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정림(연길)

요즘 청명절기에 들어서자 지난 해 4월5일 청명절날 우리 력사탐방팀 일행이 ‘열린 공부 현장 학습’의 일환으로 룡정에 있는 장암동을 찾았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장암동은 룡정시에서 동북쪽으로 약 10여리 쯤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장암동은 ‘노루바위골’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경신년 대참안’이 바로 이 곳에서 일어났다.
조용히 내린 봄비가 대지를 차분히 적시는 아침나절, 연길동북아호텔 앞에 모여 다섯대의 자가용차에 나누어 탄 우리 일행 20여명은 력사의 현장인 장암동으로 향했다. 연길에서 차로 30분 쯤 이동하여 장암동에 이르니 골안에서 불어오는 한줄기 바람이 4월의 찬비를 흩날리며 스산하게 옷깃을 적셨고 작은 언덕 만큼한 묘지가 눈앞에 나타났다.
가이드로부터 이 묘지가 품고 있는 피어린 사연을 듣고 나서 우리는 묘지 앞에 둘러서서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며 말없이 묵념을 올렸다. 흐린 하늘 아래 덩그러니 놓여있는 묘지는 비에 젖어 어두운 빛을 내고 있었다. 력사탐방길에 나선 우리들의 얼굴을 말없이 적시며 발 아래로 스며든 비물은 마치도 흘러간 시간을 담아내듯이 조용히 그 곳에 고여있었다.
1920년10월 30일, 봉오동과 청산리에서 엄청난 타격을 입은 일제는 침략군의 야수적 본색을 드러내며 무고한 민중들에게 피어린 보복을 진행하였다. 날이 밝자마자 무장한 일본 보병들은 마을을 빈틈없이 포위하고 낟가리에 불을 질렀다. 그리고는 전체 촌민들을 밖으로 나오라고 호령하였다. 촌민들이 밖으로 나오자 로소를 가리지 않고 눈에 띄면 마구 사격하였다. 아직 숨이 채 떨어지지 않은 부상자도 관계치 않고 총에 맞아 쓰러진 사람이면 모두 마른 짚을 덮어놓고 식별할수 없을 정도로 불태웠다. 뿐만 아니라 부녀자들을 집결해놓고 마을 청년남자들이 살해당하는것을 강제적으로 목격하게 하였다. 가옥은 전부 불타 마을은 연기로 뒤덮였는데 그 연기는 멀리 떨어진 룡정촌에서도 보였다고 한다.
일본군의 만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튿날 또 다시 마을로 쳐들어온 일본 보병들은 유가족을 강요하여 무덤을 파헤치게 한 후 33구의 시체들을 한곳에 모아놓고 그 우에 석유를 뿌린 후 불을 질렀다. 일제는 다시 불태워져 재가 된 유골을 모두 한구덩이에 쓸어 넣었다. 천고에 용서 못할 처참한 이중학살이였다.
일본군이 물러간 뒤 마을사람들은 다시 구덩이 주위에 모여들었지만 남아있는 유골이 대체 누구의 것인지 분간할 수 없어 그 유골들을 한데 모아서 합장을 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장암동에는 하늘에 치솟는 분노가 쌓인 커다란 봉분이 생기게 되였다.
온 동네의 남정들은 이렇게 하루 아침에 한 무더기 재가 되였으며 아버지와 남편과 아들을 잃은 녀인들이 무덤 앞에서 땅을 치며 통곡하였다.
이윽고 우리는 봉분을 뒤로 하고 산길을 내려왔다. 고개를 돌아 다시 바라본 무덤은 그칠 줄 모르는 찬비 속에 흐릿하게 젖어 들었다. 이른봄의 찬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고 우리들의 발걸음은 한없이 무거웠다.
“이 비가 그 날의 아픔을 씻어내렸으면…”
일행중 누군가의 속삭임이 나지막하게 들려왔다. 우리는 그 길로 한참을 달려 룡정시가지에 들어서서 제창병원 옛터를 둘러보았다. 백년도 넘는 력사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병원 옛터는 멀리에서도 그 장엄함을 엿볼 수가 있었다.
제창병원은 1916년에 시공을 시작하여 1918년에 이르러 30개의 병상을 갖춘 현대식 병원으로 거듭났다. 그리고 개원후 2년 만에 이 병원은 년간 1,200여명의 환자를 진료할 정도의 규모를 갖추었다. 당시 카나다인 마틴이 이 병원에서 원장을 맡고 있었는데 그는 장암동참안의 기록자이기도 했다. 마틴원장은 장암동참안을 이렇게 기록하였다.
“…마을에서 붙은 불은 36시간이 지났는 데도 계속 타고 있었고 사람이 타는 냄새가 나고 집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병원 옛터를 돌아보고 나서 우리는 귀로에 올랐다. 차창 밖으로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봄비는 여전히 차가웠지만 그 속에는 묵묵히 대지를 적시는 다소곳한 인내도 섞여 있었다.
돌아서는 길, 나는 문득 생각했다. 이 비가 그날의 아픔을 씻어내지는 못할지라도 우리의 기억 속에 그 아픔을 새기고 있다는 것을. 력사는 단지 지나간 시간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마주하느냐에 따라 현재와 미래를 움직이는 힘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번 탐방은 단순한 발걸음의 기록이 아니라 잊혀져 가는 목소리들에 귀 기울이는 시간이였다. 그들이 말없이 남긴 질문들에 답하려면 우리는 력사의 땅우를 더 자주, 더 진지하게 걸어야 할 것이다.
비는 개인 듯했다. 흐린 하늘 너머로 조금씩 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编辑:안상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