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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이야기15] 병실에서 맺은 인연

안상근      발표시간: 2026-04-06 16:46       출처: 길림신문 选择字号【

◎ 리명자

 나의 발목에는 앞뒤로 한뼘씩 되는 큰 수술자리가 있다. 이 상처자국을 볼때면 나는 4년전 병원에서 있었던 고마운 사람 은주를 떠올리게 되면서 그때의 온기와 감정을 다시한번 회억해본다. 

 그날은 일요일이였다. 한달에 두번씩 시조공부하러 다녔는데 황혼에 시작한 소중한 배움의 기회여서 공부하러 가는 날은 그렇게 설레고 기쁘지 않을수가 없었다. 

세시간의 열띤 공부시간이 끝나고 모두들 아쉬운 마음으로 헤여져 집에 갈 준비를 하였다. 

나도 책을 정돈하여 가방애 넣고 일이서서 서너 발자국 걸었는데 갑자기 발목이 삐끗하더니 그 자리에 폴싹 주저앉고 말았다. 처음엔 그저 발목이 어긋났나 싶어서 옆에 학우님들 하고 만져달라고 했는데 그게 아니였다. 부랴부랴 회장님이 나를 차에 싣고 병원으로 달려가 사진찍어 봤는데 발목뼈 여러 곳이 부러 졌단다. 세상에 어쩜 이럴수가.... 

복잡한 입원수속을 겨우 끝마치고 9시가 넘어서야 입원실에 들어섰다. 

골과 4층 7호실은 조금 비좁은데 세명의 환자에 세명의 간병인이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밤새도록 오는 통증과 불안감에 한시도 눈을 붙일수가 없었다. 옆 침대 환자들의 신음소리에 거기다 간병인들의 코고는 소리까지... 비좁은 공간에서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함께 생활한다는게 너무 낯설고 적응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라도 빨리 적응하여 적극적으로 치료에 배합해야 했다. 수술은 붓기가 너무 심하여 인차 할수 없고 나흘뒤로 미루었다. 아프고 지루한 하루하루가 흘러가고 있었다. 나의 침대 왼쪽엔 나보다 세살 어리다는 녀성환자가 무릎 관절 수술을 했다는데 염증이 생겨서 다시 수술하려고 입원한지 벌써 3주나 되였다고 했다. 이름처럼 예쁘고 착한 딸 은주가 엄마 간병을 맡아하고 있었다. 그때 은주는 결혼식을 앞둔 예쁜 아가씨였다. 나는 언니가 간병을 맡아서 하고 있었다. 

처음엔 그렇게 견디기 힘들던 병원 생활도 차츰 적응이 돼가고 있었다. 모두다 아픈 사람들이다 보니 서로 동정하며 정이 오가고 인차 가깝게 지내게 되였다. 나는 입원한지 닷새만에 다섯시간이나 되는 긴 수술을 마치고 병실로 돌아와 통증과 싸워가고 있었다. 언니 역시 한시도 자리를 떠나지 않고 내 옆에 딱 붙어 살뜰히 간호해 주었다. 

그런데 원래 신체가 허약한 언니가 너무 힘들었던가 보다. 3일째 되던 날, 언니는 갑자기 혈압이 오르며 어지럽고 메스꺼워 더는 내 병간호를 돌볼 수없게 되였다. 언니가 병원을 떠나니 졸지에 나는 '어미잃은 새끼새 신세'가 되였다. 코로나 전염병 류행시기라 함부로 병원에 들어올 수없고 사람을 바꾸는 것도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였다. 남편은 지병이 있어 날 돌볼수 있는 상황이 못되고 바쁜대로 간병인을 불러서 간호를 맡겼더니 그 역시 단 하루만에 급한 일이 생겨 또 계속할수 없는 상황이 되였다. 난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수 없는 처지라 어찌할바를 몰라 막막하기만 하였다. 

