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소년, 우유 배달부에서 무대 스타로
-고향의 아름다움 노래로 알리고픈 ‘연변사람’
지난달 8월 15일과 16일 저녁에 연변대학 정문 왕훙벽 앞에서 ‘새로운 항해의 시작 · 연변에서 꿈을 펼치다’를 주제로 한 문화 행사가 열렸다. 이어 ‘9.3’ 기간에는 같은 장소에서 ‘다채로운 연변, 아름다운 복장’ 민족복장 문화 전시 및 공연이 진행되였다. 그리고 이 행사들 무대에 낯익은 가수가 등장해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았는데 그가 바로 김군룡이였다.
지난달 8월 15일 김군룡은 그룹 멤버들과 함께 고향 무대에 올라 히트곡들을 열창하며 현장에 모인 관객들과 진한 교감을 나눴다.
“고향 연변의 축제 무대에 섰다는 것 자체가 특별한 의미였습니다.” 김군룡은 폭발적인 가창력과 호소력 짙은 감성으로 무대를 압도했지만, 그보다 더 큰 감동은 고향의 발전적인 변화의 모습과 관객들의 응원 속에서 찾아왔다. 특히 무대 아래에서 두 딸이 뛰여다니며 “저기 우리 아빠예요!”라고 자랑하던 모습은 그에게 잊을 수 없는 순간으로 남았다.
“고향 사람들 앞에서 공연하는 것만으로도 뿌듯했는데 가족이 함께해 주니 감회가 새로웠죠.”
일전 기자는 행사차 연변을 방문했다가 고향에 머물며 간만의 망중한을 즐기는 김군룡 가수를 만나 행복을 찾아 떠나는 그의 음악 려정에 대해 들어보았다.
노래하고 춤추는 것이 좋아 시작한 음악이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말문을 연 그는 주마등처럼 스치는 추억에 울컥 차오르는 감정을 토해냈다. 지나온 길이 항상 치렬했고 억척스러웠으며 때론 힘들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포기하려고 했던 시절도 있었는데 또 다시 이 길을 선택해 걷고 있는 지금, 그는 이젠 행복해졌을가?
# 손풍금에서 미술로, 그리고 다시 음악으로 이어진 예술적 려정
김군룡의 예술적 려정은 평탄치 않았다. 그는 왕청 시가지에서도 멀리 더 가야 나오는 대흥이라는 작은 산간마을에서 태여나 유년시절을 보냈다. 손풍금에 관심이 많았던 아버지의 권유로 6살 때 잠간 손풍금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당시에는 그저 아버지의 뜻을 따라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배운 시간은 길지 않았으나 지금 돌아보면 그 경험이 제 음악 인생의 시작이였어요.”
“이 취재가 끝나면 저녁에 선생님을 뵙기로 약속했어요. 아침부터 설레서 진정이 안돼요.” 이번 고향행에 6살 때 손풍금을 가르쳤던 강창현 선생님과 련락이 닿아 30여년 만에 만나게 되였다며 김군룡은 취재 내내 떨리는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음악보다 미술에 더 끌렸다. 대흥에서 동진으로 올라와 학교에 진학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자신이 가수가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했다. 되려 그는 연변대학 예술학원 미술과에서 석사 과정까지 마치며 미술교원이 되는 꿈을 꿨다.
“대학 시절 문예부 부장으로 활동하며 음악에 대한 열정은 컸지만, 당시만 해도 노래는 그저 생계를 위한 수단이였어요.” 부모님이 일찍 로무로 외국에 나가있었던 탓에 근 10년동안 친척집을 전전하며 그는 낮에는 학교를 다니며 공부하고 밤에는 노래하며 학비를 벌었다.
그런데 한편으론 또 인생을 길게 보면 어떤 것을 꾸준히 해나갔을 때 노력은 어떻게든 그 어떤 결과를 만들어낸다고... 그 힘들었던 시절이 오히려 그를 음악으로 이끈 계기가 되였다.
# 미술교원의 꿈에서 음악인의 길로
그 계기는 졸업을 앞둔 시점에 왔고 김군룡의 인생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평소 그의 재능을 주목하던 북경의 한 소속사 대표의 제안으로 제13회 전국청년가수TV대회에 참가하게 된 것이다. 그는 이 대회에서 류행음악그룹 1등상을 수상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더불어 소속사와 계약을 체결하며 음악인으로서의 길을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했다.
“미술교원이 될 줄 알았는데, 인생은 예측할 수 없이 흘러갔어요.” 그는 붓대 대신 마이크를 잡았다.
# 빛과 그림자... 그리고 번아웃
2005년 음악계에 데뷔한 그는 각종 무대와 행사를 통해 이름을 알렸다. 인츰 《신아리랑》,《비상》 등 히트곡들을 잇달아 발표하며 활발하게 활동했고 2008년에는 중앙텔레비죤방송국에서 방영된 인기 드라마 《리소룡전기》의 주제곡 <주먹>(拳头)을 부르며 활동 범위를 넓혀갔다.
