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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림신문 > 로인녀성

항미원조에 달려나가던 15살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며

유경봉      발표시간: 2025-09-08 00:13       출처: 길림신문 选择字号【

대련부대간부휴양소에서 행복한 여생을 보내고 있는 90세 고령의 항미원조 참전용사 김봉석

올해 90살인 나는 현재 대련에서 두 아들의 효도를 받으며 행복하게 여생을 보내고 있다. 

지난 9월 3일 중국항일전쟁 및 세계반파쑈전쟁 승리 80주년 기념대회 열병식을 시청하면서 나는 격동된 심정을 걷잡을 수 없었다. 의기가 분발하고 투지가 앙양된 륙·해·공·로케트군 장병들, 외래침략자들의 간담을 서늘게 하는 현대화한 무기장비들과 힘차게 나붓기는 국기아래 열병식 대오를 검열하는 당과 국가의 지도자들...... 

감격과 눈물 없이 보고 들을 수 없는 열병식 장면을 텔레비죤을 통해 보노라니 나는 저도모르게 1950년 10월에 15살 어린 나이에 항미원조전선으로 달려가던 지난날이 머리속에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김봉석이 지난 세기 50년대에 항미원조전쟁에 받은 3등공 메달

나는 1935년 1월 조선 함경북도 길주군에서 태여나 1944년 겨울에 두만강을 건너 화룡현 투도구(현재의 화룡시 투도진) 명성촌에 이주했다. 내가 중학교 3학년에 다니던 어느날, 학교에서는 긴급 사생대오를 열고 미군의 조선 침략으로 전쟁의 불길이 우리 나라 변경에까지 들이닥친 형세를 설명하면서 참군 의향이 있는 학생들은 신속히 신청하라고 호소했다. 

 김봉석의 항미원조전쟁 기념메달

그때 내 나이 16세, 풍채와 재질이 한창 피여나고 서생의 기개 떨칠 때라 집식구들과 일언반구도 없이 참군 신청을 했다. 참군하던 날 아침이 돼서야내가 부모님에게 오늘 항미원조 전방으로 떠난다고 말했더니 어머니는 돌아앉아 락루만 하셨고 애꿎은 담배만 피우던 아버지는 “가거라. 전쟁의 불길이 발등에 떨어졌는데 사나이로 태여났으니 먼저 나라부터 구해야 한다.” 고 말씀하셨다. 

젊은 시절의 김봉석

심양에서 총동원대회를 한 후 우리는 압록강을 건너 옹근 사흘밤 자동차를 달려 조선 강원도 서해안에 도착했다. 38선과 그리 멀지 않은 해안선인지라 낮이면 적군의 비행기가 파리떼처럼 공습하고 대포소리가 쉴 새 없었다. 

그때 나는 포병부대 지휘부에서 통역과 지방 소통 사업을 하다보니 총가목을 부여잡고 적들과 직접 싸우지는 않았지만 적기의 공습에 목숨을 잃는 전우들의 비참한 장면을 자주 보고 들었다. 

젊은 시절의 김봉석

어느날 아침, 통신원 왕씨가 밥 타러 간다고 금방 문을 나섰는데 하늘에서 윙~ 하는 비행기 소리가 울리는가 싶더니 폭탄이 바로 왕씨 곁에 떨어지면서 왕씨는 그 자리에 쓰러졌다. 한쪽 다리는 뭉청 떨어져 나갔고 온몸은 피투성이가 되였다. 시체를 보는 순간, 나는 온몸이 굳어버렸다. 나와 함께 짬만 있으면 고향이야기를 나누던 친구, 조선족인 나한테서 조선말을 배우고싶다며 열성을 올리던 친구, 나보다 한살 더 먹었다고 식사할 때마다 늘 자기 몫을 갈라서 나의 밥그릇에 담아주던 전우... 그의 시체를 묻은 후 나는 밤마다 그와 함께 고락을 나누던 지난 날이 머리속에 떠오르며 눈물이 앞을 가려 좀처럼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후 며칠 안되여 부대 수장의 운전병 류씨도 수장이 차에서 내린 후 찦차를 나무밑에 대피시키고 있다가 갑작스런 적군의 공습에 차는 박살이 나고 류씨도 즉사했다. 시간이 차츰 흐르면서 나는 전쟁의 참혹성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였고 정의적인 전쟁의 승리는 무수한 선렬들의 피와 목숨으로 바꾸어 온다는 것을 깊이 깨닫고 맡겨진 사업임무를 출중히 완성했다. 

젊은 시절의 김봉석

가렬처절한 전쟁 환경과 철같은 지원군의 규률은 나의 성장의 밑거름이 되였다. 나는 부대에서 입당했고 3등공을 기입받았다. 1953년 10월에 귀국한 후 북경군관학원의 3년간 학습을 거쳐 려순 모 부대에 배치받아 퇀정위로 사업하다가 정년퇴직했다. 

돌이켜 보면 근 50년의 군인생활은 ‘둥지’를 깨고 나와 바깥세상에 나와 넓디넓은 세상을 체험한 50년이였고 전쟁의 시련과 철같은 규률로 자신을 련마하는 50년이였으며 당과 나라의 사업을 위해 헌신한 50년이였다. 

내 생명의 고동이 멈출 때까지 당과 나라를 위한 나의 초심은 드팀없을 것이다!

/구술: 대련부대간부휴양소 김봉석, 정리 리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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