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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림신문 > 로인녀성

[백세인생] 퇴직후 장백산기슭에서 창업한 90세의 ‘발전왕’

유경봉      발표시간: 2025-08-15 12:58       출처: 길림신문 选择字号【

—안도현 첫 민영발전소의 주인 정대원로인을 만나보다

정대원로인이 대천하발전소의 발전 정황을 소개하고 있다.

최근, 기자 일행이 수소문 끝에 찾아간 안도현 이도백하진에 위치한 대천하(大泉河)발전소의 하천 상류에서 백발이 성성한 한 로인이 전문일군과 함께 몸소 발전시설 정비를 하고 있었다.

연변 단오절 씨름경기의 협찬자, 알고보니 90세의 ‘발전왕’

백발이 성성하지만 기품이 넘치는 이 로인은 바로 지난 5월 31일, 중국조선족민속원에서 개최된 ‘2025년 단오절 연변주민족식씨름경기’에 5만원을 후원하여 좌중을 놀래운 장본인인 90세 고령의 정대원로인이다.

리설봉 교장이 단오 씨름경기 장면이 담긴 사진을 정대원로인에게 증정하고 있다.

시상식에서 “이 분이 바로 선수들 상금으로 5만원을 협찬해주신 정대원 로인”이라는 씨름경기 조직자중 한명인 연변성주체육운동학교 리설봉 교장의 소개에 이어  한복차림을 한 백발의 건장한 로인이 87키로그람 이상 경기 우승자 유택군선수에게 전통 씨름의 정신을 상징하는 황소 고삐를 넘겼다. 삽시간에 현장의 관중들은 뜨거운 박수로 경의를 표했으며 로인의 선행에 탄복함과 아울러 이 로인의 신분에 대해 궁금해마지 않았다고 한다.

정대원로인의 신분은 바로 개혁개방의 물결을 타고 30여년전에 장백산기슭의 안도현 첫 민영발전소인 대천하발전소를 창설한 주인공이다.

대천하발전소의 수원지에서 발전설비를 정비하다가 깜짝 방문한 기자의 취재를 받는 정대원로인.

정대원로인이 창설한 대천하발전소는 매일 1만키로와트시(1만도)의 전기를 생산하여 국가전망에 판매하고 있다. 놀라운 것은 이 발전소가 정대원이 퇴직을 앞두고 독자적으로 창업했다는 사실이다.  

1970년 상급부문에서는 안도현 만보향공천단위원회 서기직에 있던 35살의 정대원에게 명월진무장부 부장, 현와정대(挖井队) 당지부서기, 건설중인 내두발전공장 돌격조 책임자 차출(抽调)직 등 3가지 직무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다. 정대원은 “위치가 편벽하여 자식들의 학습에 영향이 있다”는 안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도전성이 강한 내두발전공장을 골랐다. 그는 젊은 로동자들을 이끌고 불과 3년만에 발전공장을 일떠세우는 동안에 전기 ‘문외한’으로부터 전문가로 급성장했다.

대천하가 보이는 민박.

발전공장 종업원들의 소득증가 위해 공동창업 제안

정대원은 비록 차출직이였지만 날마다 필기장을 들고다니며 꾸준히 배우고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모두의 인정을 받아 발전공장이 사용에 교부되자 부공장장으로 승진하여 공장의 업무를 주관하기 시작했다.

정대원로인이 도태된 로후 발전기와 변압기를 소개하고 있다.

당시 내두발전공장의 위치가 편벽한데다가 다른 대형단위들처럼 학교가 있는 것도 아니여서 로동자들은 현성에 있는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야만 했고 어린 아이들은 부모들과 떨어져있어야만 했다. 게다가 로동자들의 몇푼 안되는 로임으로는 자식들 공부뒤바라지도 힘들었다. 하여 로동자들의 적극성이 강하지 않았는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학교가 있는 단위로 전근하려는 로동자가 태반이였다.

몇년만에 공장장으로 승진한 정대원은 종업원들의 로임을 2급 인상시켜주었을 뿐만 아니라 부업으로 업여시간에 종업원들을 이끌고 장백산에서 뜯은 잣을 팔면서 그들의 소득을 제고시켜주었다. 비록 현농전국으로부터 행정경고처분까지 받았지만 그의 열정은 식지 않았다. 그는 1년 사시절 얼지 않는 장백산기슭의 10여갈래 하천의 락차를 리용해 민영발전소를 건설하여 그 수입으로 수입증대를 도모하자고 로동자들에게 제안했다.

