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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이야기] 내가 미워했던 그 의사

      발표시간: 2026-02-26 14:30       출처: 길림신문 选择字号【

(안도)박영옥 

아침에 한 아빠트에서 사는 친구가 발걸음 다그치는걸 보고 어디 가느냐 물었더니 팔이 저려서 침 맞으러 간다고 했다. 침이란 말에 나의 머리속에는 한 의사의 얼굴이 우련히 떠올랐다.

여덟살때 엄마가 나를 입학시키려고 학교에 데려갔다. 지체장애인인 나의 걸음걸이를 물끄머니 지켜보던 교장선생님이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걸음걸이가 너무 힘든 애이니 다음해에 봅시다.”

그날 같은 마을에 사는 다른 애들은 다 입학했지만 나 혼자 ‘패잔병’처럼 풀이 죽어 집에 돌아왔다. 점심때가 됐지만 나는 밥맛을 잃고 밖에 나선채 하늘만 멍히 바라보았다. 하얀 구름이 바람에 밀려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호-, 저 구름도 나보다는 낫구나. 난 바람이 밀면 넘어 지는데…)

“너무 속상해 하지 말아라. 다음해에는 학교에 갈 수 있을테니.” 엄마가 어느새 밖으로 나와내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위안했다.

그해 어느 날, 화룡현 서성향 룡포촌에 계시는 외할머니께서 나를 데리러 오셨다. 룡포촌과 가까운 팔가자진 중남촌에 침구를 잘하는 용한 의사가 있다고 하시면서 내 다리를 치료해보자고 하셨다. 그래서 며칠후 외할머니집에 갔고 바로 이튿날부터 침 맞으러 의사집에 찾아갔다.

의사가 꺼낸 침대를 본 나는 겁기 어린 눈으로 다리를 의사앞에 놓았다. 기다란 침이 다리를 찌르자 얼마나 아픈지 도무지 참을 수가 없어서 안 맞겠다고 의사를 마구 밀어냈다. 의사는 끄떡도 없이 왼팔로 내 다리를 내리 누르면서 여기저기에 침을 꽂았다.외할머니마저 내 두 다리를 누르시니 꼼짝 못한채로 아픈 침을 맞아야 했다.

그런데 그 이튿날부터는 내 입에서 욕설이 터져 나올줄이야. 듣다못한 외할머니가 급히 손으로 내 입을 막자 의사는 애가 숨막혀 할수있다면서 말리였다. 외할머니의 손이 내 입에서 떨어지기 바쁘게 나는 참았던 울분을 터치기라도 하듯 욕설을 퍼부었다. 그런데 의사는 내 욕을 듣고도 성을 낼 대신 빙그레 웃으며 계속해서 여기저기 침을 꽂는 것이였다. 나를 아프게 하는 의사가 너무 미워난 나는 욕을 퍼붓다가 나중에는 의사의 얼굴에 침까지 뱉었다. 그래도 의사가 성을 내지 않자 담이 커진 나는 이번에는 의사를 꼬집어놓으려고 손을 허우적거렸다. 그것이 외할머니한테 제지당하자 외할머니까지 마구 욕해댔다.

얼마 후, 침을 다 맞은 나의 전신은 땀으로 물참봉이 되였고 의사의 얼굴에도 침이 가득 묻어있었다.

“애두 참, 의사선생님이 너의 다리를 고쳐주겠다는데 왜 그러니? 정말 한심한 애구나. 다시는 그러지 말아”

내가 불쌍하다고 꾸짖지도 않으시던 외할머니마저 보다못해 나를 꾸짖었으나 내 귀에 그 부탁이 들어올리 만무했다.

그 후에도 침 맞을때면 나는 나를 아프게 하는 의사가 괘씸하고 저주스러워 더 많은 침을 뱉으려고 입안에서 힘껏 침을 가득 모았다가 내 뱉군했다. 그때 어린 내 눈에 제일 미운 사람은 바로 그 의사뿐이였다.

침을 맞은지 며칠이 되던 어느날 의사집에 가니 의사가 보이지 않았다.

“의사선생이 안 보이네요. 혹시 편찮은가요?”

의사집에 들어설 때마다 정주칸에서 웃으며 반겨주던 의사가 보이지 않자 외할머니가 의사안해와 물으셨다. 의사가 안 보이자 나는 되려 기분이 좋아졌다.

“잠간 어디로 다녀오겠다고 나갔는데요. 인차 돌아 올거니 기다려보세요”

의사 안해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의사가 집에 들어섰는데 손에는 무슨 봉지가 들려있었다.

그날도 침을 맞았는데 내가 너무 발버둥치고 발악을 하니 의사의 안해마저 날 눌러서 더구나 꼼짝 못하고 침을 실컷 맞았다.

의사집을 떠날 때 눈물범벅이 된 내 얼굴을 쳐다보던 의사가 내 손에 아까 들고왔던 봉지를 쥐여주면서 외할머니와 말했다.

