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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 연변 사랑… 평생으로 갚는 은혜

김명준      발표시간: 2026-05-19 14:41       출처: 길림신문 选择字号【

―상해지식청년들이 제2의 고향에 보낸 감동의 기록

20세기 60~70년대, 미지에 대한 동경과 방황을 가슴에 안은 채 부모 곁을 떠나 머나먼 연변으로 향한 상해 청소년들이 무려 1만 8,000여명에 달했다. 전혀 낯선 환경, 간고한 생활, 고된 로동과 마주해야 했던 그들을 연변의 여러 민족 군중들이 넓은 흉금으로 그들을 안아 주었다. 상해 지식청년들은 여린 어깨로 연변 인민과 함께 비바람을 맞으며 눈물과 땀을 흘렸고 함께 밭을 갈고 수확하며 서로의 삶 속에 스며들었다. 그 세대의 청춘들은 세월의 풍파를 겪었지만 함께 나눈 따뜻하고 진한 기억 덕분에 력사의 긴 자락에서 지울 수 없는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반세기가 흘렸지만 연변은 상해 지식청년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영원한 그리움의 제2의 고향으로 남아있다. 은혜를 알고 갚고자 하는 마음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짙어져 하나하나의 감동적인 이야기로 이어지고 있다.

안도현에 하향한 상해 지식청년 초준봉은 상해로 돌아간 뒤에도 하향했던 마을의 촌민과 지도자들을 한순간도 잊지 못했다. 마을 사람들이 상해에 일 보러 오거나, 치료를 받으러 오거나, 공부하러 와서 그를 찾으면 그는 언제나 힘을 다해 정성껏 맞아주었다. 자신의 집 한 채를 내주어 연변에서 오는 손님 전용으로 사용하게 했고 수많은 휴일을 멀리서 찾아온 손님들을 돌보고 돕는 데 사용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연변에서 상해까지 치료받으러 오기가 정말 쉽지 않습니다. 제가 비록 큰 돈을 드릴 수는 없지만 숙박비와 식비라도 절약해 드리고 따뜻한 집밥 한끼라도 대접할 수 있다면 제 마음이 편합니다.”

초준봉 부부는 연변에 돌아갈 때마다 꼭 마을에 들러 그 시절 함께했던 감아주머니를 찾아뵙는다.

2010년 7월, 안도현에 큰 홍수 피해가 발생하자 많은 지식청년들이 소식을 듣고 마음을 졸였다. 초준봉은 양배원, 정신일, 진아군 등 10여명과 함께 신속하게 모금을 조직했다. 며칠만에 140여명이 호응했고 13만여원을 모금해 피해 지역에 전달했다. 이 일은 〈신민밤보〉와 〈연변일보〉에 련이어 보도되였다.

은혜를 갚아왔던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화룡현(현 화룡시)에 하향하였던 백문례는 1995년부터 와룡향의 빈곤학생 허철복을 자발적으로 돕기 시작했고 소학교 3학년부터 고중 졸업에 이르기까지 무려 10년 동안 지원을 계속했다. 1997년에는 장리경과 장지경 형제가 〈연변일보〉를 통해 렬사 유가족 미영의 처지를 알고 즉시 5,000원을 보냈으며 이후 매년 개학 전에 빠짐없이 4,000원씩 10년동안 한번도 거르지 않고 보냈다. 40년의 당령을 가진 허행화, 당성창 두 로당원은 산간지역의 교육에 깊은 애정을 쏟아왔다. 당서창은 농촌 아이들이 학업을 이어가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기에 특별히 안도현정협과 련계해 지원 대상자를 확정하고 신속하게 실행에 옮겼다. 안도현정협 지도자는 “상해 지식청년들이 떠난 지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우리 아이들과 마을사람들을 마음에 두고 있으니 참으로 감사합니다.”라며 감탄하며 말했다.

안도현 상해지식청년 당서창, 강찬아 부부는 수십년간 빈곤 학생을 후원해 왔다. 사진은 2018년 5월 하순, 후원을 받은 학생 소기(왼쪽 두번째)와 그녀의 담임 선생님(오른쪽 두번째)과 함께 찍은 모습이다. 현재 후원을 받았던 소기는 호북중의약대학을 졸업했다.

함께 화룡에 하향했던 김철염과 안해 장려화는 퇴직 후 자발적으로 두명의 조선족 빈곤 학생을 지원했다. 현재 그 책임은 딸과 사위에게 넘겨졌고 세대를 잇는 지원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화룡에 홍수 피해가 났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가장 먼저 지원금을 내놓은 것도 이들이였다.

