라서 이 소설에서는 농촌생활이나, 개간과개척, 그리고 ‘제2의 고향’ 건설과 같은 이야기보다는 도시 발전, 도시에서의 삶, 도시에서의 정착과 같은 내용들의 주조를 이루면서 스토리가 엮어진다. 다음은 이 소설은 우리가 흔히 보게 되는 어느 산간마을이나 농촌을 무대로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할빈이라는 개발과 개척 중에 있는 일개 근대 대도시를 무대로 거기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본과 로씨야를 중심으로 하는 세계 렬강들의 각축전을 비롯하여 당시 1910년 동북지역에 류행한 페스트방역과 퇴치과정을 배경으로 점차 이 대도시의 일원으로 되여가는 우리 민족의 피타는 력사의 한 현장과 편린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이 역시 우리 소설에서 흔히 보지 못하던 력사의 한 현장기록과 력사적인 기록과 서사로서 우리 문학사상에서 이색적인 것이다.
이처럼 이 소설은 제재나 무대, 그리고 등장하는 인물들이 모두 기존 ‘이민’ 소설이나 이주소설들과 다른 특색을 가지고 전개되는데 여기서 우리가 각별히 류의해야 할 것은 바로 이 소설에서 배경으로 전개되는 있는 국제사의 굵직굵직한 력사사실들과 소설의 직접적인 배경으로 되고 있는 근대 할빈의 형성과정과 거기에서 벌어지고 있는 온갖 인간들의 희로애락,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에 몰아넣은 페스트의 류행 등 력사적 진실과 기록들이다. 사실 이러한 사건들은 이처럼 소설이라는 방식으로 기록하지 않으면 소실될 가능성과 잊혀질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이 소설의 가장 큰 력사적, 예술적 가치와 의의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저자 윤윤진(산동대학교)
소설에서는 직접적으로 또는 구체적으로 묘사되고 있지는 않지만1894년 중일 갑오전쟁, 1904--1905년의 일로전쟁, 그리고 로씨야 정부의 중동개발 정책과 그것을 위한 시베리아 철도 건설, 동북지역에서의 패권을 노리기 위한 일본과 로씨야의 암투, 그리고 원동 할빈 지역에서 자기들의 리익을 챙기기 위한 서구 렬강들의 갖은 음모와 악행, 1910년 ‘한일합방’을 비롯하여 동학당운동, 안중근의 이또 히로부미(伊藤博文)의 할빈역 저격사건 등등이 바로 이 소설의 가장 큰 국제적인 대사건이고 배경인데 소설속의 장서준과 부아란과 같은 인물들은 바로 이러한 력사적 배경속에서 부각된 인물들로서 할빈의 국제도시로서의 성장에 의해 모험자와 략탈자를 비롯하여 한몫 보려는 수많은 인간들이 이 도시에 밀려듦으로 하여 그들과 함께 이 도시에 발을 들여 놓은 인물들이다. 소설에서 작가는 이러한 배경에 대해서, 상기 굵직굵직한 력사 사건들을 그 어느 하나도 구체적으로, 집중적으로 묘사하고 있지 않지만 할빈이라는 바야흐로 근대적인 대도시로 발돋음해 가는도시의 개발과 성장, 그리고 거기에 물밀듯이 몰려들고 있는 가지가지 인간들로 하여 생겨나는 갖은 에피소드,근대적인 대도시로 성장하는 과정에 국물이라도 얻기 위해 숟가락이라도 한몫 얹으려는 세계 렬강들의 온갖 추태와 욕망은 분명 이 소설의 가장 큰 정치 문화 사회적인 배경으로 작품에서 아주 중요한 작용을 하고 있다. 읽는 도중에 가끔 느끼게 되지만, 썰물마냥 밀려드는 로씨야인들, 그리고 야욕에 찬 일본인들과 서구 렬강들, 그리고 거기에 가세한 한국인들과 중국인들,당시 할빈은 말 그대로 가지가지 욕망에 젖어 밀려드는 모험자들의 천국이었다고 과언이 아니었다.