하지만 화려한 성공 뒤에는 어두운 그림자도 따라다녔다. “음악이 너무 고통스러울 때가 있었어요.” 부모님의 건강 악화와 사업적 어려움까지 겹치며 그는 심각한 번아웃을 경험했다. 스트레스로 몸무게가 급증하고 자신감을 잃어 모자를 쓰고 다니던 습관이 지금은 패션처럼 굳어버렸다. “오늘도 습관처럼 모자를 쓰고 왔잖아요.”그러면서 그는 웃었다.
지금은 롱담식으로 말할 수 있는 그 세월동안 김군룡은 온몸으로 좌절하고 방황하고 무너졌던 것이다. 그걸 지켜보던 안해가 “내가 나가 벌면 되니 힘들면 포기해도 괜찮아.”라며 묵직한 위로를 건넸다. 2009년, 김군룡은 모든 걸 접고 안해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왔다.
음악이랑 관련이 없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한 그는 다양한 일을 경험했다. 아침엔 연길의 골목을 다니며 우유배달을 했고 낮엔 미술계 동창이 꾸린 자그마한 광고회사에서 미술 디자인 일을 돕기도 했다. 그렇게 3년을 연길에서 살다 북경에 다시 가게 되였는데 그때도 음악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했다. “북경 거리에 나가 고기를 구워 팔았어요. 예전에 함께 무대에 섰던 댄스팀 친구들이 마이크와 음향을 들고 와서는 저보고 노래하면서 팔라고 해서 그렇게 했더니 더 잘 팔리던데요? ”
무뚝뚝한 성격이여서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안해의 몇마디 안되는 말이 오히려 큰 위로가 된다는 남편과 “당신의 음악이 제일 좋다”고 말해주는 안해는 19년의 세월을 함께 해온 인생의 동반자이다.
좌절과 실패를 딛고 일어날 수 있었던 건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자 영원한 팬인 안해가 있었기 때문이였다. 그가 우유 배달을 할 때 안해는 김밥을 만들어 팔았고, 북경에서 고기를 구울 때도 옆에서 액세서리 장사를 하면서 항상 그의 곁을 지킨 건 안해였다. 만난지 19년째, 두사람은 힘든 시절을 서로를 의지하며 함께 헤쳐 나왔다.
그는 그 시절을 ‘암흑기’라고 표현하지만, 그 안에서도 소중한 사람들과의 인연과 가족의 지지가 그를 지켜주었던 셈이다.
# 번아웃 극복하고 다시 찾은 음악
길거리에서 고기를 굽는 김군룡의 모습을 우연히 길가던 전 소속사 사장이 보게 되였고 그는 김군룡을 찾아와 손을 잡고 눈시울을 붉혔다. “너의 지금 모습이 초라해서 이렇게 슬픈 게 아니라 음악을 해야 할 사람이 이러고 있는 게 안타깝다”면서 그의 복귀를 희망했다.
그래도 놓을 수 없었던 음악의 끈, 몇달의 고민 끝에 그는 7년 만에 다시 무대로 돌아오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곧바로 2018년, 아리랑그룹으로 발표한 <옆집 타잔>이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그는 다시 전국적인 가수로 자리매김했다.
“그땐 아마 나이도 어렸고 시련에 대처하는 방법이 어설펐을지도 모르죠.”공백기를 겪으며 단단해졌고 더불어 성숙해진 것 같다고 밝힌 김군룡은 이젠 행복을 이야기 하고 싶어했다.
“지금은 행복해요. 음악을 할 수 있고, 고향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감사합니다.” 그는 고향 연변의 아름다움을 노래로 전하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여기며 고향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항상 소중하게 생각한다.
“고향에서 불러준다면 언제든 달려올 준비가 되여 있어요. 저의 음악이 고향을 알리는 데 조그마한 보탬이 되면 영광이죠.”
손풍금을 치며 무대에 섰던 산골소년의 음악 이야기는 그때로부터 이미 시작되였던 셈이다.
# 가수 김군룡, 그리고 인간 김군룡
무대 우에서 빛나는 스타 김군룡, 노래로 수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리는 음악인이지만 그 역시 고향이 그립고 고향이 정겨우며 고향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면서 웃는 게 좋은 평범한 ‘연변사람’이기도 하다. 그의 목소리에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가족에 대한 사랑이, 그리고 인생의 희로애락이 진하게 스며들어 있다.
이번 연변행에 네살반, 한살반 두 딸애까지 가족이 총출동했다. 아이들에게 아빠의 고향을 보여주고 고향의 변화를 함께 즐겼다. 핫하게 뜨고 있는 중국조선족민속원에 가서 민족복식 촬영 체험도 했다.
도전하고 싶은 음악 장르도, 만들고 싶은 컨텐츠도 많다는 ‘욕심쟁이’ 김군룡은 “앞으로도 꾸준히 음악을 하고 있을거구요. 연변의 문화를 노래하는 음악도 많이 만들고 싶어요. 가족과 고향, 음악이 있는 한 저는 계속해서 제 길을 걸어나갈 겁니다.”라고 말한다. 가수 김군룡과 인간 김군룡, 두 얼굴의 조화가 만들어내는 특별한 음악 세계가 그래서 더없이 기대된다.
/김가혜기자
编辑:안상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