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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은빛 발자취] 자동차공장조선족로인협회, 39년 전통의 ‘로인들의 집’

박명화      발표시간: 2026-06-22 09:24       출처: 길림신문 选择字号【

정부와 제1자동차공장의 관심, 그리고 로인들의 헌신으로 일궈낸 감동의 이야기

장춘자동차경제기술개발구 제1자동차공장조선족로인협회(략칭 자동차공장조선족로인협회), 리퇴직 로인들이 스스로 일으킨 이 협회는 39년 동안 놀라운 힘을 키워왔다. 자발적 헌신, 정부의 지속적인 지원이 만든 감동의 현장이다.

협회 설립 37주년 때 남긴 기념사진(중간 줄 왼쪽 여섯번째 사람이 박영아 회장)

작은 씨앗, ‘로인들의 집’으로 피여나다

“1987년 2월 27일, 제일자동차공장당위 통전부의 비준으로 협회가 설립되였습니다. 첫진의 47명 회원은 모두 자동차공장에서 리퇴직한 조선족로인들이였습니다.”

김수금로인의 목소리에는 그날의 설렘이 배여있었다. 조선족들은 공장 창립 초기부터 기술, 생산, 행정, 재무, 의료, 교육까지 공장의 기둥감들이였다. 그들은 자동차공장의 토대를 다지는 데 빼놓을 수 없는 기여를 했다. 박룡익로인은 바로 그중의 한명이다. 연구원급 공정사로 실형 주물 기술과 견본차(样车) 금형 연구개발에 매진하여 자동차공장의 금형 기술 발전에 이바지했다.

그 이름 하나하나가 협회의 뿌리이다. 협회 창립자 김영자로인은 항미원조전쟁 참전용사이자 공장병원 의사로 리직한 후 자선사업에 뛰여들었는데 무려 70여만원을 기부하여 어려운 학생들을 도왔다. 그는 전국선진퇴직간부 영예와 공장 당대회의 유일한 리퇴직간부 대표로 선출되는 뜻깊은 성과를 남겼다.  

공장 지도부는 조선족들이 공장 발전을 위해 기여한 바를 잊지 않았다. 1995년 3월, 공장 록화대 안에 활동실 부지를 흔쾌히 내주었는데 조선족 로인들에게는소중한 선물이였다.

소식을 들은 순간, 로인들은 일떠나섰다. 모금을 하는 한편 공장내 38개 부서를 찾아다니며 도움을 청했다. 반년도 안되여 건축비 절반이 넘는 현금과 자재가 마련되는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다. 70세가 넘은 남성 회원들은 기차역에 나가서 짐을 나르고 녀성회원들은 랭면을 팔아가면서 활동실 건축비를 보탰다.

1995년 10월 4일, 378평방메터나 되는 넓직한 활동실에서 준공 경축대회가 성황리에 열렸다. 공장 책임자가 친필로 쓴 ‘로인들의 집’(老人之家) 현판이 걸렸다. 그 순간 많이 이들이 눈시울을 붉혔다.

공장 책임자가 친필로 쓴 ‘로인들의 집’(老人之家) 현판이 활동실 문밖에 걸려있다.

끊임없는 지원, 든든한 버팀목

지원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1997년 협회 고문의 노력으로 공장에서 20만원이 지원되여 건축비 잔금을 털고 운영 물품을 마련했다. 2005년부터 활동실은 공장 리퇴직관리부에서 난방비를 부담하고 2011년에는 공장 사회사업부에서 활동실을 전면 수선해주었다. 2015년에는 장춘시민족사무위원회의 지원과 회원들의 정성을 보탠 방한보온 공사까지 이어졌다. 덕분에 추운 겨울에도 활동실은 꽃피는 봄이나 다름없이 회원들의 마음을 따스하게 해주었다.

2021년 8월부터 개발구와 동풍가두가 선후로 대형 스크린, 이동식 스피커 등 설비를 지원했고 고령 로인들을 위해 화장실 손잡이를 달아주었다. 2025년 4월에는 지붕 방수작업까지 마쳤다. 정성은 끝이 없었다.

지난 3월, 장춘에서 진행된 전국중로년예술단련맹 주최 공연 선발대회 결승 진출의 공연 장면.

전통문화 배움터, 마음을 잇는 터전

“우리 협회는 노래와 춤의 고향일 뿐만 아니라 배움의 교실입니다.” 로인들의 말처럼 이곳은 늙어가는 대신 성장한다.

