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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길림신문] 우리 가족이 함께 했던 행복한 추억

      발표시간: 2025-08-21 15:19       출처: 길림신문 选择字号【

◎ 박경화

《길림신문》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은 냄새다. 책 냄새나 종이 냄새와도 다른, 겹겹이 포개진 종이장마다 까맣게 박힌 활자에서 풍겨나오던 진한 인쇄향, 그것은 어린 시절, 먼 세상과 나를 이어주던 다리의 냄새였다. 그 향을 맡으면 먼 성(省) 소재지에서 바삐 달려온 소식들이 코앞에 와 닿았고 어린 마음속에는 알 수 없는 설렘과 궁금증이 피여 올랐다.

'딸랑딸랑' 자전거 방울소리와 함께  인기척 소리가 들리면 나는 언제나 잽싸게 밖으로 뛰여나갔다. 그러면 항상 자전거를 탄 키 큰 아저씨가 빙그레 웃으시면서 푸른 우편가방에서 《길림신문》을 꺼내 넘겨주었다. 집에 사람이 없을 때는 바자굽 틈새에 끼워져 있기도 했다. 신문을 발견하면 나는 제일 먼저 내가 즐겨읽는 지면을 꺼낸 뒤 나머지를 식구들이 나눠볼 수 있도록 건네주었다. 급급히 바닥에 엎드려 신문을 읽다 나니 무릎이나 손바닥에 인쇄잉크가 묻어나기 일쑤였다.

《길림신문》에서 내가 제일 좋아했던 지면은 <감초선생>이였다. 만화로 된 짧은 이야기였는데 우리 온 집 식구들은 모두 그 <감초선생>을 손꼽아 기다리며 즐겨읽었다. 짧은 만화였지만 그 속에는 삶의 지혜와 소소한 웃음, 그리고 따뜻한 위로가 있었다. 때로는 풍자와 유머로 현실 사회의 부조리를 꼬집는 이야기를 담았고 때로는 가족과 이웃 사이의 따스한 정을 담은 이야기들도 있었다. 그 이야기들은 어린 나에게 세상을 리해하는 눈을 키워 주었고 만화 속 다양하고 복잡한 감정을 담은 우스꽝스러운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인간의 심리와 관계라는 것에 눈을 뜨게 되였다. 그 만화를 읽은 날이면 나는 하루 종일 그 재미에 푹 취해있었다. 길가에서 아이들을 만나기라도 하면 붙잡아놓고 그 만화 이야기를 들려줘야만 직성이 풀렸다. 그 시절 나는 만화라는 친근한 지면을 통해 자연스럽게 우리글 읽기에 익숙해지고 우리글 읽기에 흥미를 가졌던 것 같다. 《길림신문》이 오는 날마다 우리 집 식구들이 같은 공간에서 같은 재미로 함께 하는 행복을 피웠던 기억은 지금도 나에게 있어 정말 소중한 추억이다.  

다 읽은 신문들은 집안 곳곳에서 다양한 용도로 재활용되였다. 책가위로 쓰이기도 했고 서랍이나 찬장의 받침대로 쓰이기도 했으며 남새 씨앗들을 신문지에 꼼꼼히 싸여 보관하기도했다. 정답고 소박한 우리글을 먹고 자란 덕분인지 우리 집 마당의 남새들은 유난히 잘 자랐다. 가루가 포실포실 피여 오르는 감자, 달콤한 물기가 쪼르르 흐르는 푸른 무우, 통통하고 속이 노르스름해 먹음직스러운 배추까지... 현대 사회에서는 돈을 주고도 쉽게 구하기 어려운 귀한 남새들이였다.

며칠 전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문득 친구가 말했다.

“내 기억에, 어렸을 때 너네 집에는 항상 책이 많았어. 기실 그 시절 그렇게 많은 책들을 구하긴 쉽지 않았었잖아.”

“어? 그랬었나?”

생각해 보니 친구의 말이 맞았다. 우리 집에는 항상 볼거리가 많았다. 어릴 적에는 당연한 일로 여겼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그 시절 적막한 시골 농촌에서 신문과 잡지를 마음껏 읽을 수 있었던 건 누구에게나 주어진 행운이 아니였다.

우리가 《길림신문》을 마음 놓고 읽을 수 있었던 건 모두 아버지 덕분이였다. 아버지는 당원이자 조직위원이셨기에 우리 집에는 늘 《길림신문》이 배달됐다. 그리고 글 읽기 좋아하셨던 어머니는 대대에 있는 잡지들을 빌려와 돌려보군 하셨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길림신문》 외에도 연변녀성, 지부생활, 청년생활등 우리말 잡지들이 늘 눈에 띄였던 것이다.

“그래서 너는 글쓰기가 꿈이였나 봐.”

친구가 말했다. 친구의 말처럼 내가 읽었던 신문과 잡지들, 그리고 신문이나 잡지를 즐겨 읽으셨던 부모님의 모습이 내게 글쓰기라는 꿈을 심어주었던 것 같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농사군이셨지만 책 읽기를 무척 좋아하셨다. 글을 읽을 때면 고된 로동으로 거칠어진 얼굴에서 평소에는 볼 수 없던 순진한 미소가 번지는 것을 보아낼 수 있었다.

타향살이를 하다가 고향에 돌아와 글쓰기를 시작한 것은 오랜 세월이 흐른 뒤였다. 옛날 연길 골목길, 공중전화점 앞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었던 《길림신문》은 이제 종적을 감췄고, 대신 휴대폰을 통해 《길림신문》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세월이 흐른 뒤 어린 시절 즐겨 읽던 우리말 신문을 다시 접하게 된 기분은 묘하면서도 깊은 감동으로 다가왔다. 

우리의 지난 삶의 흔적들이 신문 속에 스며들어 그 시절에는 그렇게 살았노라고 《길림신문》이 조용히 이야기해 주는 듯했다. 그동안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나는 두 아들의 엄마가 되였으며 어머니도 할머니로 되였다. 《길림신문》이 우리 가족의 시간과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것 같아 위로가 되였다. 그래서인지 오랜 세월 뒤에 마주한 《길림신문》은 조금도 낯설지 않았다. 늘 당연히 내 곁으로 찾아와야 할 존재인 듯, 익숙하고 반가웠다. 

만화 하나로 우리 가족에게 친근하게 다가와 세상을 쉽게 읽게 해주었던 추억 속의 《길림신문》, 바야흐로 변해가는 이 세상에서 이제는 또 어떤 지면으로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으며 정다운 우리글로 따뜻한 행복을 선물하게 될지 늘 기대된다.


编辑:안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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