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남옥란
곧 다가오는 설을 앞두고, 예전 재래식 초가집의 팔간 구들에서 방대한 4대 가족들이 모여 함께 설을 쇠던 장면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이미 세상을 떠나신 분들이지만 기억과 추억으로 나마 그들과 함께 하는 기분이여서 다소 위안이 된다. 삼도만 아래 오봉산 기슭에 자리 잡고 살았던 나의 시댁과 형제들의 다정한 이야기는 50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내 마음속에서 흘러 넘친다.
김씨 가문의 종가집 며느리셨던 어머님은 아들 넷, 딸 셋을 두셨다. 맏이로부터 련달아 아들을 보았으니 말 그대로 ‘끌끌’하였다.
당시 맏시아주버님은 오도저수지 당지부서기였고 둘째 시아주버님은 연변농기연구소 소장으로 일하셨다. 남편은 룡정시교육국에 근무하였고 막내 시아우는 룡정시5중에 근무했다.
시누이 셋이면 ‘사마귀 닷 되’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시누이들은 아름다운 인정과 외모를 지닌 녀성들이였다. 나와 비슷한 년령대의 시누이와는 친구처럼 다정하게 지냈고 손우 시누이는 봄, 여름, 가을 내내 우리 집의 청정 채소를 책임졌다. 그 정성이 시간이 흘렀다고 해서 어찌 잊을수 있으랴.
내가 시집 문턱을 넘어섰을 때 시댁에는 시할머님도 계셨다. 그 시절 보기 드문 4대가 사는 대가족이였다.
명절이나 잔치행사가 있을 때면 우리는 당연히 시댁으로 향했다. 부모님이 계시는 집은 따뜻한 사랑과 인정, 가족애가 가득한 화기애애한 안식처였다.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고상한 품성과 도덕을 지닌 집안 풍기는 대를 이어 풋풋하게 넘쳐날 그 집안의 앞날을 고스란히 예시한다고 한다. 풍수가 으뜸이라고 하는 집터는 바로 그 집안 사람들의 정신적인 면모에서 나타난다는 어느 전문가의 말이 떠오른다.
그때 50대 중반이셨던 어머님과 30대 중반의 맏동서가 가마솥을 차지하고 앉아 명절 음식을 만들었다. 무쇠 가마에서 풍기는 감칠맛 나는 음식의 향기는 풋풋한 시어머님의 마음을 담고 있었고 담백하면서도 입에 착착 감기는 파릇한 배추김치와 무우김치는 맏동서의 깨끗한 마음을 닮아 청신한 맛이였다.
그 당시 나는 젖먹이와 이제 막 젖을 떼는 아기를 달고 있었고 아직 미숙한 새색시여서 아무 것도 할 줄 몰랐다. 손우 둘째 동서의 조카는 우리 집 큰딸과 동갑이였다. 어머님은 “자네 둘은 애기나 잘 돌보게” 하시며 늘 따뜻한 어조로 말씀하셨고 그 진정 어린 말씀에 가슴이 뭉클해지군 했다.
손아래 동서는 형제 중 막내 며느리로 온 집안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히히, 호호” 자연스럽게 웃음을 터뜨리는 그녀는 복상을 얼굴에 타고 난 녀인이였다. 할머님과 어머님은 모두 성공한 인생이였다. 인자한 할머님과 점잖은 눈매의 어머님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할머님은 증손자들을 한 무릎에 하나씩 앉히고 흐뭇한 미소를 지으셨고 아버님은 “얘들을 보니 술을 마시지 않아도 흥분되고 기쁘기만 하구나” 하시며 웃으셨다. 그동안 고생하신 얼굴이 활쫙 펴지며 온 집안에 화기가 돌았다. 식사 후에는 꽃맞추기도 하고 아이들의 노래도 들으며 소중한 순간들을 공유했다. 그 분위기 속에서 어머님은 항상 진주 같은 덕담을 하셨다.
“이제 우리가 이 세상에 없어도 형제들이 한데 모여 명절을 쇠면서 화목하게 지내기를 부탁하네. 좋기는 가법(家法)으로 정하고 꼭 실천하게.”
“네! 알겠습니다.”
우리 며느리들이 쾌히 대답했다. 넉살 좋은 남편은 “어머니, 시름을 놓으세요. 앞으로 꼭 화목하게 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정말 분위기 좋고 기분 좋은 명절 모임이였다. 어머님의 그 부탁을 들으면서 나는 먼 후날의 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꽃이 피고 지고 사계절이 순환하며 아이들이 자라니, 그날이 정말 눈앞에 왔다. 선인들은 모두가 세월속에 묻혔고 애주가이자 락천가인 남편은 고독을 싫어했다. 딸들이 성가하여 이제는 우리 가족만 모여 명절을 보내도 되겠다고 생각했지만 기어코 큰집, 작은집, 출가한 녀동생들까지 불러들여 방대하게 명절을 쇠려고 준비를 한다. 세대주의 주장에 나는 당연히 호응한다. 이렇게 칠형제가 모이면 굉장하다. 큰집과 작은집의 손자손녀들, 시누이의 손자들까지 복새판을 이룬다. 젖먹이와 무릎 아래 아이들, 한 구루에 둘씩, 세씩 맺힌 열매들로 집안은 희망으로 넘쳐나고 활기와 웃음꽃이 가득하다. 윤기와 혈육의 정으로 쌓인 그 보루들이 그렇게도 정겹고 사랑스러웠다. 갓 태여난 손자들은 꽃포대기에 싸여 마치 모독모독 피여난 해당화 같았다. 이전에 시아버님이 하시던 말씀은 두 시아주버님이 계승하셨다.