회원들은 집체학습, 토론, 지식경연, 위챗 학습, 개인 열독으로 당과 국가의 방침, 국내외 시사 등을 골고루 공부한다. 무엇보다 중화문화를 배우며 중화민족공동체의식을 다져왔다.

한 회원이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위챗에서 조선말과 중문을 대조하며 리백, 두보, 백거이, 맹호연 등 옛시인들의 시를 배웠습니다. 조선말 속담에 맞는 한자 성어 470개를 익히고 중문 수수께끼와 민속습관도 차근차근 배웠습니다.” 81세 고령의 허춘자로인은 자신의 필기장을 펼쳐보였다. 빼곡한 글씨, 그 안에 중화문화 사랑이 살아숨쉬고 있는 듯했다.

협회는 강연회와 시랑송을 통해 혁명렬사들의 발자취를 추모하고 신문과 잡지를 읽으며 중국국제방송과 중앙인민방송의 조선어방송을 귀 기울여 들었다. 회원들은 언론에 100여건을 투고하여 이 배움터의 생생한 숨결을 전했다.

회장단은 ‘로인들도 시대의 흐름을 타야 한다.’며 스마트폰과 컴퓨터 학습을 권장했다. 수많은 고령회원들이 위챗그룹에서 활약하며 활동의 지평을 넓혔다.

2022년초, 사정으로 인해 협회 활동실 문을 잠그었을 때 협회는 위챗그룹에서 대규모 문예활동이 펼쳐졌다. 두달 동안 연인수로 252명 회원이 11개 류형의 359개 절목을 올렸다. 비대면 무대였지만 활동실을 훌쩍 넘었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한다.’는 신념으로 삽니다. 이제는 인공지능 기술을 배우며 시도 짓고 공연 절목을 조합해 영상도 만듭니다.”한 회원의 이 한마디에  왜 이곳이 배움터인지 알 수 있다.

2011년, 9.18사변 80돐을 추억하며 <나의 집은 송화강변에>를 공연하는 모습.

노래와 춤, 그 이상의 행복

협회 문예활동을 책임졌던 전 부회장 주혜숙로인의 말은 가슴을 저린다.

“활동실 짓기 전에는 공장 문화궁 련습실을 빌리거나 공원에서 활동했습니다. 그러다 우리 활동실이 생긴 날 너무도 기뻐서 어린애처럼 깡충깡충 뛰고싶었습니다. 그때부터 마음껏 노래하고 춤추며 로년의 행복을 느꼈죠.”

명절마다 협회는 노래와 정성으로 넘쳤다. 3.8절엔 남성 회원들이 녀성 회원을 위한 노래를 부르고 아버지의 날엔 녀성 회원들이 정성 어린 선물을 전했다. 5.1절엔 로동자의 노래, 7.1절엔 당원들이 당기 앞에서 초심을 되새기고 8.1절엔 제대군인에게 꽃다발을 안겨주며 감사를 전했다. 국경절이면 조국을 노래하는 합창 소리가 활동실 가득 울려퍼진다.

근년에 중양절 전후면 ‘도라지축제’가 열린다. 봄에 심은 도라지꽃밭에서 여름엔 사진을 찍고 늦가을엔 3년 된 도라지를 캐여 향긋한 장아찌를 담근다. 이 풍경은 중국국제방송의 전파를 타고 널리 알려졌다.

2023년 9월, 민족단결진보 선전의 달을 맞아 협회가 협회 활동실에서 동풍가두 신홍기사회구역과 함께 련환모임을 가진 후 남긴 기념사진.

초심을 품은 당원, 온기를 나누다

협회 회원의 40%가 중공당원이다. 그들은 협회의 옳바른 방향을 지키는 버팀목이다.

지난 10여년, 어려운 학생 돕기, 재해 구호, 빈곤 구제에 상당한 현금과 물자가 전해졌다. 2009년부터 8년 동안 자동차공장제1중학교의 곤난 학생들을 위해 해마다 장학금을 지원하는 나눔을 이어갔다. 액수보도 더 의미 있는 것은 그 손길과 정성을 모은 발걸음이 ‘초심’을 새삼 깨닫게 한다는 점이다.

2017년, 협회 설립 30주년 기념식에서 진행된 축수 활동 모습

헌신으로 빛난 집과 회원들

“회장들과 조장들은 자신이 회원들의 ‘근무원’이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박룡익 전 회장이 말한다. 

