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일
“옛날 좀생이 결혼식에 하객이 이렇게 많다니? 와! 축하한다!”
소꿉친구 영식이가 내 어깨를 툭 치고 웃으며 말했다. 그의 눈에는 여전히 교복 입고 교실 구석 창가에 앉아 책장만 넘기던, 말수 적고 소심하던 ‘그때의 나’가 비쳤을 것이다. 그 좀생이였던 내가 이제는 흰 가운을 걸친 병원의 주치의로, 동창회장으로, 례식장에서 떳떳하고 당당하게 서 있는 모습을 보자 영식이는 잠시 현실과 추억사이에서 멈춰 선 듯했다.
나는 영식에게 미소로 답했지만, 가슴 한켠이 먹먹했다. 오늘의 나를 이 자리까지 이끈 것은 결국, 어머니의 끝없는 사랑과 림종전 남겨주신 그 한 장의 쪽지, 그 안에 적힌 ‘비밀번호’의 힘이였기 때문이다.
내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 형은 열일곱, 누나는 열넷이였다. 나는 다섯 식구 중 막내였는데 왜소하고 병약한 아이였다. 어린 시절 감기를 달고 살며 병치레만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를 ‘좀생이’라 불렀다. 동네 위생소에 갈 때도 늘 어머니의 등에 업혀갔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놀리듯 물었다.
”대호 엄마, 얘 진짜 자기 아들 맞아? 형제들은 다 그렇게도 헌칠한데……”
어머니는 웃으며 대답했다.
“당연히 제 아들이지요. 앞으로 이 아이를 꼭 멋진 사내로 키울 겁니다.”
그 말은 예언이 아니라 기도였고, 어머니가 조용히 새기던 주문이였다. 어머니는 늘 말보다 사랑으로 나를 키우셨다. 형은 헌칠하고 름름했고, 누나는 총명하고 싹싹했다. 그들과 나는 마치 한 공장에서 나온 제품이라도 모양이 전혀 다른 세트 같았다.
나는 시끄러운 곳이 싫었다. 사람 많은 자리에서는 늘 불안했다. 그래서 집 안, 하얀 비둘기가 그려진 조용한 방이 나의 세상이였다. 나는 그 안에서야 비로소 숨을 고르게 쉬였다. 밖에서는 표정 하나, 눈길 하나에도 의미가 붙는 것 같아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이 방안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어머니는 그 방의 문틈을 열고 조용히 내 마음을 들여다보시군 했다.
“너는 늘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가 하고 걱정하기 때문에 그렇게 소심해진 거야. 세상은 남의 눈으로 살아가는 게 아니란다. 사람을 만나면 먼저 손을 내밀고 마음을 주고 관심을 나누어라. 그러면 친구는 자연스레 찾아오는 법이란다.”
소심한 나의 마음은 언제나 스스로를 가두고 외로움의 골짜기로 자신을 밀어 넣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폭풍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등불 같았다. 삶의 도리를 몸으로 가르쳐주신 스승이자, 늘 흔들림 없는 강자이셨다.
어머니는 만화책도 많이 사서 동네 아이들을 불러 함께 읽게 하고 떡과 맛있는 음식을 손수 만들어 손에 쥐여 주며 친구들과 나누어 먹게 했다. 어머니는 내가 동네 아이들에게 맞고 울면서 집에 와도, 때린 아이를 찾아간 적이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더욱 단단하게 자랄 수 있었다.
어머니의 말대로 나는 먼저 인사하고 작은 관심과 배려를 내 마음속에 심었다. 그 씨앗들은 조금씩 자라나 내 안의 자신감을 키웠고 그래서 친구들의 웃음과 온기가 나를 찾아왔다.
어머니는 또 남자는 꼭 한 가지 기술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고민끝에 내가 어릴 때, 너무 많이 병치레해서 의학을 공부하겠다고 고백했다. 어머니의 눈이 빛났고 칭찬을 아낌없이 해주었다. 그때 받은 칭찬은 마치 오래된 겨울숲속 해살처럼 내 마음속에 따스하게 스며들었다.
“훌륭한 의사가 되겠습니다.”
나는 마음을 다해 맹세하며 어머니의 두 손을 잡았다. 그때 어머니의 눈빛은 세상의 그 어떤 해살보다 따뜻하고 밝았다. 그날 처음으로 어머니의 손을 꼭 잡았다. 그 손은 마치 오래된 나무껍질 같았다. 삶의 굴곡과 세파로 닳고 또 닳은 손, 그 거친 주름마다 나에 대한 로심초사가 새겨져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내 마음속에는 죄스러움과 감사함이 한껏 차 올랐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고혈압과 당뇨를 앓으면서도 안팎 집안일을 처리하며 자식 교육하느라 하루도 편안한 날이 없었던 어머니. 나를 당당하게 키워주신 어머니, 당신의 따뜻한 온기와 노력이 내 삶의 뿌리가 되였음을 나는 가슴 깊이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어머니가 어느 날 갑자기 쓰러지셨다. 형에게서 걸려 온 전화 한 통—
“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져 병원에 가는 중이야.”
그 짧은 한 마디가 나를 깊은 절벽 아래로 밀어 떨어뜨리는 것 같았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어머니는 수술중이셨다. 여덟 시간을 넘긴 수술 끝에 의사는 고개를 떨구었다.
“오늘 밤을 넘기기 어려울 겁니다.”
붕대에 싸인 어머니의 얼굴, 그토록 따뜻했던 두 눈은 감겨 있었고 나는 어머니를 부르며 하염없이 울었다. 세상의 기둥 하나가 무너져 내리는 소리—그것이 그날 새벽의 소리였다.
며칠 뒤,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작은 함을 발견했는데 그 안에 노란쪽지 한 장이 고요히 누워 있었다. 그리고 적금 통장이 하나 있었다.
“막내야, 이 통장의 돈은 네 몫이다. 의사공부를 끝까지 마치고 형제들과 주위 사람들에게 많이 베풀며 살아라. 그러면 좋은 날이 올 것이다. 통장 비밀번호는 ‘7979’이다. 부디, 그 비밀번호의 비밀을 잊지 말거라.”
나는 한참 동안 그 자를 바라보았다. 7979— 단순한 배렬같지만, 그 안에는 묘한 울림이 있었다. 7과 9, 7과 9... 오르고 내리는 리듬이 마치 인생의 파문처럼 느껴졌다. 그 수자는 어머니가 남긴 마지막 메시지이자, 삶의 비밀을 암호처럼 감춘 글귀였다.
‘7979’는 ‘친구’라는 뜻으로 번역되였지만, 그것은 단순한 관계의 이름이 아니라 인생을 지탱하는 존재의 방식이였다. 친구 관계는 감정적 친밀감을 키우고 사회 관계는 기회와 정보를 넓히라는 의미도 있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알고 계셨다. 인간이 진정으로 남길 수 있는 것은 소유가 아니라 ‘관계의 철학’이라는 것을... 통장속 수자는 언젠가 소진되겠지만, 친구로 산다는 태도는 영원히 증식되는 화폐인 것을 말이다.
‘7979’라는 수자는 단순한 비밀번호가 아니다. 그것은 삶의 리듬이다. 친구-친구, 주고-받고, 베풀고-채워지고... 세상은 그렇게 순환하며 균형을 찾아 간다는 것, 어머니가 평생 체득하신 인생의 법칙일 것이다.
결국 어머니는 떠나신 게 아니였다. ‘7979’라는 평범하지만 의미깊은 비밀번호 속에서, 매일 다시 만나게 될 의미를 나에게 부여하신 것이였다.
编辑:안상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