“이 애들을 바라보니 먹지 않아도 배부르구나. 하하하!”
아기엄마와 며느리들은 일등 공신으로 완전히 특권을 누린다. 모든 맛있는 음식, 과일들, 음료수는 그들에게 돌아간다.
당년의 애숭이 며느리였던 내가 이제는 엄연한 시어머니로 승급하여 가정을 이끌고있다는 것이 우습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지구가 둥글게 돌아가니 이런 멋에 살고 있구나, 이것이 인간 세상이겠지? 하며 흡족하게 느낀다.
'꽃보다 아기, 돈보다 아기' 라고 해맑게 웃는 아이들이 얼마나 귀여운지 모르겠다. 일등 보호자인 손자들은 우리 가족의 자랑이였다. 때식도 담당별로 먹었고 설거지도 그렇게 했다. 식사 후 깔끔하게 정리된 방에서는 손녀들의 인형 놀이 전쟁이 벌어지고 손자들이 총, 탱크, 자동차 모형을 두고 쟁탈전을 벌인다. 아이들의 싸움 소리와 울음 소리로 집이 떠나갈 듯했지만 어른들 사이에 얼굴을 붉히는 일은 없었다.
음력절 아침이면 아이들에게 붉은 봉투를 나누어 주는 일도 큰 행사였다. 아이들은 기쁨을 담은 쌍희(囍)자가 박힌 붉은 봉투를 받아들고 허둥지둥 뛰여다닌다. 엄마들은 “애들아, 그 돈봉투 나 줘! 내가 잘 관리할게!”라고 하지만 아이들은“안 돼, 이건 할아버지가 나에게 준 돈이야!”하고 움켜쥔다.
흐흐, 돈 소리에 배속의 아기도 손을 내민다더니? 참, 집안에 행복의 웃음소리가 또 한번 가득 차오르군 한다. 아이들에게는 액수보다 그런 분위기가 더 중요했다. 어른들의 속마음이야 어떻든, 명절의 행복한 분위기를 즐겼다.
언뜻 몇십 년이 흘렀다. 우리 사동서는 머리가 희슥희슥한 할미꽃이 되였고 큰집의 큰손녀는 출가하여 아들 둘을 낳았다. 우리집 손녀는 대학생이 되였고 그 사이 조카들의 외국행으로 떠들썩하던 집안이 지금은 랭랭하고 쓸쓸해졌다.
전에는 세손 손가락으로 세는 것도 모자랐던 식구들이 지금은 열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밖에 남지 않았다.
부모님의 빈 자리가 허전하고 그립다. 다 커서 날아간 새끼 새들이 그리워 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님이 제정하신 전통적인 가법은 계속 이어가야 하지 않을까? 방법이 변하고 간단해질지라도, 형제들끼리 단둘이 남을 때까지라도 식탁에 모여 앉아 한끼 식사를 꼭 하기로 합의를 했다. 서로 귀가 어두워 큰 목소리로 대화하며 즐겁게 식사를 나눈다.
남편이 맏형에게 묻는다. “형님, 한국에 있는 작은 조카에게서 전화는 자주 오오?”
“응? 뭐라고? 오늘 아침 먹었는가고?”
시누이들은 웃음을 터뜨린다.
“저 오빠들을 어쩌나, 서로 제 좋은 소리만 하네, 하하하~ 호호호~!”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하다. 분위기 좋은 단골 맛집을 찾아서 원형 식탁에 모여 앉은 것만으로도 즐거운 일이다. 동네 아지미들과 친구들은 입을 모아 찬사를 보낸다. “참, 부러워요. 어떻게 그렇게 수십년을 이어오며 명절마다 형제들이 한자리에 모여 식사를 하시나요?” 어머님이 생전에 제정한 이 가법을 다른 이들이 어찌 알겠는가?!
나는 돌아올 2026년도 행사 일정을 이미 짜 놓았다. 한해 동안 진행될 모임 행사들을 달력에 체크해 두었다. 보라, '3.8'절부터 국경절까지의 계획이다. '3.8절'은 우리 큰딸이 차지하고 오월 단오는 사촌 시아우가 차지한다. 로인절은 큰 시형네 큰 조카가, 국경절은 우리 집, 내 차지이다. 일년 사계절, 각각 한번씩, 한해에 네번이면 충분하다. 예전처럼 집에서 며칠 동안 밤을 새워가며 놀지는 못해도 얼마 남지 않은 형제들이 가끔씩 얼굴을 마주하는 것만으로 만족한다. 어머님의 가법을 내리내리 실천하는 것이 곧 가족의 발전과 번영을 기원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난해 추석에 고향의 옛집 문앞에서 오동나무를 마주했다. 오동나무는 매년 봄이 되면 잎사귀를 틔운다. 오봉산 기슭의 진달래도 해마다 변함없이 피여난다. 오동나무가 살아 있는 한, 진달래가 매년 아름답게 피여날 것이니, 가족은 대를 이어 영원히 존재할 것이고 나날이 번영할 것이다.
오봉산 아래 칠남매와 그 후예들, 뿌리 깊은 오동나무는 이 세상이 다하는 날까지 영원히 함께 번영하며 성장할 것이다.
编辑:안상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