주지하다시피 19세기 중엽까지만 해도 할빈은 자그마한 어촌마을에 불과했다. 1891년 로씨야에서 시베리아 철도를 부설하면서 그 지선을 중국경내에 부설하고자 하였는데 로씨야의 야욕을 알아차렸는지이 계획은 청정부의 강렬한 반대에 부딪쳤다. 말은 통상이였으나 실은 자원을 략탈하기 위한 것으로 분명 침략과 략탈의 성격을 띤 것이기 때문이였을 것이다. 그런데 1894년 중일갑오전쟁이 발발하자 렬세에 처한 청정부의 태도는 급변하기 시작한다. 1896년 짜리 니콜라2세(尼古拉二世)즉위식에 참석했던 리홍장(李鸿章)은 급급히 로씨야와 암암리에 ‘중아밀약(中俄密约)’을 맺고 로씨야정부에 ‘중동철도부설권’을 비롯한 많은 특권을 넘겨주게 되는데 거기에서 청정부는 할빈철도부설권과 더불어 경영권을 로씨야에 일임하게 된다. 사실 여기에는 동북에 대한 일제의 침략을 견제하기 위한 청정부의 의도가 짙게 깔려 있는바 청정부로서는 고육지책이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로씨야는 만주리(满洲里)에서 할빈, 다시 수분하(绥芬河)에 이르는 철도, 그리고 다시 남으로 려순(旅顺)에 이르는 옹근 2,400킬로메터에 달하는 철도를 부설권을 가지고 철도를 부설하게 되는데 이 철도의 부설과 함께 중국의 내륙지역에서는 물론 세계 각지에서 할빈에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할빈과 로씨야지간의 통상을 비롯한 왕래가 잦아지기 시작하고 동북지역의 철도교차점으로 인원왕래가 대폭 늘어나면서 할빈은 점점 커가면서 근대 도시로서의 모습을 갖추고 도약하게 된다. 그러나 한 도시의 탄생, 특히 대도시의 산생은 하루 아침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소설은 이 과정을 력사적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해 소설은 이렇게 쓰고 있다. ‘그 이듬해(철도부설권을 로씨야에 준 1896년)부터 3년 사이에 할빈에는 천지개벽이 일어났다. 눈에 보이는 풍경이 날마다 눈부셔갔다. 송화강을 기적같이 가로지르는 철교가 빠르게 완공됐고 그 우로 만주리—할빈 구간을 오가는 렬차가 날마다 기적소리를 길게 울리며 달렸다. 모스크바로 오가는 렬차도 생겨났다. 부아영(소설의 녀주인공 부아린의 사촌언니)의 꿈도 매일 딸기처럼 익어갔다.서항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부설된 철교와 철도는 수많은 로동자들을 자석처럼 할빈으로 끌어들였다. 강변 도리구에는 1,800여명의 중국로동자들이 기숙할 수 있는 인(人)자 모양의 대형 판자촌도 일떠섰다. 그리고 도리구 석판길에는 중동철도를 보호하기 위한 로씨야군대의 병영이 세워졌다.이에 앞서 할빈역을 중심으로 여러 갈래 큰길이 철도 동쪽 송화강변 쪽으로 뻗으면서 도리구와 지세가 높은 남강구는 외국인들이 붐비는 세상이 됐다.’ 로씨야 조계지도 생겨났고 지금의 중앙대로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에는 성쏘피아성당이 세워지기도 했고, 로씨야인들이 경영하는 추림상행(秋林商行)이 나타났고 도리구(道里区), 남강구와 같은 로씨야 조계지를 중심으로 한 외국인 전문 거주 지역이 생겨났고, 도외구, 부가전(傅家甸)과 같은 인구 밀집지역과 중앙대로에는 ‘성당 고딕건축, 바크로건축, 르네상스건축’들이 즐비하게 늘어서기 시작했다. 근대화한 도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이다. ‘동방의 모스크바’란 이름도 여기에 서구 특히는 로씨야풍의 건물이 수없이 들어서면서 붙여진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의 왕래가 많아지면서 생긴 것인지 아니면 모스크바로 통하는 철도가 생기면서 생긴 것인지(후자의 가능성이 크다) 1910년 말부터 할빈에는 전염병이 류행하며 휩쓸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하루에 수백명씩 죽어나가는 전도시적인 온역을 퇴치하기 위해 여러가지 약물 소독, 쥐잡이, 환자 격리와 같은 방역조치들이 진행되기 시작하는데 상황은 소설의 주인공 장서준과 부아린이 일본에서 할빈에 도착한 그날, 할빈역에서부터 전염병 환자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이 진행되고 있음이 보여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중국정부나 로씨야 정부나 모두 정확한 전염래원을 밝히지 못하고 있었고 방역도 부단히 진행하였지만 매일과 같이 죽어가는 페스트환자들을 막을 길이 없었다. 거리에는 죽은 쥐와 사람의 시체들이 도처에 널브려져 있었고 나중에는 한다 하는 서방 전염병 전문가와 의사들도 방역과 전염병 퇴치에 할빈에 왔다가 죽음을 면치 못하게 된다.
