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병군
며칠 전, 연길에서 보낸 택배 한 상자가 도착했다. 친구가 보내준 조선족 전통음식이 가득 담겨 있었다. 전화할 적마다 나는 빠짐없이 친구에게 부러움을 표시하군 한다. 다른 건 몰라도 연길에서 조선족으로 산다는 것 자체가 복받은 일이라고 말이다. 얼마나 많은 입맛 돋구는 음식들이 연길에 있는가? 친구는 그게 뭐 대수냐는 투로 심드렁하게 말한다.
내가 사는 도시는 조선족음식점이 드물다. 게다가 교외라 더더욱 찾아보기 어렵다. 안해는 한족이라 우리 음식에 익숙치 않다. 다행히 나는 가리는 음식이 없어 안해가 꼭 집밥을 지어야 한다는 부담이 없다.
예전에 우리 집은 거의 매일 밥상에 쌀밥을 올렸지만, 안해의 집은 일년 내내 쌀밥을 먹는 회수가 열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다. 대신 면이나 만두로 끼니를 때운다. 안해가 여러 끼를 련달아 면으로만 먹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기도 했지만, 다행히 나는 무엇이든 잘 먹는 터라 식사 문제로 불편했던 적은 별로 없다.
그래도 조선족인지라 가끔은 매운 음식이 몹시 당길 때가 있다. 온통 볶음료리만 계속되다 보면 시원한 무침이나 랭채가 절실히 생각난다. 친구는 내가 그런 얘기를 자주 해서인지 가끔은 랭면, 순대, 떡볶이, 명태, 육개장, 찰떡, 김치, 깍두기 등 조선족전통음식들을 이것저것 사서 포장해 보내준다. 물론 인터넷으로도 살 수 있지만, 친구가 보내준 음식에는 특별한 맛이 있다. 택배 상자를 뜯을 때마다 나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기분이 좋아진다.
그날도 나는 소힘줄반찬 한 봉지를 꺼내 밥상에 올려놓고 유모차를 끌며 왔다 갔다 하다가 참지 못하고 몇 개를 집어먹었다. 그 모습을 본 안해가 혀를 차며 웃었다. "그렇게 먹고 싶었어요? 그 정도예요?"
안해의 말처럼 동네의 슈퍼마트에서도 소힘줄반찬을 살 수 있다. 하지만 그 맛은 연길에서 만든 것과는 달랐다. 기름 냄새가 심하고 무엇보다 맵지 않았다. 나는 손에 묻은 양념을 감빨며 문뜩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소학교에 다닐 적, 점심 도시락을 싸들고 갈 때면 가끔 밥만 가져가군 했다. 학교 가는 길에 매점에 들러 소힘줄반찬 한 봉지를 사면 그게 반찬이였다. 오십 전짜리 조그만 봉지였지만 그 매운 맛에 호호 입김 불며 밥 한 도시락을 뚝딱 비울 수있었다. 가끔 매점 아줌마가 실수로 한 봉지를 샀는데 부주의로 두 봉지를 겹쳐 주는 날이면, 그날은 정말 횡재한 기분이였다. 얇은 비닐봉지라 두 개가 겹쳐도 잘 보이지 않았으니 그런 재수좋은 날도 가끔은 있었다. 눈 오는 날, 매점에 들러 오십전을 내밀고 소힘줄반찬을 사 먹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다. 친구가 보내준 그 소 힘줄반찬을 먹을 때면, 겨울날 매점 앞에 모여 앉아 소힘줄반찬을 나눠 먹던 아이들의 웃음소리까지 귀전에 들리는 듯하다.
소힘줄반찬을 손으로 집어먹는 내 모습을 보며 문득 할머니 이야기가 떠올랐다. 비슷한 듯 다른, 역시 소와 관련된 일화였다. 할머니는 내가 태여나기 일 년전에 돌아가셔서 나는 사진으로만 뵈였다. 아버지 말씀으로는 덩치가 우람하시고 성격도 호방하셨다고 한다. 열 자매를 키운 할머니가 그냥 고만고만한 성격이었을리 없으리라. 그 시절 열식구를 먹여 살리느라 살림이 무척 어려웠다고 한다. 할머니는 유난히 소천엽을 좋아하셨지만,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마음대로 사 먹을 수는 없었던가 보다.
어느 겨울, 설을 앞둔 장날이였다. 할머니는 큰마음 먹고 소천엽을 한 줌 사시였다고 한다. 장에서 집까지는 소수레로 거의 십리 길이였다. 추운 겨울날, 소수레에 몸을 싣고 돌아오는데 천엽 생각이 간절하셨나 보다. 할머니는 길 한복판에서 수레를 멈추게 하셨다. 그리고 길가 도랑의 얼음을 깨고 그 물에 소천엽을 씻어 양념도 없이 그 자리에서 꾸역꾸역 찢어 잡수셨다고 한다.
집에 와서 초장에 찍어 먹을 것을 왜 그토록 급하게 드셨을까. 나는 아버지에게서 그 얘기를 들은 후로 오래도록 그 장면을 떠올리군 했다. 한 번도 뵌 적 없는 할머니지만, 눈 내리는 겨울날 길가에 소수레를 세우고 도랑물에 천엽을 씻어 드시는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그만큼 음식이 귀했던 시절이라 더욱 가슴에 남는 이야기이다. 지나간 세월의 이야기지만 생각할 때마다 많은 감회가 든다.
음식이란 참 별것 아닌 듯하면서도, 우리를 그 시절로 데려가는 힘이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하는 식사만큼 우리 삶에 밀착된 것도 드물다. 소힘줄반찬 한 가닥이 불러낸 어린 시절의 눈 오던 겨울이야기와 소천엽 한 줌이 되살려낸 할머니의 간절했던 겨울날의 이야기... 밥상 앞에서 우리는 그날의 기쁨과 슬픔을 나누고, 지난날의 추억을 떠올리며 때로는 누군가의 간절한 마음을 헤아리기도 한다.
먹고 또 먹어도 새로운 오늘의 식사처럼, 음식은 그렇게 우리 삶 속에 오래도록 남아 울린다. 어쩌면 우리는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음식과 함께했던 시간을 먹으면서 살아가는 것은 아닐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리병군 프로필
1987년 길림성 통화시에서 출생
문학 박사
산동사범대학교 외국어학원에서 근무
编辑:안상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