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3일, ‘증언과 재탄생: 위만주국 중앙은행총행 옛터 특별전’이 장춘시 위만주국 중앙은행총행 옛터인 현재의 중국공상은행 장춘 인민광장 지행에서 막을 올렸다.
근 100년전의 문서, 사진, 실물 등 소중한 력사 자료들이 시공간을 넘어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는데 366평방메터에 달하는 전시홀은 식민 도구에서 인민 금융기관으로의 변모 려정을 체계적으로 전시했다.
위만주국 중앙은행총행 옛터에 들어서면 웅장하고 정교하게 건설된 공간이 두 부분으로 나뉘여있다. 한쪽은 현대화 은행의 일상적인 운영 모습인데 컴퓨터, 자동화기기 등이 갖춰져있고 찾아오는 고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은행직원들은 또 효률적인 써비스를 제공하면서 오늘날 경제 사회 발전의 활력과 편의를 보여주고 있었다. 다른 한쪽은 전시 현장인데 옛날 지페, 옛 신문, 력사적 사진들이 전시되여 있었고 길림 금융업의 파란만장한 세월을 기록하고있었다.
소개에 따르면 이번 전시는 ‘증언과 재탄생’을 핵심으로 하고 네개 단원으로 나누어 풍부한 실물과 문헌 자료를 통해 관람객들로 하여금 그 복잡하고도 깊이 있는 력사를 느낄 수 있게 했다.
현장에 전시된 민국시기 사첩초판(私帖钞版, 민간 금융기관에서 발행한 지페를 인쇄하는 판), 위만주국 중앙은행이 발행한 화페, 위만주국 중앙은행 구좌 등은 모두 당시 동북지역 금융 교류의 생생한 증거물이였다. 상세한 사료와 풍부한 전시품은 강력한 설복력을 지니고 있었으며 개막 당일에 이미 많은 시민들이 찾아와 관람했다.
올해 78세인 주문방 할머니도 개막날에 전시장을 찾았다. 그는 1970년 장춘에 와서 일을 시작할때 처음 이 건물을 보는 순간 그 웅장함과 신비로운 기운에 매료되였다고 말했다. 더불어 오늘 전시를 통해 이 건물 배후에 숨겨진 이야기를 확실히 알게 되였다고 덧붙였다. 할머니는“‘지난일을 잊지 않아야 후날의 스승이 된다’는 말처럼 력사를 기억하고 후세들에게 경종을 울려주어야 한다.”고 소감을 전했다.
중공 장춘시위 당사연구실 부주임 양홍유는 전시의 내용 구성과 창작사업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는“이 전시를 통해 사람들로 하여금 선구자들이 민족의 독립과 국가의 자유를 위해 치른 큰 희생을 기억하게 하고 새 중국 창립후 장춘 인민들이 분발하여 아름다운 고향을 건설한 위대한 성취를 느끼게 하며 마음을 모아 힘차게 나아가면서 계속하여 투쟁하는 정신적 힘을 얻게 하고 싶었다.” 고 강조했다.
전시구역중 특히 관람객들의 발길을 잡은 두 곳이 있었다.
하나는 이번 전시에 등장한 한 조선족 영렬의 초상화였다. 그는 장춘 해방 전투에서 ‘조선퇀’이라고 불리는 부대를 지휘하여 공을 세운 공산당원 박락권(朴洛权)동지였다. 박락권은 길림성 왕청현 사람이다. 1936년 중국공산당에 가입했고 1938년 9월, 동북항일련군 제5군 2사 5퇀 2련 련장을 력임했다. 항일전쟁 승리후, 박락권은 연변경비려 창설에 참여하였으며 제1퇀 퇀장이 되였다. 이 련대는 조선족 전사들로 구성되였으며 연변 등 곳에서의 토비숙청 전투에서 용맹을 떨쳐 인민들로부터 ‘용맹한 조선퇀’이라 불렸다. 1946년 3월 14일, 동만군구의 장춘 공격부대를 따라 연변경비려 1퇀은 장춘으로 향해 진군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당시 박락권은 결혼한지 불과 3개월밖에 되지 않았고 빈번한 전투로 안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장춘 해방의 새로운 임무를 받았을 때 그는 다시금 가족과 리별하고 전선으로 향했다. 그러나 바로 그 작전중 위만주국 중앙은행에 잔존한 적대 세력을 포위 섬멸하는 전투에서 중상을 입고 희생되였다. 29세의 나이로 희생된 박락권은 그 짧고 장렬한 일생을 혁명사업에 바쳤고 나라와 인민에게 바쳤다.
다른 하나는 1950년 2월 28일, 모주석이 동북은행 장춘지행을 친히 찾아 시찰한 후 지방은행 책임자의 보고를 듣고 이 위만주국시기 건축물에 대해 “모두 중국 로동인민의 피와 땀으로 건립된 것이고 중국 인민의 로동 성과이다”라고 지시했다. 많은 관람객들은 진한 적색 바탕의 커다란 글씨로 쓴 전시판 앞에 오래동안 멈춰 서 그 깊은 력사적 평가를 읽으며 사색에 잠겼다.
위만주국 중앙은행총행 옛터는 동북 대지가 겪었던 식민 략탈, 불굴의 항쟁으로 재탄생을 얻은 파란만장한 격변을 기록하고 있다. 이곳은 일제침략자들의 금융도구에서 새시대의 인민 금융기관으로 변모되였으며 식민 폭행의 살아있는 증거이자 동시에 민족부흥의 증인이기도 하다.
/주동 류향휘 기자
编辑:안상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