소설에서 묘사되고 있는 이러한 사실들은 바로 1910년 전후하여 동북지역을 중심으로 류행된 페스트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이 페스트를 퇴치하기 위한 운동을 배경으로 한 것이다. 력사 자료에 의하면 1910년 11월 9일, 페스트가 중동철도를 통해 만주리에서 할빈으로 전파되였는데 할빈의 부가전일대를 중심으로 류행되다가 나중에 그것이 할빈 전 지역, 미구에는 전동북지역을 휩쓸면서 6개월간 6만명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갔다고 한다. 이 페스트를 퇴치하기 위해 할빈 거주자는 물론 중국, 로씨야, 일본 정부를 위시하여 많은 전문가들을 파견하여 여러가지 방역조치와 대책을 댔지만 죽음을 막을 길이 없었고 주검은 날로 늘어만 갔다. 소설에서 묘사되고 있는 무민동지(抚民同治)란 청정부관아앞에 나뒹구는 죽은 쥐를 비롯하여 도처에서 보게 되는 관과 시체들은 바로 이러한 력사 사실에 기반을 둔 것이다. 1910년 11월 초, 말하자면 온역이 금방 시작되여 한 두명에 불과하던 시체가 12월 중순에 이르면서 10여 명으로 늘어났고 12월 하순에는 수백명으로 늘어나기 시작한다. 문제는 할빈 뿐만 아니라 동북 전지역이 페스트의 습격을 받는다는 것이였다. 소설에서는 이 부분을 장서준의 입을 통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이틀전에 그(소설에 나오는 려인숙주인을 말함)도 손님과 같은 꼴로 사망했답니다. 그래서 친인척과 고향사람들이 모여서 장례를 치러줬다고 합니다. 헌데 한사람에 그치지 않고 며칠 안에 그 마을이 쑥대밭이 됐다지 뭡니까. 사람들이 줄줄이 죽어나가자 경찰은 뒤늦게야 그 마을을 봉쇄했답니다. 만주리 시내도 마찬가지랍니다. 사람들이 무참하게 죽어나가니 집집마다 문을 꽁꽁 걸어 잠그고 밖으로 나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답니다. 로씨야당국에서 명령을 내려 그 지역을 아예 봉쇄해 버렸다네요. 소문이 못 새여나가게.” 사정이 이렇게 되자 로씨야 정부와 일본 정부는 청정부가 이 온역을 퇴치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리유로 이 지역에서의 퇴치임무를 자기네들이 소관하자고 제기하였다. 이 지역에서 주권을 행사함으로써 자신들의 야욕을 채우기 위한 것이였다. 말하자면 침략과 지배, 그리고 략탈의 야욕을 공공연히 드러낸 것이다. 이 부분에서 소설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그건 맞는 말이지만……그런데 여기는 할빈입니다. 며칠 전에 외무부에서 로씨야, 일본 두 나라의 각서를 받았다지요? 청조(청나라정부)가 전염병을 통제할 능력이 없으니 자기네들이 방역업무를 주관하겠다며 무리한 요구를 제출했다면서요? 이건 동북3성에서 자기네들이 주권행사를 하겠다는 야욕이 아니고 뭡니까? 이제는 거리낌없이 본성을 드러내고 있는 거지요.” 할빈중국인상회 부일만 회장의 말이다. 페스트를 리용하여 주권행사를 하겠다는 검은 호랑이 발톱을 들어낸 것이고 공공연한 망언이며 청정부에 대한 로골적이고 적라라인 도전이였다.