제2의 고향 땅을 다시 찾는 것도 많은 지식청년들이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 2005년, 연길 삼도공사(三道公社) 동구촌에 하향했던 12명의 지식청년들은 6년의 준비 끝에 옛날 그 작은 마을을 다시 방문했고 노트북 2대를 마을사람들에게 선물했다. 2009년, 훈춘에 하향한 지식청년 손월방은 훈춘 제1소학교에 컴퓨터 2대를 증정했고 10년 뒤인 2019년에는 다시 주배흥과 함께 훈춘에 하향한 상해 지식청년들을 대표하여 훈춘시자선기금회에 자원금을 보내며 연변땅의 양육 은혜를 행동으로 보답했다.

2019년 8월 18일, 상해지식청년들이 제2의 고향을 재방문한 자리에서 손월방(오른쪽 두번째)과 주배흥(오른쪽 첫번째)이 훈춘 상해지식청년 대표로 훈춘시자선기금회에 자원금을 전달했다.

훈춘 오도구에 하향했던 정리총은 후날 상해동제대학에서 근무했다. 그는 훈춘의 도시계획을 위해 자신의 자원 우세를 충분히 발휘했고 2004년 동제대학 도시계획팀이 훈춘 도시계획에 참여하도록 가교 역할을 했다. 이런 행동은 현지 지도자들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정리봉은 “제2의 고향을 위해 일하는 것이 오랜 나의 소원이였습니다.”고 말했다.

2012년 가을, 연변 사과배가 판로를 잃어 과일 농민들이 애를 태우고 있을 때 연변에서 일하던 상해 지식청년 출신 리충복은 즉시 이 사실을 ‘상해 연변 지식청년 네트워크’에 알렸다. 불과 이틀만에 50여명의 상해 지식청년들이 자발적으로 련락을 해왔고 결국 사과배 1,500상자를 구매하여 농민들의 어려움을 덜어주었다.

연변 화룡현(현 화룡시) 농촌에서 10년간 하향생활을 한 상해 지식청년 요조당·림소란 부부는 하향시절 혈연관계가 전혀 없는 생산대의 조선족 독거로인 리생금과 함께 10년을 함께 생활하였다. 1977년 지식청년 대규모 귀환 때, 요조당·림소란 부부는 이 홀로 남은 로인을 상해로 모셔와 함께 생활했고 나중에는 로인의 상해 호구 문제도 해결해 주었다. 그렇게 22년 동안 모시다가 로인을 편히 보내드렸고 그때 로인의 나이는 89세였다. 또한 로인의 유언에 따라 유골을 직접 연변으로 모셔가 화룡 대지에 안장했다.

상해로 돌아온 지식청년들은 연변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것이 연변 인민에게 가장 좋은 보답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조선족 등 변강 민족의 문화예술을 한층 더 계승·발양하고 있다. 상해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훈춘지식청년 진달래 무용팀과 연변상해지식청년 홍형무용팀은 상해 무대에서 그 풍채를 마음껏 펼치면서 변강 소수민족 문화를 잘 알리는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상해에 돌아가서도 조선족 장고춤을 추며 이를 알린 장설진은 ‘나의 장고 나의 꿈’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에게 장고춤을 가르쳐주신 분은 유명한 조선족 장고춤 전승인 박선생님이셨습니다. 그리고 백선생님과 류선생님도 계셨습니다. 장고춤은 저에게 황홀하고 꿈 같은 아름다운 인생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나의 장고는 나의 꿈’이라며 늘 뿌듯하게 감탄하곤 합니다.”

장설진 ‘나의 장고 나의 꿈’

2018년 7월 6일, 동북아(중국 연변) 국제문화관광 추천주간이 연변에서 개막하였다. 상해 지식청년 홍형자원봉사예술단 일행 43명이 3개 종목을 공연하여 연변을 감동시켰고 ‘최우수공연상’을 수상하며 성, 주 텔레비죤방송국과 여러 대형 매체의 취재를 받기도 했다.

시대 흐름과 함께 상해 지식청년들의 연변 여러 민족 군중들에 대한 보답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 그들은 컴퓨터를 열고 건판을 두드려 연변에서 쌓은 경력과 감정을 책으로 엮어 연변을 알리고 연변에 대한 자신들의 감정을 전달하고 있다.

연길현(현 연길시) 연집공사 남계3대에 하향하였던 오소규(釚)는 연변대학 중문학부 한어언어문학 전공을 졸업하고 연변대학학보문학 편집, 연변대학출판사 부총편집, 연변대학 중문학부 고전문학 부교수를 력임했다. 상해로 돌아온 뒤에는 산문집 《나와 남계(我与南溪)》, 《남계어림(南溪语林) 등을 잇따라 출간했다. 산문 ‘고촌상앵(顾村赏樱)’, 고향의 변화(故乡之变)는 각각 중국산문학회, 중국산문창작중심이 개최한 2011년, 2012년 전국산문작가포럼 현상모집에서 2등상을 받았다. 작품 처음으로 장백산에 오르다(初登长白山)는 중국문련출판사가 편찬한 2010 중국산문경전에 수록되였으며 다시 장백산에 오르다(再登长白山), 사시서궤부(四时西氿赋), 산길(山路), 란수(栾树), 5월의 연변 산야(五月的延边山野)는 중국산문학회가 선편하고 중국문련출판사가 출판한 중국산문대계관광권, 서정권, 철리권, 기사권, 경치권에 각각 수록되였다.

