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송미 작가 묵향문학회 한국지회 사무국장
햇살이 창문 틈으로 살며시 스며들면 봄날의 상긋한 공기가 폐부 깊숙이 들어와 가슴을 부풀게 한다. 겨우내 굳어 있던 마음의 결이 풀리듯 따뜻한 빛은 조용히 나를 흔들어 깨운다.
온갖 생명이 소생하는 계절 속에서 자연과 함께 내 마음도 맑아지고 있다. 나뭇가지 끝마다 연둣빛이 스며들고 이름 모를 들꽃들이 하나둘 고개를 드는 풍경을 바라보며 나는 문득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한다.
친구들의 따뜻한 격려와 사랑 속에서 내 창작의 열정도 서서히 깊어지고 보이지 않던 상상의 씨앗들도 조용히 싹트는듯하다.
일상 속에는 여전히 힘들고 답답한 순간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 틈사이에서 건강을 챙기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보내온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 이제는 마음과 몸이 조금은 단단해진 느낌이다. 무너지지 않고 견뎌낸 시간들이 나를 용케도 지탱해 주고 있었다.
그날도 화창한 봄날이었다. 짝꿍인 그와 함께 들판을 걷고 있었다. 그는 예전보다 조금 느려진 걸음으로 내 옆을 나란히 걸었다.
“저길 봐, 아지랑이 아물대는 봄들판에 봄아씨 다가오는 것 보이잖니?”
그는 내 어깨에 손을 살짝 얹으며 속삭이듯 말했다.
“글쎄, 봄이 오니 기분은 좋지만 봄아씨는 그냥 봄의 대명사일 뿐이지.”
내가 웃으며 대답하자 그는 걸음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세상에, 너 그러고도 시인이니? 저 봄아씨를 봐. 눈썹도 파랗고 숨결도 파랗고 걸음새도 파랗고… 너 그런 걸 마음의 눈으로 보이지도 않니?”
그의 말은 농담처럼 들렸지만 어딘가 진지한 울림이 있었다. 나는 잠시 들판을 바라보았다. 바람이 스치자 풀잎들이 물결처럼 흔들렸고 멀리서 어린아이 하나가 노란 연을 들고 뛰어가고 있었다. 그 순간 정말로 보이지 않던 무언가가 서서히 형체를 드러내는 듯했다.
“네 말을 듣고 보니… 정말 그렇구나. 봄은 이미 우리 가슴에 들어와 있었네.”
내가 조용히 말하자 그는 만족한 듯 웃었다.
“그렇지? 이 시각, 너도 나도… 우리 모두 봄아씨인 거야.”
깔깔깔, 까르르—
호호호, 까르르—
우리의 웃음은 들판 위로 퍼져나갔다.
그렇게 걷다가 우리는 작은 개울가에 다다랐다. 물은 맑게 흐르고 있었고, 햇빛이 부서지며 반짝였다.
그곳에는 한 할머니가 쭈그리고 앉아 냉이를 캐고 있었다. 허리는 깊이 굽어 있었지만 손놀림은 놀라울 만큼 부드럽고 능숙했다.
우리는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어머니, 많이 캐셨어요?”
할머니는 얼굴을 들어 우리를 보더니 환하게 웃었다.
“이 정도면 한 끼는 되지. 봄에는 이런 게 제일 맛있어.”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냉이를 살짝 들어 보였다. 흙이 묻어 있었지만 그 안에는 봄의 향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듯했다.
“우리도 저렇게 봄을 캐며 살지 않을래?”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좋지머, 너는 나의 봄, 나는 너의 봄…”
할머니는 우리의 말을 듣고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옆에 있는 게 제일 큰 거야. 건강보다 더 큰 건 없어. 같이 밥 먹고, 같이 걷고… 그거면 됐지.”
그 말은 단순했지만, 이상하게도 가슴 깊이 내려앉았다.
다시 길을 나서며 나는 조용히 그의 손을 잡았다. 거칠어졌지만 여전히 따뜻한 손, 그도 아무 말 없이 내 손을 꼭 잡아주었다.
봄길을 걷는 우리의 가슴에는 어느새 봄향기가 가득 차 있었다. 계절은 우리를 감싸 안고 있었고 우리는 그 안에서 천천히 숨 쉬고 있었다.
그날의 햇살과 바람, 그리고 들판의 웃음은 오래도록 내 마음에 머물렀다. 아마도 그것은 우리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였기 때문일 것이다.
류송미 작가 프로필
1967년 10월 출생
1989년 연변대학 조문학부 졸업
35년 동안 교사사업에 종사
묵향문학회 한국지회 사무국장
시집 <어느날의 토크쇼> 출간
외 수필 가사 동시 동요 등 수십편 발표
[본 문장은 길림신문 해외판 발표이기에 한국어표기법을 그대로 두었음을 알려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