리동렬의 장편소설≪불타는 숨결≫ 표지
로씨야와 일본 정부의 이러한 야욕을 알고도 남음이 있는 청정부에서는 이 류행병을 퇴치하기 위해, 더우기는 이 류행병의 류행과 남하를 막기 위해 중국 현대의학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오련덕(伍连德)박사를 할빈에 파견한다. 오련덕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의학박사학위소지자인데 청정부의 초청으로 1907년에 귀국하여 동북에 페스트가 류행하자 청정부의 파견으로 방역총의관(防疫总医官)을 맡고 이 전례없는 페스트 방역에 나선 것이다. 당시 오련덕이 젊은 나이라 경험부족으로 이처럼 큰 전염병을 퇴치할 수 있겠는가 하는 의구심도 있었지만 나젊은 오련덕은 할빈에 와서 중국 현대의학사에 길이 남을 력사를 쓰며 소설은 이 력사를 형상적으로, 그리고 예술적으로 재현하고 기록하고 있다. 할빈에 도착한 오련덕은 병원(病源)을 밝히기 위해 과감히 페스트로 죽은 인체를 해부함으로써 중국의학사상에서 맨 처음으로 인체해부란 력사기록을 남긴다. 소설에서는 이 대목, 말하자면 이 력사의 현장을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오련덕 총의관은 수술칼을 잡고 잠간 망설였다. 그리고 허리를 굽혔다. 순간 거침없이 시체의 복부를 갈랐다. 지독한 악취가 풍겼다. 그는 이미 응고된 검정빛 피덩이 속에서 심장과 페를 조심스레 잘라냈다. 수술칼이 미세하게 떨렸다. 이어서 그는 그것들을 조금씩 떼여내 현미경으로 세세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의 추측이 바로 립증됐다. 페스트균이 현미경을 통해 군체를 이룬 게 보였다. 혈액에 용해되지 않는 페스트균은 춥고 습한 조건에서도 생존할 수 있었다. 짐작한대로였으나 그래도 그는 경악했다. 깊은 숨을 들이쉬고 나서 재삼 현미경에 눈을 갖다댔다. 이번 전염병의 원흉은 틀림없는 페스트였다.” 현대 중국의학의 력사에 길이 남을 인체해부라는 이 력사 장면을 기록한 대목인데 소설은 이 장면을 예술적으로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분명 이것은 전통적인 중의학에서는 거의 상상도 못할 일로 당시에도 많은 사람들이 인체해부라는 이 사실 자체에 대해서도 많은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던 시기라 그 의의는 더없이 큰 것이었다. 소설에 묘사되고 있는 일본 의사, 죽은 쥐를 999마리를 해부했으나 병원(病源)을 찾아내지 못했다는 사실에 비하면 그만큼 위대한 장거인 셈이다. 병원(病源)을 찾아내고 병종(病种)을 확인하였으니 오련덕은 로씨야령사관과 일본령사관을 비롯한 외국령사관에 이 사실을 알리는 한편, 자기 주도로, 말하자면 중국주도로 온역퇴치를 시작하여 시체를 소각하는 등 페스트균에 대한 과학적인 방역을 개시하여 성과를 거두기 시작한다. 소설에서는 페스트균여부, 페스트균의 쥐 뿐만 아니라 인간을 통한 감염여부와 같은 병리학상의 문제가 있었지만 오련덕은 중국력사에서 맨 처음으로 페염형 페스트라는 개념을 제기하고 시체해부, 시체소각과 같은 전통 중의학에서 거의 불가능한 강렬한 방식으로 미구에 페스트를 퇴치하고 국가적인 전염병퇴치 영웅으로 된다. 이 뿐만 아니라 오련덕은 중국력사에서 제일 먼저 마스크를 제조하여 전염병을 예방하는 “제일”을 창조하여 력사상에 굵직굵직한 한 페지를 남긴다. 전통 리론에서 페스트는 쥐에게서 발생하여 다시 벼룩을 통해 인간에게 전염되는 것으로 되여 있다. 따라서 소설에 등장하는 프랑스 전염병 퇴지 전문가 메니스 교수는 죽은 쥐나 벼룩과 접촉하지 않으면 전염되지 않는다는 고정 사실을 믿고 페스트가 인간에서 인간에게로 전파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고 그냥 아무런 방비대책이 없이 특히는 마스크도 없이 페스트를 퇴치하려고 하다가 오히려 자신이 전염되여 죽게 된다. 죽음에 직면하여 그는 페스트가 인간을 매개로 전파되였을 가능성이 있다는 오련덕의 가설을 받아들이고 이렇게 말한다. “궁극적으로 그렇네. 의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시름을 놓을 수가 없네. 이젠 페스트마저 사람을 전파 매개물로 삼았군. 그런 시대가 돼버렸네.”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페스트방치 전문가의 림종유언이다. 