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녀
지난해 7월, 북경과 한국에서 살고있는 두 딸이 부모님 결혼 60주년 회혼례를 이채로운 축복연으로 베풀어 많은 사람들의 찬사를 받은적 있다. 나는 금년 아버지 생신은 자녀들이 부담될가봐 조용히 넘어가길 당부했지만 큰딸네가 기어이 우리를 북경에 모셔갔다.
음력 3월13일, 아버지 90세 생신날이 되자 큰딸과 사위는 아버지를 동심으로 돌아가게 하려고 생일케익과 모자, 안경까지 아이들 것으로 마련해 깜짝쇼를 펼쳤다.자식들의 효심에 우리 부부는 눈물까지 찔끔 짤 지경으로 호탕하게 웃었다.

아버지의 90세 생신에 깜짝쇼를 준비한 딸과 사위
어려서부터 책 읽기를 좋아하고 지금도 연변도서관에 다니는 엄마를 위해, 딸은 북경에서 제일 큰 통주의 북경도시도서관을 참관시켜주었다. 웅장하고 화려한 도서관을 둘러보며 감탄했다. “야! 대국이라 도서관도 이렇게 크구나!” 젊은이들이 컴퓨터 앞에서 학습에 열중하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다. 혹시 조선문으로 된 책이 있나 찾아봤는데 없어서 물었더니 직원이 “책제목만 알려주면 찾을 수 있습니다”라고 친절히 대답해주었다. 정말 자주 가고 싶은, 자석처럼 마음을 끄는 곳이였다.

북경시도시도서관에서
5월 10일, 사위가 퇴근하며 꽃묶음을 안겨주었다. “어머니, 명절 축하드립니다.” 나도 딸도 생각지 못한 사위의 ‘예쁜 짓’에 크게 감동했다.

어머니 명절에 딸과 사위로부터 꽃묶음을 선물받고
며칠 후, 내가 연길의 집으로 돌아가려 하자 딸이 말렸다. “퇴직하면 부모님 모시고 남방유람을 가기로 했잖아요?” 내가 부담스럽다고 했더니 딸이 말했다. “부모님 편하게 해드리는 게 자식된 도리예요. 저희가 준비할 테니 걱정말고 편히 따라오세요.” 우리는 딸과 사위의 효심을 흔쾌히 받아들여 남방 유람길에 올랐다.
5월 11일, 해남성 삼아시, 초여름인데 아열대 기후라 벌써 34도나 되여 무더웠다. 공항에 나오니 고급 승용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북경에서 휴대폰으로 미리 다 예약해 놓은 것이였다. “참 좋은 세상이다. 휴대폰이 좋고 AI가 좋구나!” 차창 밖으로 보이는 파란 하늘과 야자수들이 동북에서 온 우리를 환영하는 듯 기분이 참 좋았다.
한 시간쯤 달려 삼아국제호텔에 도착했다. “이렇게 호화로운 호텔에?” 걱정이 앞섰지만 딸이 돈 얘기는 하지 말라며 말렸다. 세 사람이 쓰는 방은 넓고 정갈하고 아늑했고, 베란다에 나가니 푸른 바다가 한눈에 들어와 더욱 좋았다. 먼 길 온 피곤도 모르고 바로 호텔 전용 백사장으로 나갔다. 푸른 물결과 흰 파도가 밀려드는 해변에서 구순을 눈앞에 둔 늙은이답지 않게 어린애처럼 물에 뛰여들고 싶었다.

