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순자
며칠만 지나면 6월이다. 그런데 6월의 문턱을 마주하니 마음이 참 이상하다. 예전같으면 6월1일을 손꼽아 기다리며 벌써부터 설렜을 텐데 올해는 왠지 발걸음이 무겁다. 기다림과 설렘 사이에 자리한 이 마음, 어쩌면 서운함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주고 또 주어도 아깝지 않을 사랑을 듬뿍 주고픈 내 사랑 손주놈, 그 아이가 벌써 열세살에 키 178센치메터이다.내가 고개를 들어야 겨우 눈을 맞출 수 있을 만큼 훌쩍 자라버렸다. 그 큰 키를 보면 가슴이 뭉클하다. 너무 대견하고 서운한 마음이 먼저 든다.예전에는 내 품에 쏙 들어오던 조그만 아기였는데 이제는 내가 쳐다봐야 할 만큼 커버렸다.
13년, 길고도 짧은 그 변화가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쉽다.
며칠 전 현관문 앞에 놓인 손자의 운동화를 보았다. 2~3년 전만 해도 내가 끈을 묶어주던 그 신발이 어느새 내 것보다 훨씬 크다. 그 커다란 신발을 바라보니 갑자기 코끝이 시큰해졌다. 그 작은 발로 내뒤를 쫓아다니며 “할머니,할머니!” 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그 신발을 신고 어디론가 혼자 떠난다.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간다.
요즘 손자는 참 바쁘다 .친구들과 약속도 있고 학원도 가야 하고 가끔은 그냥 방에 틀어박혀 휴대폰을 붙든다. 내가“같이 밥 먹자” 해도 “나중에요”라며 한눈을 판다. 예전 같으면 “할머니, 나랑 놀아요” 하며 팔짱을 끼고 늘어졌을 텐데 그런 모습이 그립다. 좋은 거지, 다 자라가는 거니까... 리성으로는 알면서도 가슴 한편이 텅 빈 것 같다,
며칠 있으면 6월1일이다. 예전 같으면 벌써 선물을 준비하느라 마음이 바빴을 거다. 장난감 가게에도 들르고 문구점에서 예쁜 색연필 세트도 보고 케이크도 예약하고 손자가 선물을 받고 환하게 웃을 얼굴을 생각하면 나도 덩달아 행복해졌다. 그런데 올해는 아직 아무 것도 준비하지 못했다. 뭘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제 중학생인데 장난감은 유치해보이고 게임기는 너무 비싸고 옷은 내가 사면 안 입을 거고 손자는 아마 이제 6월1일이 특별한 날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서운해하는 게 조금 우습다는 생각도 든다. 손자가 자라는 게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서운해하다니... 아이는 자라서 어른이 되는 게 당연한 거고 그 과정에서 변화하는 게 당연한 거다.오히려 내가 변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가? 손자는 앞으로 가는데 나는 예전 자리에 멈춰 서서 손자를 부르고 있는 건 아닐가?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마음이 놓이였다. 손자가 자라는 것은 자연의 리치이고 내가 그 변화를 온전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운해하는 대신 이렇게 자라줘서 고맙다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며칠전 나는 결심했다. 올해 6월1일에는 특별한 선물을 주기로 말이다. 비싼걸 사는 대신 손자가 태여나서 지금까지 자란 모습을 모은 앨범을 만들기로 했다. 처음 뒤집기,첫돌, 유치원 입학식,소학교 첫 시험,그리고 최근에 찍은 사진까지...사진을 정리하면서 내 마음도 차분해졌다. 사진속 손자는 점점 자라고 있었지만 그 안에 담긴 미소는 변함없었다. 그 미소를 보면서 내가 왜 서운해 했는지 조금 부끄러워졌다.
앨범 마지막 장에는 편지를 쓰려고 한다. 나는 초안을 적어 보았다.
“사랑하는 내 손주야, 며칠 있으면 6월1일이란다. 네가 어릴 때는 그날이 제일 기다려지는 날이였는데 이제는 네가 그날을 챙기지 않아도 될 만큼 컸구나, 키도178센치메터나 되고 의젓한 중학생이 된 네가 정말 대견하고 자랑스러워... 가끔은 네가 예전처럼 '할머니,할머니...'하며 달라붙지 않아 서운할 때도 있지만 그건 내가 아직 적응을 못해서 그런거란다. 너의 앨범을 보면서 네가 이렇게 예쁘게 자라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 할머니는 언제나 네 편이란다. 6월의 바람처럼 항상 네 곁에 있을게, 사랑한다...”
편지를 쓰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 서운함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였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사랑은 주고 또 주어도 아깝지 않은 것, 그걸 이 나이에 다시 배운다.
며칠후면 5월의 문턱을 넘어 6월이 온다. 그날이 오면 나는 이 편지를 건넬 것이다. 그리고 말할 것이다. 잘 자라줘서 고맙다고, 주고도 더 주고픈 그 사랑,평생 모자라지 않을 그 마음을 담아, 서운함과 자랑스러움이 교차하는 이 마음, 아마 이것이 성장의 또 다른 이름인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내가 원하는 건 손자의 행복이니까.
나는 손자가 참 대견하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손자의 성장을 지켜볼 수 있음에도 감사하다. 자랑스럽고 가끔은 서운하지만 그것도 다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거겠지...
며칠 후면 6월이다. 손자야, 할머니는 6월의 바람처럼 살며시 네 곁에 있을게, 오래도록...
编辑:안상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