그런데 그 와중에 설중송탄격으로 은주가 내 병간호를 돕겠다고 나섰다. 제 엄마 병시중만 들자 해도 바쁠텐데 생면부지인 옆침대 환자까지 맡아 봐 주겠다니 얼마나 고맙고 감사하던지 눈물이 나면서 목이 꽉 막혔다. 우린 모두 다리를 못쓰니 생활을 자립할수가 없었다. 제일 큰 일이 대소변 처리하는 일인데 처녀의 몸으로 엄마 한사람의 대소변 받아내고 씻기고 하는 것도 힘들텐데 나까지 돌봐줘야 하니 얼마나 힘들고 부담스러웠을가? 

병간호를 도와준 고마운 은주

그래도 별다른 방법이 없으니 난 렴치불구 신세지기로 큰 마음 먹었다. 그런데 난 또 한자세로 오래 누워있었더니 엉덩이가 벌겋게 부어나며 욕창이 생기려 하였다. 하여 두시간에 한번씩 약을 발라주고 통풍시켜 줘야 했다. 은주는 자다가도 시간 맞춰 일어나선 약을 뿌려주고 덧나지 않은지 세심히 관찰해 보면서 그 고운 손으로 골고루 약을 발라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 손길이 얼마나 부드럽고 따뜻하던지... 분명 냄새 나고 더러웠을텐데 말이다. 미안하면서도 가슴이 따뜻해지고 의지가 되였다. 

은주는 아침 5시부터 일어나서 부지런히 뛰여 다녔다. 두사람의 대소변 시중에 씻겨주고, 밥 타다 주고, 또 검사 받으러 다니고, 가족이 싸인해야 할 일, 또 하루에 외부에서 보내오는 물건들 받아오는 등 할일이 많았다. 하루종일 쉴새없이 병원안에서 맴돌아 치면서도 은주는 짜증 한번 안내고 웃는 얼굴로 친절하게 "이모, 이모"하고 나를 위안하면서 시중을 들어 주었다. 자식이면 이보다 더할가 싶었다. 이렇게 우리는 병실에서의 인연을 계기로 점점 가까워지면서 가족처럼 보내게 되였다. 

더우기 그때 환자 한분이 퇴원하고 병실엔 우리 두집 뿐이니 진짜 가족같이 생활하며 지냈다. 우리 조카들도 고생하는 은주를 위해 맛있는 도시락을 해오고 간식도 갖다주면서 고마운 은주한테 사의를 표하느라 애썼다. 

그렇게 일주일 동안 은주의 극진한 호리를 받으며 큰 불편없이 지내다 나는 퇴원하게 되였다.

나는 다리를 다쳐 큰 고통을 겪었지만 또 은주처럼 마음씨 착한 아가씨를 알게 되였으니 그 또한 큰 수확인것 같았다. 병원에 들어와서 조카 하나 더 생겨난 기분이였다. 그러고 보니 그번 사고는 나에게 잃은 것도 많았지만 또 사랑이란 큰 선물을 얻은 셈이기도 했다. 퇴원해서도 나는 고마움을 잊을수 없어 은주어머님과 계속 련락을 주고 받으며 지냈고 은주가 결혼식을 올릴때에는 참가하여 선녀같이 예쁘고 착한 은주의 앞날을 축복해주었다.

그 병실에서의 인연은 단순한 ‘만남’이 아니라 아프고 외로운 시간 속에서 피여난 ‘사랑의 기적’이였다. 은주는 나에게 단지 간병인이 아니라 어려움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 ‘마음의 등대’였다. 나는 그 빛 덕분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이제 내 발목의 수술 자국은 ‘아픔의 흔적’이 아니라 은주가 남겨준 ‘따뜻한 온기의 기억’이다. 그 기억은 나에게 말한다. 세상에는 여전히 아름다운 마음들이 존재하며 그 마음이 우리를 다시 행복한 삶을 꿈꾸게 한다는 것을 말이다...

리명자 프로필

룡정시 조양공사 광석촌에서 출생

연변텔레비죤방송국에서 사업하다가 퇴직

연변작가협회 회원

2022년부터 문학창작 시작 

시조, 수필, 수기 등 수십편의 작품 발표


编辑:안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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