페스트균도 진화하고 많은 것들도 상황에 따라 변한다, 그러므로 기성리론로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므로 리론도 부단히 현실에 맞게 변하고 발전해야 한다는 말이다. 최근에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를 련상케 하는 장면이다. 그러나 오련덕은 처음부터 전설적인 프랑스적 의사 메니스와는 달리 할빈에서의 구체 상황에 근거하여 자제 마스크—오씨마스크(오련덕이 처음으로 발명한 것으로 그의 성을 따서 이렇게 부른다.)를 착용하고 할빈에서 잡고 죽은 쥐에서 페스트균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실제로부터 출발하여 려관과 같은 밀페지역에서 인간에서 인간에게로 비말을 통해 전파되였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마스크 착용을 주장하였고 나중에 페스트균이 매장해도 소멸되지 않는다는 특징에 근거하여 시체소각이라는 대담한 주장을 펴고 실행함으로써 반년도 안 되는 사이에 페스트 남하를 저지하고 그것을 동북지역에서 전부 퇴치, 박멸하였다. 소설은 이 력사상에 실제로 존재하였던 사건을 소설스토리에 삽입시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나중에 로씨야령사관에서 오련덕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당시 상황에 알맞는 방역을 진행하기 시작하였고 오련덕은 모든 시민들에게 “사람이 사람을 전염시킨다”는 진실을 알려 이 거국적인 페스트를 퇴치할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처럼 소설이 페스트 퇴치라는 선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만큼 세균 관련 장면이 자주 등장하게 되는데 독자들은 일본이 할빈에 설치한 ‘731부대’와 련계시키게 된다. 주지하다싶이 이 ‘731부대’는 사실 세균부대로 인체를 대상으로 수많은 생체실험을 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일제가 중국과 중국인민에게 지은 도무지 용서할 수 없는 인간성의 파괴와 인간을 대상으로 한 최대 죄악의 한 장면이고 인간으로서는 도무지 상상할 수 없고 시행해서는 안되는 악행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소설은 소설이 픽션이라는 특징을 리용하여 이 부분을 넌지시 련계시킬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것을 아주 간략하게만 처리하고 있다.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24년후’라는 타이틀로 구성되고 있는데 할빈의 페스트 퇴치 24년 후, 구체적으로 말하면 페스트를 퇴치한 기쁨 속에서 할빈에서 출생한 장서준과 부아린의 딸,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공공위생학연구실에서 연구원으로 있는 장부빈이 부모님에게 보낸 편지가 나오는데 거기에는 중화의학회 오련덕 회장이 1935년 노벨생리학의학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는 소식과 함께 아래와 같은 대목이 있다. “……한가지 나쁜 소식이 있어요. 일본관동군이 할빈지역에 731방역급수(防疫给水)연구실을 창설한다는 극비정보를 입수했어요.…… 그런데 이 연구소 말이예요, 명색은 일반 질환을 연구하는 평범한 군연구소라고 표방하고 있지만 사실은 거기에서 배양해낸 세균을 인체에 투여했을 때 어떤 반응이 생기는가를 관찰하기 위해 만드는 인체실험소나 다를바 없대요. 배양해낸 세균을 전쟁에 리용하려는 데 목적이 있는 것 같아요. 혹독한 페스트의 피해를 본 부가전이 20여년이 지난 시점에 인재(人灾)에 의한 세균의 피해를 보지 않을가 심히 걱정돼요.” 사람들의 걱정이 현실로 되는 시각이다. 이처럼 이 소설은 중국 동북지역을 둘러싸고 진행되는 큼직큼직한 력사사건을 재생하며 소설을 구성하고 스토리를 전개해 나가고 있으며 여기서 동북지역의 력사적 진실과 예술적 허구가 묘사된 력사적 사실과 부각된 소설인물들과 사건들이 다시 한번 예술적으로 융합되면서 소설의 력사적 가치와 예술적 가치를 높이고 있다.