북경국제화원에서
다음날은 유명한 삼아 남산문화원으로 갔다. 비수기인데도 유람객이 넘쳐났다. 일망무제한 바다가에 108메터나 되는 관음보살상이 우뚝 솟아 있어 가관이였다. 사람들은 그 관음보살의 큰 발톱을 만지며 소원을 빌기 위해 올라간다는 것이였다. 우리도 줄을 섰는데, 70세 이상 로인은 못 올라간다는 규정때문에 막히고 말았다. 딸이 먼 동북에서 왔다고 통사정한 끝에 보증서에 서명하는 조건으로 겨우 올라갈 수 있었다. 4층은 승강기, 또 4층은 계단을 힘겹게 걸어 정상에 올랐다. 도전자의 승리감과 뿌듯함에 가슴이 벅찼다. 나도 관음보살의 발톱을 만지며 소원을 빌었다. “우리 외손녀, 미술대학에 진학하게 해주세요.”
호텔에 돌아와 딸과 함께 수영장으로 갔다. 푸르고 맑은 물을 보니 어릴 적 해란강에서 놀던 기억이 떠올라 무작정 풍덩 뛰여들었다. “엄마, 조심하세요!” 딸의 만류도 소용없었다. 나는 신이 나서 개발헤염을 치다가 그만 깊은 곳에 빠지고 말았다. 숨은 막히고 몸은 뜨는지 가라앉는지 알 수 없었다. 아찔한 순간, “엄마!” 하는 고함과 함께 딸이 내 몸을 잡아 당겼다. 겨우 살아났다. 부끄럽고 민망한 이 사건에서 늙으면 무모한 모험도 과분한 흥분도 말고 조신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삼아국제호텔 백사장에서
삼아의 오지주도 해변은 환상적이였다. 넓고 푸른 바다와 맑은 하늘이 맞닿아 이루는 장관이 아름답고 황홀했다. 신혼려행 온 듯한 젊은이들 속에 우리 같은 로인들은 없었다. 자식 덕분에 90세, 85세 고령으로도 우리 량주가 유람선과 전동관광차를 타고 마음껏 즐겼으니 복 많은 인생이라 자부한다. 게다가 비수기에 운 좋게 맑은 날씨가 계속되여 금상첨화였다.
항주에서는 세계 3대 예술공연 중 하나라는 <송성천년세월> 뮤지컬 관람이 멋졌고 서호에서 유람선을 탄 기쁨도 컸다. 그 감동은 각설하고, 복흥고속렬차를 타고 녕파시에 가서 50년 만에 그립던 지인과 상봉한 이야기를 하려 한다.
16일 오후, 도착 련락을 받은 곽평 언니가 문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언니는 십 년전에 폐암 수술과 대퇴골 골절 수술을 해서 휠체어에 의지하고 있었다. “곽언니!” 반가움과 기쁨에 우리는 한참을 부둥켜안고 말을 잇지 못했다.
“형부 생전에 왔어야 했는데 늦어서 죄송해요.” 3년 전 세상을 뜬 형부 양옥봉님은 항일전쟁, 해방전쟁, 항미원조에 참가한 로혁명가이셨다. 우리는 어떻게 그렇게 깊은 인연을 맺게 되였을가?

녕파에서 꿈에도 그리던 곽언니(가운데)를 만나
곽언니 부부와 남편은 1960년 신강 석하자건설병퇀의학원에서 함께 근무하며 가깝게 지냈다. 내가 1969년도에 연변방송국에서 사업하다가 남편곁에 가 살면서 한집안처럼 가깝게 지냈다. 내가 한어도 잘 모르고 폐결핵에 걸려 힘들어할 때, 곽언니는 친동생처럼 나를 보살폈고 신강에서 태여난 우리집 둘째딸을 거의 키우다싶이 했다. 1977년도에 우리가 연변으로 나온 후에도 자주 신강 특산물을 보내주었고 퇴직 후 녕파에 이사온 후에도 두 번이나 예쁜 옷들을 보내주었다.

1977년 신강을 떠나 연길로 돌아올때 곽언니 가족과 함께 남긴 기념사진
곽언니는 우리가 하루밤만 자고 간다며 많이 서운해하셨다. 우리는 밤늦도록 손을 꼭 잡고 생활은 간고했고 민족은 달랐어도 친자매처럼 오손도손 잘 지내던 50~60년 전의 소중한 추억들을 나누었다.
이번 려행으로 우리 부부는 큰딸 덕분에 북경, 삼아, 항주, 녕파 등지를 두루 돌며 위대한 조국의 아름다운 산천과 문화유적지를 맘껫 구경했고 그립던 오랜 옛친구도 만나보았다. 시야를 넓혔고 좋은 사람들도 만나 일생 여한이 없다.
관광단을 따라다니는 려행은 시간과 장소에 얽매이지만, 자식 따라 하는 효도관광은 걱정 없이 자유와 랑만을 마음껏 즐길 수 있어 참 좋았다.
한국에 사는 둘째딸도 명년엔 부모님을 모셔다 생신을 쇠드리고 멋진 해외유람을 시켜주겠노라고 당부한다.
그래! 이 좋은 세월에 두 딸자식의 효도를 받으며 백세까지 건강하게 살도록 노력해 보련다.
编辑:안상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