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순자(청도)

청도의 봄은 꽃이 먼저 알려 준다.
립춘이 돌아왔다는 소식은 공원 길가에 핀 노란 영춘화가 전해 주었다. 겨우내 앙상하던 가시 넝쿨 사이로 작고 여린 노란 꽃망울이 소복이 터져 나와 봄소식에 가장 먼저 웃음 짓고 있었다. 바람에 살짝 흔들리는 노란 꽃잎들이 마치 손짓하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 앞에 멈춰 섰다.
문득 욕심이 났다. 사람도 이렇게 다시 소생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방사성 약물로 다 타버린 내 갑상선도 이 영춘화처럼 새 봄을 맞아 다시 살아날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을 텐데.
15년 전 방사성약물 치료를 받으며 내 목 안쪽 깊은 곳의 장기는 모두 타버렸다. 의사는 말했다. 갑상선은 이미 없고 주변 조직도 기능을 잃었으니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고. 그 말을 들었을 때 내 몸의 일부가 영원히 사라졌다는 허전함이 가슴 한구석에 자리 잡았다. 봄이 오면 저렇게 다시 피어나는 것들이 있는데 왜 내 몸은 그러지 못할까.
그런 생각에 잠겨 나는 영춘화 앞에서 가만히 숨을 고르며 서 있었다. 노란 꽃잎에서 흘러나오는 생기를 조금이라도 받아 내려는 듯 간절한 마음으로 꽃을 바라보았다. 내 안에 타버린 그 자리에 저 노란 꽃잎 한 조각이라도 심어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였다.
그러다 문득 내가 너무 욕심을 부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봄꽃은 일 년 만에 다시 피여난다. 겨울을 견디고 다시 웃음을 터뜨리는 저 영춘화는 짧은 주기로 소멸과 재생을 반복한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다르다. 거의 백 년 가까이를 산다. 한 번 상처 입은 몸으로도 오랜 세월을 버티며 살아가는 존재이다. 나는 지금 육십대 중반이다. 다 타버린 갑상선으로도 벌써 십오 년을 멀쩡하게 살아오지 않았는가.
되돌아보니 감사한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카텐 사이로 스며드는 해살이 반갑고, 부엌을 바라보면 넘쳐나는 먹거리가 랭장고에 줄 서 있어 하루가 시작되는 기쁨을 느낀다. 딸이 보내온 사진 속에서 열세 살밖에 안 되는 손자가 177센치 넘게 훌쩍 성장한 모습을 보며 가슴이 뭉클해진다. 지인들과 나누는 전화, 시장에서 만난 이웃의 인사, 동네 슈퍼 아주머니의 다정한 한마디. 이런 일상의 소중함을 세월이 깊어감에 더 따뜻하게 느낀다.
갑상선은 없어졌지만 나는 여전히 살아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아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가끔 병원에 정기검진을 받으러 가면 대기실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얼굴에 나의 지난날이 겹쳐 보인다. 두려움과 불안으로 가득 찬 표정, 혹은 이미 많은 것을 견뎌낸 듯 평온한 표정. 그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응원의 마음이 든다. 우리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몸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음을 안다.
영춘화 앞에 우두커니 서서 이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아마도 내 모습이 조금 멍청해 보였을 것이다. 나는 입가에 쓴웃음을 지으며 그 자리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노란 희망 하나가 남았다. 내가 물러서는 동안에도 영춘화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봄을 피우고 있을 테니까. 그리고 어쩌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노란 기운이 내 마음 한구석에 조금은 스며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영춘화를 뒤로하고 느린 걸음으로 앞을 바라보며 걸었다. 노란 꽃잎이 남긴 여운이 가슴 한편에 머물렀다. 내 욕심이였음을 알면서도 그 노란 빛이 주는 따스함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호수가에 다다르니 늘어진 수양버들이 보였다. 겨우내 앙상하던 가지에 파릇파릇한 새싹이 움트기 시작했다. 바람에 하느작거리는 가는 가지들이 마치 손짓하는 듯했다. 나는 다가가 손을 뻗어 그 싹을 만져 보았다. 갓 돋아난 푸른 새싹은 보기보다 부드러웠고 촉촉한 생기가 손끝으로 전해졌다.
문득 생각했다. 너도 겨울이라는 긴 터널을 지나 이렇게 아기싹을 틔웠구나. 긴 겨울 동안 바람과 추위를 견디며 저 보드라운 새싹을 준비해왔을 너는 얼마나 많은 날을 기다렸을까. 영춘화가 화려한 노란 꽃으로 봄을 알렸다면 수양버들은 보다 조용하고 부드러운 방식으로 봄을 맞이하고 있었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각자의 시간을 살아가는 것이다.
영춘화 앞에서 품었던 욕심에 대한 부끄러움이 다시 스쳤다. 하지만 그 부끄러움과 함께 수양버들 앞에서 느끼는 미안함이 뒤섞여 엉켰다. 그래도 이상했다. 그 감정들이 엉키는 동안에도 영춘화에서 마주한 노란 희망은 좀처럼 가시지 않고 여전히 가슴 한구석에 머물러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바람이 살랑살랑 뺨을 스쳤다. 아직은 조금 쌀쌀한 바람이었지만 그 속에 봄내음이 섞여 있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다시 한 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한가롭게 떠 있었다.
타버린 갑상선, 그 빈자리. 그것이 나의 상처이자 나의 추억이다. 그 빈자리로 인해 나는 더 깊이 숨 쉬는 법을 배웠는지도 모른다. 잃어버린 것들에 집착하기보다 지금 여기에 있는 것들을 바라보는 눈을 가지게 되었다.
영춘화의 노란 꽃잎과 수양버들의 연두빛 새싹,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감싸안은 봄바람, 그것들이 내게 말해 주었다. 새봄은 기다리는 자에게 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살아 숨 쉬는 모든 이에게 찾아온다고. 그리고 그 봄은 우리가 희망을 품는 바로 그 순간, 이미 시작되고 있다고.
저 영춘화는 명년에도 또 필 것이다. 그때면 나는 예순다섯, 아니 예순여섯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때도 나는 이 공원 길을 걸으며 저 노란 꽃을 다시 만날 것이다. 그때는 욕심 없이 그저 반갑게 웃으며 인사할 수 있을 것 같다.
"어, 너 또 왔구나. 나도 또 왔어. 또 만나서 반갑다."
그저 이렇게 살아서 봄을 또 맞이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가장 큰 희망이고 축복임을 나는 이제 안다. 노란 영춘화는 내게 말해 주었다. 희망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순간, 내가 살아 숨 쉬는 이 자리에 있다고. 그리고 그 희망은 때로는 욕심일지라도 결국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된다고.
나는 오늘도 그 노란 희망을 가슴에 품고 봄길을 걷는다.
编辑:안상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