이 소설의 스토리 역시 그리 복잡한 것이 아니다. 소설은 할빈이라는 국제 대도시 생성과정을 현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한편, 장서준이라는 한 조선 청년이 일본 동경의대를 졸업하고 여전히 동경 N대학에서 산부인과 공부를 한 부아린과 혼인등기를 마치고 할빈에 와서 정착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앞에서 말한바와 같이 인테리 청년이 할빈이란 이 근대대도시에서의 정착 과정을 서사화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할빈으로 오게 된 경위 역시 상당히 력사적이다. 소설의 주인공 장서준은 서울태생이다. 아버지는 원래 조선왕궁의 한 호위무사였는데1895년 일제의 명성왕후 시해 사건 시, 즉 ‘을미사변’ 때 국모를 지키기 위해 싸우다가 일본 랑인(浪人)들의 칼에 맞아 죽고 그 주검을 본 어머니가 심장병이 발작하여 죽자 하루 아침에 고아가 된 사람이다. 다행인 것은 어머니의 각별한 친구였던 중국인 왕위장이 그에게 거처를 마련해 주고 거기에서 중국어를 배우고 잡화교역을 하게 하다가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일본에 데려다 공부를 시키고 거기에서 의학을 배우게 된다. 양아버지로 되는 왕위장이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그를 일본에 데리고 가 공부를 시킨 것이다. 그런데 일본에서의 생활도 여의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늘 “조센진(朝鲜人)”이란 리유로 차별시를 당했고, 지금 이 시각, 동경의과대학 3학년 때에 와서는 동아시아의 정세가날로 복잡해졌고 일본정부에서 대륙에 대한 침략의 야욕을 공공연히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날로 심각해졌다. 만일 이 침략전쟁이 시작되면 일본은 꼭 수많은 대학생들을 전쟁판으로 대포밥으로 내몰 것이며 그들은 중국을 비롯한 아세아 각지 전장에 내보낼 것이었다. 일본 전 지역에서 이것을 위한 철저한 호적조사도 진행되는 상황이다. 상황이 이렇게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하자 양부(养父) 왕위장이 졸업까지 기다릴 수 없으니 졸업장 같은 것에 연연하지 말고 “요즘 시국엔 빨리 판단하고 움직여” 하루 속히 일본을 떠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뭐긴? ‘한일합방’이 됐으니 일본의 다음 목표는 뭐겠니? 대륙을 삼키려 들지 않겠니? 이제 전쟁이 발발하면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게 돼. 병력확충은 물론 군의나 간호사와 같은 의료일군 보충도 필수가 될 게다. 그 첫번째 징병대상이 바로 일본에서 의학공부를 하고 있는 조선인과 중국인 청년들이 아니겠냐? 물론 중국에 가서도 전쟁위험을 감수해야 하겠으나 일본군인들한테 끌려가서 대포밥이 되는 것보다 낫지 않을가 싶다.” 이러한 정세하에서 장서준은 별로 내키는 바가 아니였지만 하는수 없이 부아린과 함께 할빈행을 강행하게 된다.
그들이 도피지로 할빈을 선택한 리유도 간단하다. 할빈은 부아린의 고향이였다. 거기에는 그녀의 동년 추억이 있고 더욱 중요한 것은 사촌언니 부아영이 있으며 할빈 중국인 상인회 회장으로 일하는 숙부 부일만이 있다. 말하자면 의지할만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였다. 그러나 이러한 친인척관계를 가지고 발을 들여놓은 할빈에서의 그들의 생활, 특히는 장서준의 생활은 그리 순탄한 것이 아니었다. 당시 할빈에는 로씨야인을 비롯하여 중국인, 조선인, 일본인들이 물밀듯이 밀려들었고 할빈 역시 인간이 사는 곳이라 소문처럼 일확천금을 낚을 수 있는 환상속의 랑만의 지역이 아니였다. 그들이 금방 할빈에 도착하자 로씨야인인 나따샤와 결혼한 부일만 회장은 당시 할빈의 상황을 이렇게 개괄한다. “휴, 너(부아린을 가리킴)도 알겠지만 이방인의 처지는 다 엇비슷하단다. 누구나 다 부자의 꿈을 갖고 고향을 떠나는 거지. 네 숙모(나따샤를 가리킴)도 마찬가지였어. 여기가 맨손으로 땅을 파기만 해도 일확천금을 거머쥘수 있는 황금의 땅인 줄 알았나보다. 마침 니꼴라이2세가 이곳에 눈독을 들이고 철도를 부설하고 성당을 세웠지. 아직도 대대적인 건축공사를 벌리고 있어.” “하지만 이곳은 천국이 아니란다. 빈부격차가 점점 극심해져가고 있단다. 누구한테는 천당이지만 누구한테는 지옥이지. 적지 않은 로씨야인들이 여기에서 인생을 망가뜨렸단다. 고향에 돌아갈 로비조차 없는 알거지 신세가 된 자들도 많지.……흠, 녀자들은 식당, 려관, 가게에서 심부름을 하며 입에 풀칠하고 있지. 이렇게 어디나 고달픈 삶이 도사리고 있단다. 특히 이곳에는 기생방이 많지. 몸을 파는 로씨야녀자들도 수두룩하구. 누군들 기생살이가 좋아서 하겠어? 몸을 팔아 남자들한테서 돈을 뜯어내는 매춘부만 탓하지 말아야 해. 궁극적으로 이놈의 썩어가는 사회를 바로잡아야 하는데.……” 근대적인 대도시로 발돋움하여가는 아름답고 화려한 표상과 극을 이루는 리면에서의 추악한 현실과 ‘약육강식의 정글이 되어가고 있는’ 할빈의 실상을 그대로 설파한 것이다. 설상가상에 여기에 서구를 통해 들어온 페스트가 들이닥쳐 아침에 일어나면 거리에 시체나 관들이 판을 치고 있으니 그들의 할빈에서의 상황은 불보듯 뻔한 것이었다.
