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빈
어느날, 텔레비죤에서 해양수상대 대원들이 얼음 덮힌 망망한 대해에서 북극곰을 구하는 장면을 보노라니 저도 모르게 장백산맥 심산속에서 어미 잃은 새끼노루를 구해주었던 일이 떠올랐다.
탐사대에 있을 때 일이였다. 그해 여름은 유달리 더웠다. 우리 탐사대원 5명은 동광석 표본을 채취하러 전날에 파놓은 물리탐사홈으로 갔다. 그런데 어디선가 아기 울음소리같은 소리가 발목을 잡았다. 이 깊은 심산에 웬 아기울음소리람? 다들 긴장하여 걸음을 멈춘채 주위를 살폈다. 울음소리는 우리가 파놓은 물리탐사홈에서 들려왔다. 한달음에 다가가보니 홈에 새끼노루가 빠져있었다. 홈은 너비 1.5메터, 길이 3메터, 깊이 1.5메터였다. 어미노루도 빠지면 나올수 없는데 갓 태여난 새끼노루야 더 말해 무엇하랴. 코등이 벗겨지고 무릎살까지 벗겨져 피가 흐르고있었다. 기진맥진하여 사람이 가까이 가도 피할념도 못했다. 간간히 앓음 소리를 흐느낌처럼 내지르군 하였다. 거의 죽기 직전이였다.

문장의 리해를 돕기 위해 ai기술을 리용해 만든 이미지임-편집자 주
한 대원이 물을 먹이려 했지만 종시 입을 열지 않았다. 두려움 탓인지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우리는 새끼노루를 안심시키기 위하여 끊임없이 "괜찮아, 괜찮아, 우리가 널 살려주려고 그러는거야" 하고 부드럽게 말해주었다. 대원2명이 홈에 들어가서 새끼노루를 우로 올려보내고 우에서 안전하게 받았다. 일행중의 한 사람이 자기의 작업복을 벗어서 새끼노루를 감싼 다음 지질배낭에 넣고 잔등에 멨다. 돌아올 때 보니 새끼노루는 배낭안에서 쌕쌕 숨을 쉬면서 자고있었다. 숙영지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따뜻한 물에 설탕을 풀어서 새끼노루에게 먹였다. 배가 고팠던지 아니면 경계가 풀어진 것인지 설탕물을 홀짝홀짝 들이켰다.
당시 탐사대원들에게는 한달에 일인당 두근의 설탕이 배급되였다. 대원들은 평소에 아껴먹던 설탕을 아낌없이 노루한테 양보하였다. 처음에는 설탕물만 먹이다가 며칠 지나서는 밀가루에 설탕을 넣어 암죽을 쑤어서 먹였다. 우리는 당번을 짜가지고 번갈아가면서 새끼노루를 보살폈다. 그랬더니 새끼노루는 금방 우리들과 친해졌다.
우리는 새끼노루에게 이름을 지어주었다. 사랑할 애( 爱 )자에 노루장( 獐 )자를 붙혀 '애장'이라고 불렀다. 노루가 자신의 이름을 인지할수 있게 우리는 먹이를 줄 때나 놀아줄 때나 시시때때로 애장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차츰 새끼노루는 자신의 이름을 인지하는듯 애장이라 부르면 곧바로 뛰여왔다.
새끼노루는 밤에는 천막안에서 대원들과 함께 자고 밥 먹을 때도 대원들과 같이 먹고 낮에는 일하는 장소로 강아지처럼 졸졸 따라다녔다. 새끼노루가 힘들어하면 우리는 번갈아 가면서 강아지처럼 안고 다녔다. 산길이 가파로운데다 날씨까지 더워서 혼자 걸어도 숨이 차서 씩씩거렸지만 우리는 새끼노루를 천막에 홀로 두면 스트레스를 받을가봐 아무리 힘들어도 현장으로 데리고 다녔다.
그러다보니 새끼노루는 하루종일 우리들의 뒤만 졸졸 따라다니면서 한시도 우리곁을 떠나지 않았다. 남자들만 있는 탐사대의 막사에서 새끼노루는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었고 웃음과 행복을 주었다.
