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명의 소리, 대금과의 만남
리금호의 삶은 음악과 함께 호흡해온 려정이자, 조선족 민족 악기인 대금과의 깊은 인연으로 점철된 이야기이다. 그는 1980년대 초에 가족을 따라 흑룡강성 녕안현에서 연변의 도문시 월청향 유기촌으로 이주했다. 1983년 초, 마을에 찾아온 도문시가무단의 온돌공연에서 김두일 연주원의 대금 연주를 목격한 것은 리금호의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되였다.
당시 19살의 피끓는 청년이였던 리금호는 “그 순간 대금 소리가 부드럽고 우아하여 큰 매력을 느꼈다”고 회고했다. 어려서부터 음악을 좋아하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피리, 플루트 등 다양한 취주악기를 접하며 소학교 시절부터 음악적 자질을 키워왔지만 민족악기인 대금이 주는 감동은 특별했다.
그의 대금에 대한 열망은 가정의 헌신적인 지지로 이어졌다. 아버지는 아들의 꿈을 지원하기 위해 집에서 기르던 소를 팔아 280원이라는, 당시로서는 거금을 마련해 대금을 사주었다. 이 대금은 단순한 악기가 아니라 리금호가 평생을 음악인생의 길을 걸을 수 있게 한 열쇠가 되였다. 그는 이때부터 ‘40년이 넘는 대금 음악 인생’을 시작하게 되였고 목관 악기들 사이에서 대금이 만들어내는 ‘부딪치는 음이 귀맛 좋고 도취되고 깊이가 있는 매력’에 빠져 지금까지 그 길을 고수해 왔다.
조선족 대금의 예술적 특성과 가치
대금은 조선족 민속음악을 대표하는 관악기로 그 력사가 유구하며 예로부터 합주, 반주, 독주 등 다양한 형태로 연주되여 왔다. 리금호가 설명하듯 대금은 목관악기로서 금속악기인 플루트와 달리 ‘쇠소리’가 나지 않고 부드럽고 우아한 음색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음색적 특성은 조선족 음악의 정서를 표현하는 데 리상적이며 민속악 합주에서 중심악기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풍부한 표현력을 제공한다.
리금호의 공식적인 예술인 생활은 도문시가무단의 김두일 연주원과 연변예술학교 신용춘 선생, 정철, 김동설 선생 등 여러 선배님들의 가르침과 지도 아래 본격화되였다. 이후 그는 안도현문공단, 연변가무단, 연길시조선족예술단 등 주요 예술 단체들에서 대금 연주원으로 활동하며 실전 경험을 쌓았다.
그러나 리금호의 예술인생의 길도 역시 순탄치만은 않았다. 생계와 예술 사이에서 갈등해야 했던 시기도 있었는데 화재 피해 후 집 분배 자금을 마련하지 못해 약 3년간 로씨야로 건너가 장사에 종사해야 했던 적도 있었다. 이는 그에게 ‘가슴 아픈 사연’이였지만 민족악기에 대한 뜨거운 ‘미련과 열정’을 리금호는 버릴 수 없었다. 그는 결국 생계와 예술 사이에서 예술을 선택했고 결연히 돌아와 연길시조선족무형문화유산보호센터에서 본업으로 복귀했다.

한국의 인간문화재 이생강(왼쪽) 선생과 함께
리금호는 대금 연주의 깊이를 더하기 위해 한국의 인간문화재 이생강 선생을 스승으로 모시고 해마다 틈만 나면 한국을 방문하여 집중적으로 연주 기량을 련마했다. 특히 한국 전통 음악의 핵심인 ‘산조’를 깊이 있게 습득했다. 산조는 장구나 소리북의 장단에 맞춰 자유롭게 즉흥 연주하는 기악 독주곡으로 대금 연주의 근간을 이루는 중요한 장르이다.
리금호는 “산조를 접하지 않고는 대금의 뿌리 깊은 연주를 할 수 없다”고 말하며 전통에 대한 깊은 리해가 진정한 수준 높은 연주를 가능하게 함을 강조했다. 이를 통해 그는 대금이 단순한 반주 악기가 아니라 독자적인 예술적 완성도를 지닌 독주 악기로서의 가능성을 확인했으며 대금 연주에서의 권위를 확보했다.
전승인으로서의 려정: 교육, 보급, 그리고 도전
조선족대금은 2011년에 길림성인민정부에서 비준한 제3차 성급 무형문화유산 명부에 올랐으며 대표적인 기능보유자는 제4대 전승인인 리금호이다. 전승인으로 인정받은 후 리금호의 주요 활동은 교육과 전승에 집중되였다. 그는 연길시 흥안소학교에서 13년, 연신소학교에서 7년간 학생들을 지도하며 대금의 맥을 이어가기 위해 불타는 노력을 기울였다.