1969년 3월 훈춘현(현 훈춘시) 경신공사 소반령에 하향한 왕보발은 훈춘현당위 판공실 비서, 경신공사당위 부서기, 안휘성 황산일보사 기자와 주임, 상해시 포동신구 구위원회 선전부 부처급 직무를 력임하였다. 그가 집필한 적천록—산문수필집(滴泉录一散文随笔集) 중의 도미표향심산오(稻米飘香深山坞), 집체호에서 설 보내기(在集体户过年), 집체호의 생일 케이크(集体户的生日蛋糕), 반세기의 재회(半个世纪的重逢), 호랑이 만나 위험에 처하던 이야기(遇老虎历险记) 등 작품은 제2의 고향에 대한 짙은 정감이 보여주었다.

안도현 신합공사 서한2대에 하향했던 윤흥암은 1978년 상해로 돌아온 뒤 ‘처마밑 문학(屋檐下的文学)’이라는 사이트에 련재글 ‘도리겁(桃李劫)’ 등 30여편을 발표하여 연변에서의 잊지 못할 지식청년 세월을 진실하게 기록하였다.

훈춘현 경신공사 조양3대에 하향하였던 지식청년 작가 범문발은 1977년 길림대학 중문학부에 입학했고 그 뒤로 대학 교원을 력임했다. 2012년 7월,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 60주년을 기념하여 범문발은 상해 지식청년 기수연, 조평생, 전립방 등 4명은 함께 훈춘을 취재하러 갔다. 연변주와 훈춘시 지도자 및 친구들의 열정적인 도움, 훈춘 상해 지식청년들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그해 12월에 범문발과 전립방이 주필을 맡고 연변인민출판사가 출판한 변성에 만발한 금달래(边城盛放金达莱)가 출판되였다. 2013년 1월 30일, 훈춘시 당위와 정부가 상해 지식청년들에게 보낸 감사 서한에서 “변성에 만발한 진달래는 훈춘을 선전하고 훈춘의 관심도와 영향력을 높이는 데 적극적인 추진 역할을 했다.”고 했다.

하영근은 더욱 고된 길을 선택하였다. 그는 적은 사재를 털어 뻐스와 뜨락또르, 심지어 소달구지(牛车)와 도보로 연변과 훈춘의 구석구석을 찾아다녔다. 아직 이곳에 남아있거나 이미 상해로 돌아간 수백명의 상해 지식청년들을 취재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모아 마침내 세월이 남긴 자취(岁月留痕)를 정리하여 출판하였다. 이 책에 담긴 것은 이 상해 지식청년들이 연변에 바친 뜨거운 피와 정성이였다.

주배흥, 초준봉이 주필을 맡은 한 상해지식청년편집부는 5년 사이에 련달아 유유한 세월 반평생의 정(悠悠岁月半世情), 지식청년 옛 사진―상해지식청년 길림서(知青老照片—上海知青在吉林), 그림으로 보는 장백 천지(图说长白天地), 장백고향의 정—상해지식청년 길림서(长白故乡情—上海知青在吉林) 등 4부의 도서를 집필·출판하였다.

장백고향의 정—상해지식청년 길림서는 회고적 산문집으로 연변에 하향하였던 60여명의 상해 지식청년 작가들이 1인칭 시점으로 연변 인민과 맺은 깊은 우정과 여러 민족간의 교류와 융합의 진실한 세월을 생생하게 서술했다. 이 책은 상해 지식청년과 변강 소수민족 인민들이 고난을 함께 겪고 민족 융합을 촉진하며 문화적 공감대를 강화하고 변강 문화를 널리 알린 아름다운 장을 증언하는 귀중한 기록이다.

한권 한권, 한편 한편의 이런 글들은 기억의 보존에 그치지 않고 지식청년 세대가 청춘으로 써내려간 증언이며 두 지역과 두 민족 사이에 끊기지 않고 이어지는 정감의 끈이다. 모든 책에는 진심이 담겨 있고 잊지 못할 세월이 숨어 있다.

오늘의 연변에는 여전히 지식청년들의 청춘의 자취가 남아 있고 오늘의 상해에서 지식청년들은 여전히 연변을 마음속 깊은 곳에 담아두고 있다. 그들은 감사의 마음으로 이 땅과의 깊은 인연을 이어가며 그 특별한 시절을 새시대의 해빛 아래 더욱 아름다운 빛을 발하게 하고 있다.

/주배흥


编辑:정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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