한달가량 지나자 새끼노루는 몰라보게 자랐다. 줄자로 재여보니 몸길이는 90센치였고 뒤다리 길이는 40센치였다. 저울이 없어서 무게를 달아볼 수는 없었지만 어림짐작으로 열댓근은 잘 될것 같았다. 처음 만났을 때는 배낭에 쏙 들어갈만큼 작았는데 어느새 훌쩍 커버린 새끼노루를 보고 우리는 감개무량했다. 이제는 애장이가 없으면 못견딜 것 같았다. 어디 갔다가 돌아오면 우리들은 애장이부터 찾았다.
그러던 어느날, 탐사본부로 부터 연변홍태평동광탐사장에서 연변천수동 철광탐사장으로 자리를 옮기라는 지령을 받았다. 애장이를 데리고 갈 것인가, 아니면 두고 갈 것인가 하는 문제 때문에 우리는 고민하였다. 일부 대원들은 애장이와 헤여지기 아쉬워서 데리고 가자고 했지만 지도부에서 동의하지 않았다. 의논끝에 우리는 애장이를 자연으로 돌려보내기로 결정하였다.
그런데 어려서부터 사람들과 함께 지냈던 새끼노루가 사나운 짐승들이 우글거리는 산속에서 어떻게 홀로 살지 걱정이 되였다. 우리는 우선 애장이가 사람들과 살던 습관을 버리고 자연에 적응하도록 집중훈련을 시키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리하여 밤이면 천막안에서 자던 노루를 천막밖에서 자게 했고 암죽을 끊고 풀먹는 습관을 익히게 했다. 싸리나무순을 뜯어다 먹였고 가둑나무 잎사귀를 따다가 먹였다. 처음에는 냄새만 맡아볼뿐 잘 먹지 않았다. 갑자기 이렇게 혹독하게 대하는 리유를 알수 없었던 애장은 우리들의 뒤만 쫓아다니면서 배고프다고 울어댔다. 하지만 우리는 그냥 못본척 하였다. 그랬더니 배가 고팠던지 하루만에 스스로 풀을 먹기 시작했다. 새끼노루는 결국 자연에서 풀을 먹는 습관에 금방 익숙해졌다.
드디여 헤여질 때가 되였다. 그날 우리 다섯 대원들은 새끼노루를 발견했던 탐사홈으로 새끼노루를 데리고 갔다. 그 곳에서 우리는 저마다 노루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마지막 작별인사를 했다.
"애장아, 여기가 바로 네가 우리와 만났던 곳이야. 그리고 네가 너의 엄마와 헤여졌던 곳일 수도 있지. 이곳에서 부디 다시 너의 엄마를 만나서 당당한 노루로 잘 살아가기 바란다. 너는 사람이 아니라 노루거든."
애장은 우리와 헤여지기 아쉬운지 한사코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뱅뱅 맴돌았다. 우리는 억지로 애장이를 숲속으로 떠밀었다. 그렇게 애장이는 서서히 산속으로 사라졌다. 우리는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소리 높이 웨쳤다.
"잘가라! 새끼노루야! 잘 살아라! 애장아! "
새끼노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우리는 손을 흔들었다. 눈물이 솟아남을 어쩔수 없었다. 거친 사내들이 울었다면 누가 곧이 듣겠는가. 사랑하는 아기를 산속에 홀로 놓고 떠난다고 생각해보라. 가슴이 미여지지 않겠는가. 정말 그런 심정이였다. 가슴이 아프고 목이 메였다.
어언 50여년의 긴 세월이 지났지만 새끼노루를 산에 돌려줄 때의 정경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먹먹하고 짠하고 아프다.

홍성빈 프로필
1952년 출생
길림성 야금지질탐사공사 605대 탐사대 대원
연길인민방송국 기자, 주임 력임.
전임 연길시조선족장기협회 회장.
전임 연길시중국조선족시조협회 회장.
编辑:안상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