물론 장서준의 상황은 이와 좀 달랐다. 로동자와 같은 쿠리도 아니고 빈민촌에 거주하는 빈민도 아니였다. 명색이 지식인이라 그런대로 상층 사회와 접촉하고 일하면서 사회 밑바닥과는 일정한 거리를 둔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이방인으로서의 랭대를 감내해야만 했고 지어는 랍치까지 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고 명으로 암으로 일본 령사관의 감시도 받아야 했다. 진보적인 사상을 가지고 반일이나 기타 사회조직과 거래하며 사회활동을 하기 때문인 것도 아니였다. 사실 그는 비슷한 작품에 나오는 인테리처럼 사회주의 사상이나 기타 진보적인 사상을 접수한 사람도, 주권회복이나 나라독립과 민족해방을 위한 반일활동을 하는 인물도 아니였다. 그는 그냥 일개 평범한 시민에 불과했고 다른 사람들이 지내는 도시생활의 일상을 보내는 평범한 인간이였지만 여전히 지속적으로 불공정한 대우를 받으면서 갖은 고통을 겪고 있다. 그러나 그는 궁극적으로 이러한 생활을 이겨내고 나중에 부아린과 함께 부가의원을 꾸리고 결혼하여 애까지 낳는다. 이국타향에서의 정착과정이 완성되여 가는 장면이다.
이 소설의 다른 한 주인공은 부아린이다. 본적은 려순이라고 하나 실질은 할빈에서 태여나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 N대학에서 산부인과 공부를 한 인테리로 역시 공부를 마치지 못하고 장서준과 함께 할빈으로 온 지식인이다. 그는 장서준에 비해 성격이 퍽 활발하고 녀성으로서의 매력을 간직한 사람이다. 따라서 할빈에 도착하자마자 고향의 온기를 느꼈고 기쁨을 느꼈다. 그러나 그의 사촌 언니 부아영은 물론 삼촌인 부일만 역시 그를 도와줄 처지에 있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의 생활도 장서준과 별다른 것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배운 지식으로 주변의 임산부들을 돕고 “부아린산부인과”란 의원을 꾸려 나중에 일개 시민으로서의 생활을 영위하게 된다.
장서준과 부아린 이외에도 이 소설은 수많은 인물들을 부각하고 있는데 장서준의 부모와 양부 중국인 왕위장, 할빈상회 회장 중국인 부일만, 부일만의 부인 로씨야인 나따샤, 조선인 피줄을 탄 일본인 스파이 아사코, “부가려인숙” 마담 부아영과 그의 일가 친척들, 그리고 그의 남편 가르한, 전설적인 사냥군 닐루, 조선인 최씨와 소설에 등장하고 있지는 않지만 최씨 부인 김정희, 렬차칸에서 만난 진씨 성을 가진 만족인 닐루, 고약장사 방연경의 아버지와 방연경, 빈민촌에서 생활하고 있는 배문지와 임조연부부, 그리고 장서준의 일본인 의학교수 야마자끼, 로씨야인들인 이완부제독과 쎄르케이 대좌, 하프겐교수, 프랑스 전염병 교수 메스니, 중국의학계의 대표 인물 오련덕 등등 군상이 묘사되고 있다. 이처럼 작품은 동아세아의 일본, 한국, 중국인들은 물론, 그들의 활동반경을 동아세아 전체를 주무대와 스토리 공간으로 설정하고 그것을 로씨야 시베리아는 물론 저 멀리 서구까지 시공간을 넓혀가면서 이 정착의 력사를 서사화해 가면서 소설에 신빙성을 더해 주고 있다.