“이 과자를 애한테 주세요. 아픈 침 때문에 어린애가 고생하는 것이 마음 아픕니다. ”

“아니 어디 이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철없는 애때문에 선생님을 무척 고생시켜서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아직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이가 아닌가요? 리해해야죠”

그날 나는 집에 갈때 그 과자를 맛나게 먹었다. 입까지 다시며 먹어대는 날 본 외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얘야, 너한테 과자랑 사주는 의사가 얼마나 고맙니? 네가 인제부터라도 의사한테 침만 뱉지 않으면 개눈깔사탕도 사주마. 그렇게 할 수 있겠니?”

그 세월에 개눈깔사탕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사탕이였다. 나는 군침을 꿀꺽 삼키며 제꺽 응낙했다.

그후 외할머니는 침 맞히러 갈 때마다 개눈깔사탕 몇알씩 주면서 신신당부하였으나 나는 대답만 시원히 할뿐 그냥 그 본새였다. 의사를 대하기 난감하게 된 외할머니는 의사네 집으로 오갈 때마다 나를 업지 않겠다는 등 별의별 ‘권모술수’를 다 썼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룡포촌과 중남촌 사이는 꽤나 멀었고 강 두개를 건너야 했는데 그때 강우에는 다리가 없어서 바지가랭이를 올리 거두고 강에 들어서서 한걸음, 한걸음 조심스레 걸어야 했다. 때론 돌이 미끌어서 휘청대기도 했는데 자칫하면 넘어질수도 있었다.

침을 다 맞고 집으로 돌아갈 때면 외할머니는 늘 등에 업혀있던 나를 내려놓고 땀과 눈물로 얼룩진 내 얼굴을 강물로 깨끗이 씻어주셨다. 그 때마다 할머니도 눈물을 훔치군 하셨다. 내 아픔이 곧바로 외할머니의 아픔이였던 것이다.

이렇게 두달동안이나 침구에 시달리고서도 아무런 효과를 보지 못하자 의사는 더는 오지 말라고 했다.

마지막 날 외할머니가 그 의사한테 구십도 경례를 자꾸 하면서 고마워하길래 나오자마자 물었더니 외할머니가 눈굽을 찍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참 좋은 의사구나. 그간 너 때문에 고생한 의사 보기가 너무 미안해서 치료비 외에 돈을 따로 더 주었더니 절대 안 받는 건 물론, 치료비마저 적게 받는구나. 이런 좋은 의사를 네가 너무 힘들게 굴었어”

그 마지막날도 의사는 나와 외할머니를 대문밖까지 바래주었다. 침 맞는 두달동안 어느 한번도 빠지지 않고 바래주었다.

그해 가을 엄마가 나를 데리고 그 의사를 찾아갔다. 물론 외할머니도 같이 나섰다.그 의사한테서 내 다리 치료가 비록 효험을 못 보았지만 고마운 의사라는 마음에 바지천을 사가지고 갔다.

“의사선생님, 우리 딸때문에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적지만 성의이니 받아주십시요”

엄마의 말에 의사는 절대 그런 생각을 하지 말라면서 치료를 잘 하느라 했는데 효과를 못 봐서 참 안타깝다고 말했다.

돌아올때 의사는 바지천값을 계산해서 기어코 엄마손에 쥐여주었고 나한테 맛나는 걸 사먹이라고 했다. 엄마도 감동되였는지 눈물을 훔치시였다.

그 침 놓아주던 의사는 아마 수많은 환자들의 아픔을 자신의 인내로 품으며 살았을 것이다. 그의 빙그레 웃음 속에는 고통을 견디는 이에게 베푸는 따뜻한 위로가, 그의 단호한 손길 뒤에는 고치지 못한 아픔에 대한 깊은 애석함이 숨어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를 다시 만나지 못했지만, 그의 모습은 이제 내 삶 속에 다른 형태로 스며들었다. 고통을 겪는 이에게 차갑게 대하기보다 따뜻한 리해를 베풀어야 함을, 상처 주는 말 대신 침묵의 인내로 다가설 줄 알아야 함을 가르쳐 주었다. 

이젠 많은 세월이 흘러 저승에 가셨을 그 의사는 아마도 여전히 그렇게 온화하게 웃고 계실 것이다. 그의 그 웃음은 이제 내 안에서, 또 그가 만났던 수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살아 숨 쉴 것 같다. 치료받지 못한 다리는 여전히 무겁게 걸리지만, 그의 웃음이 남긴 빛은 오히려 그 무게를 감당할 용기를 준다. 고마운 이를 만났지만 그 고마움을 전하지 못한 채 남은 빚은, 이제 타인을 향한 조용한 친절로 조금씩 갚아가야 할 내 생의 숙제가 되였다.

박영옥 프로필

1955년 안도현 만보향에서 출생

연변작가협회회원, 1997년부터 아동문학창작에 종사하면서 소설, 동화, 동시, 수필 등 다수 발표. 

현대이야기집, 동시집, 자서전, 아동문학작품집 등 작품집 여러권 출간. 



编辑:안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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