2009년 9월 9일에 세운 발전소 2기 공사 준공 10주년 기념 패쪽을 소개하는 정대원로인.

상급부문에 〈대천하소형수력발전소를 개발할 데 관한 청시보고〉를 제기했지만 “무모한 짓이다”, “기상천외한 일이다!”라는 답복을 받았고 종업원들도 적극 나서주지 않았다.

2선에 물러난 후 개혁개방 물결 타고 민영발전소 창업

기회는 1987년에 찾아왔다. 그해에 정대원은 내두발전공장의 경영 제1선에서 물러나 고문직을 맡게 되였다.

정대원로인이 운영중인 민박과 음식점을 소개하고 있다.

같은해, 안도현당위에서 소집한 개혁개방정책 전달회의에 참가한 정대원은 현당위 주요 책임자가 한 “당과 정부는 일부분 지역과 일부분 사람들이 먼저 부유해지는 것을 지지한다. 공산당원들은 반드시 사상을 해방하고 앞장서서 부유해져야 한다.”는 연설을 들은 후 십여년간 가슴속에 묻어왔던 대천하수력발전소 건설의 꿈을 실현할 때가 왔음을 직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현수리국으로부터 “수리자원은 국가 소유이고 발전소 건설은 자체건설, 자체관리, 자체사용을 실행하며 소유권은 투자건설자에게 속한다.”는 내용의 서류까지 받아본 정대원은 바야흐로 행동에 옮기기 시작했다.

90세 생신을 축하하여 자식들이 선물한 조립식 민박집앞에서

1987년 7월에 마계(魔界)풍경구 동쪽에 위치한 대천하의 샘물을 리용한 대천하발전소 건설의 첫삽을 떠서부터 1992년 9월 1기 공사를 마치기까지 5년 1개월 남짓한 동안 정대원과 부인 김금순은 천방백계로 100여만원의 천문학적인 대부금과 민간대출을 받아서 일반사람은 상상도 못할 고생을 고통을 감내하면서 발전소의 정상 운영을 이끌어냈다. 그들은 7년후인 1999년 9월에 2기 공사까지 준공시키면서 현재의 발전량 규모에 이르렀다.

네 자식에게 달마다 용돈 주는 90세의 부친

연길최씨정골병원의 최종하원장은 정대원로인의 맏사위 최갑기와 60여년째 절친이며 로인과 알고지낸지도 수십년이 된다. 지난 단오절 씨름대회에 대원 로인의 협찬을 주선해나선 장본인이기도 하다.

발전소를 찾은 큰 사위 및 그의 지인들과 함께(왼쪽으로부터 최종하, 정대원로인, 최갑기, 리설봉)

그는 “개혁개방 초기에 남들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민영발전소를 세울 생각을 다 하시고 30여년째 국가에 끊임없이 전기를 제공하신 정로인이 너무나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90세의 부친이 계신다는 사실도 누구나 부러워할 일인데 네 자식에게 달마다 용돈을 주신다니 정말 존경스럽습니다!”라고 말한다.

정대원로인은 “유산의 형식이 아닌 내가 살아있을 때 달마다 용돈으로 자식들에게 건네주고싶었다.”며 몇년전부터 2남2녀, 네 자식에게 달마다 5천원씩 용돈을 주고 있다. 네 자식은 전부 전력계통에 근무하는, 사회에서 알아주는 엘리트들로서 생활이 유족한 편이지만 자식들을 향한 부친의 내리사랑은 현재 진행중이다.

대천하발전소의 수원지에서 발전설비를 정비하고 있는 정대원로인, 누가 봐도 90세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정정한 모습이다.

정대원로인은 마계표류 경영권과 원래 경영하던 민박 경영권을 임대주고 현재 막내아들 정철룡, 허춘화 내외의 도움으로  민박과 조선족음식점도 경영하고 있다.

올봄, 로인의 90세 생일선물로 네 자식은 발전소 울안의 대천하변에 조립식 방을 몇채 지어드려 부친의 민박업 규모를 넓히도록 했다.

90세 정대원로인의 경영스토리는 마계풍경구의 산속에서 수많은 지인들의 부러움속에서 30여년째 씩씩하게 이어지고 있다.   

정대원로인이 운영중인 대천하조선족음식점앞에서.

대천하발전소 전경이 담긴 대형 사진벽 앞에서

/유경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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