이 소설에서 또 하나 특기해야 할 것은 작가가 가끔 사용하고 있는 서사방식이다. 다양한 력사 사실과 인물들은 부각하기 위해, 그리고 복잡한 스토리를 장서준의 할빈도착으로부터 전개되는 짧은 시공간과 페스트퇴치라는 서사시간에 맞추기 위해 작가는 여러가지 서사방식과 수법을 사용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 가장 주목되는 것이 서사시간의 적절한 리용과 조절, 그리고 삽입적 서술과 같은 서사방식이다.
앞에서 서술한바와 같이 이 소설의 주요 스토리는 장서준의 할빈정착과정과 그 과정에서 겪는 희로애락이다. 작가는 이것과 관련된 력사사실과 배경들을 정착이라는 이 주요 스토리속에 용해시키기 위해 가끔 서사시간과 공간을 사건 진행과 서술의 현시점으로부터 거꾸로 돌려 오늘과 어제, 현실과 지난날들을 서로 교체, 융합시키면서 많은 력사사실들을 삽입시키거나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삽입하고 스토리를 전개해 나가고 있다. 이를테면 일본 ‘흑거미’의 조센징사건과 장서준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죽는 장면 등등은 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삽입 스토리들인데 그 결과, 이야기가 여러 갈래로 전개될 것 같은, 그리고 전개될 수도 있는 가능성이 있었지만 소설은 장서준의 이주란 이 총체적인 스토리에 따라 그것들을 적재적소에 삽입하여 이야기를 전개함으로써 작품의 서사시간을 깨고 스토리를 보충해 나가며 서사가 하나의 줄거리에 따라 가면서도 그와 관련된 배경과 원인들을 교대해 줌으로써 전개되는 이야기의 필연성을 마련하고 소설에 진실성을 부여한다.
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이슈와 배경으로 되고 있는 오련덕의 이야기도 사실은 장서준의 이주와 정착이라는 이 중심 서사를 위해 복무하는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당시 할빈의 사회현실, 특히는 페스트류행이라는 큼직한 력사사건을 묘사하면서 자연스럽게 오련덕을 이끌어내고 있는데 이 인물을 등장시키고 이 이야기를 삽입시키기 위해 저자는 수많은 복선들을 깔아놓는다. 장서준 일행이 할빈에 도착했을 때, 역에서 벌어진 전염병환자체포 역시 그 복선의 시작이다. 그뒤로 도처에 널브려져 있는 죽은 쥐, 시체, 그리고 려관집과 빈민굴의 묘사, 그리고 로씨야인들의 엉성한 방역퇴치, 페스트병원을 찾기 위한 일본인 교수의 쥐해부를 비롯한 소설속의 페스트방역과 퇴치에 대한 묘사들은 모두 오련덕의 등장을 위한 복선이다. 말하자면 오련덕의 출현을 위한 적당한 예술적 장치, 즉 서사책략이며 그러한 력사사실을 묘사하기 위한 예술적으로 가공한 가상 현실들이다. 바로 이러한 력사적 진실이 있었음으로 소설의 력사적 가치가 높아진다. 이러한 예술적 가공들이 있었음으로 소설은 또 예술성을 띠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따라 이 작품에서는 주요 스토리가 간헐적으로 전개되기도 하는 한편 지나간 이야기들이 현실 스토리의 배경이나 복선으로 서술되는데 이러한 서술방식은 이 소설에서 상기 서술한 력사적 진실을 부각시키는 작용을 함과 동시에 현실과 융합시켜 소설의 이색적인 소설서사미학을 보여준다.
그러나 소설은 일부 미진한 부분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소설의 주제로 되고 있는 정착과정을 더 핍진하게, 할빈에 밀려드는 각양각색의 인물과 당시 할빈의 상황에 근거하여 소설이 허구고 픽션이라는 특징을 리용하여 더 깊게 더 넓게, 더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전개할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품은 수많은 이야기 모티브들만 남기고 결말에 도달한 아쉬임이 있으며 신비한 닐루 이야기도 더 전개되지 못한 아쉬움도 있다. 그러나 소설은 이러한 부족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할빈의 력사를 재현한 대형 서사시로서의 특징을 구비하고 있으며 력사사실과 소설적 현실이 잘 결부된 서사상에서도 자기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는 소설로 우리 문학사상에 간과할 수 없는 작품으로 기록될 것이다.
/장백산 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