그들은 매주 일요일을 제외한 6일은 아침 일찍 나와 협회문을 열고 각 소조 활동을 빽빽하게 안배하며 정성 어린 봉사를 아끼지 않았다. 지금 협회에는 ‘서로 배우고 서로 아끼고 서로 돕는’ 아름다운 풍기와 ‘자기 관리, 자체 복무, 자각 공헌’하는 체계가 생생하게 살아있다.

로인들은 협회를 위해 물품을 기부하고 시설 보수에 팔을 걷어붙였다. 80세가 넘은 한 로인이 장대걸레를 어깨에 둘러메고 5리 길을 걸어서 왔다. 사다리가 부러지자 두 로인이 4메터가 되는 나무 장대를 하나씩 메고 목재상점에서10리 길을 걸어와서 새 사다리를  만들었다. 500여원을 아낀 작은 기적이다. 자가용으로 물자 구입과 환자 위문에 앞장서는 헌신도 이어지고 있다.

박영희 등 회원들은 협회를 집처럼 여기며 자금을 지원하고 물품 보관함,벽걸이 대형 거울, 큰 매트, 탁자와 의자,전기 주전자, 탁구대 등을 기부했다. 협회 재산은 나날이 풍성해졌다.

회원 자녀들도 든든한 후원자로 나서 자재와 현금 지원, 기념일 성금, 문예 공연과 영상 제작 등 다양한 형태로 후원을 이어왔다. 특히 윤순화로인의 두 아들은 협회 설립 37주년 축제때 큰돈을 기부해 귀감이 되고 있다.

2010년 이후 활동실 면적은 550여평방메터로 넓어졌지만 유지 보수 작업량도 그만큼 커졌다. 2021년 9월, 활동실에 비가 새자 남성 회원들은 지붕에 올라가 수리에 나섰고 녀성 회원들은 정성껏 차린 음식으로 그들을 위로했다. 후근을 책임진 력대 부회장들의 인솔 아래 회원들의 정성이 모여 협회는 오늘도 굳건히 자리 잡고 있다.

회장단은 로인들의 건강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다. 2021년에는 모든 회원의 건강상태, 련락처, 취미 등을 조사해 긴급 정보를 담은 구급명패를 제작, 교통카드와 휴대폰에 부착하도록 했다. 위급상활 발생 시 행인과 의사가 신속히 대처할 수 있는 작은 지혜, 회원들과 자녀들의 호평이 자자하다.

2024년 12월, 제1자동차공장 금형회사 생산현장에서 공연후 기술자들과 남긴 기념사진.

우수한 전통, 새로운 날개를 달다

박영아 회장의 목소리는 당당하다. “2016년, 협회는 전국조선족로인협회련의회로부터 ‘선진로인협회’로 선출되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당시 김수금 전임 회장은 선진 경험을 소개하기도 했지요. 우리는 이 영예에 손상이 없도록 쉼없이 노력해왔습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 협회는 로인들의 즐거움을 기본으로 삼아왔습니다. 그 중심에는 력대 회장단의 묵묵한 헌신과 따뜻한 손길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특히 력대 문오 부회장들의 노력 덕분에 내부 문예활동은 물론 장춘시와 개발구, 가두의 각종 행사에 빠짐없이 참가해 많은 호평을 받았습니다.”

상무부회장 마란은 수상 경력을 보충하며 미소를 지었다. “우리는 장춘시조선족군중예술관의 무용, 광장무, 합창 공연에서 1등상 6개를 따냈고 성과 시 조선족로인협회 소품경연에서 련속 1등상을 차지했습니다. 최근에는 장춘에서 진행된 전국중로년예술단련맹 주최 은령예술풍채 전시공연 선발대회에서 결승 진출권을 따냈습니다. 더 좋은 성적을 위해 현재 온 힘을 쏟고 있습니다.”

회장단의 소개에 따르면 2021년, 중앙 문건에 따라 공장은 협회 관리 권한을 장춘자동차경제기술개발구에 이관했다. 2023년 6월, 협회는 다시 법인단체로 인정받으며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협회는 ‘가두와 공장 생산현장을 찾아 위문 공연’을 결합해 여러 차례 민족단결 련환회를 진행했다. 2024년 12월, 제1자동차공장 금형회사 생산현장 기술자들 앞에서 펼친 공연은 기술진들의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

박영아 회장은 끝으로 “정부와 자동차공장에서 마련해준 모든 혜택은 회원들로 하여금 당의 민족정책의 우월성과 소수민족에 대한 정부의 세심한 관심을 느끼게 했습니다. 협회는 언제나 중화민족 우수 전통을 계승하면서 새로운 진보를 이루어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갈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박명화, 정현관 기자







编辑:유경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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