학생들에게 대금 연주를 가르치고 있는 리금호
리금호는 대금 교육의 특수성을 강조하며 “다른 악기와는 달리 학생들에게 1:1 교육을 해야 효과가 나며 모여서 한꺼번에 하면 효과가 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맞춤형 교육은 엄청난 인내와 열정을 요구하는 작업이였으나 그는 묵묵히 해냈으며 그의 헌신은 뚜렷한 성과로 이어졌다. 그가 지도한 학생들은 정기적인 음악 모임을 통해 성장했고 70명 규모의 전문 대금 연주 악대까지 조직되였다. 특히 농촌 지역 학교인 흥안소학교의 학생들은 대금을 통해 자신감을 얻고 성격이 활발해지는 변화를 보였는데 이는 예술 교육의 사회적 효과를 보여주는 성공적인 사례가 되였다.


리금호는 연길시애심협회 퉁소대의 로인들을 대상으로 한 전수 교육에도 힘썼는데 지나온 전승과정에 여러가지 난관들이 있었다고 밝혔다. 특히 악기의 높은 가격으로 인한 접근성 부족, 모든 음을 다 낼 수 있는 ‘연주의 전면성’으로 인한 학습 난이도, 민족 악기의 제한성으로 인한 무대 기회 부족, 학업 위주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지속적인 관심과 학습 유지의 어려움 등을 꼽았다. 이러한 현실은 리금호가 퇴직전까지 보급과 전승을 많이 시도했으나 해결이 어렵고 아쉬움을 느끼는 부분들이다.
미래를 위한 전망과 소망: 국가적 보호와 지속 가능한 전승
리금호는 대금이 ‘우리 민족의 우수한 민족 전통 악기’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성급 무형문화유산에만 머물러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대금을 사랑했고 대금의 우수성을 확신했다. 그의 가장 큰 소망은 조선족 대금이 국가급 무형문화유산으로 승격되여 전승과 발전에 국가적 차원의 관심과 지원이 확대되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명예의 문제를 넘어, 체계적인 기록, 연구, 지원, 교육 인프라 구축을 가능하게 하여 대금 전통이 미래 세대에 제대로 전달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향후 비전으로 리금호는 지속적인 교육 활동을 통해 기초를 다지는 한편, 대금의 예술적 가능성을 확장하는 창작과 공연에도 힘써야 함을 주장했다. 대금이 전통 합주에만 머무르지 않고 현대적인 독주곡, 타 장르와의 협연, 다양한 미디어를 통한 홍보 등을 통해 현대 청중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악기 제작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방법 모색이나 초보자를 위한 체계적인 교재 및 교육법 개발도 전승의 확산에 중요한 과제라고 부언했다.

리금호의 40여 년에 걸친 대금 인생은 한 개인의 예술적 열정이 어떻게 민족 문화 유산의 살아있는 보전과 전승으로 련결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의 이야기는 대금이라는 악기가 지닌 아름다움, 그 보급을 위한 노력의 가치, 그리고 전통이 현대 사회에서 직면한 도전을 모두 담고 있다. 리금호의 념원처럼 대금의 아름다운 울림이 국가적 관심속에서 더욱 널리 공유되고 다음 세대로 이어질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생태계가 구축되기를 기대해 본다.
/길림신문 안상근기자
编辑:김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