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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이야기14]감추고 싶었던 솜내의 

안상근      발표시간: 2026-03-30 13:57       출처: 길림신문 选择字号【

◎ 변철수

두만강 중하류 강변을 따라 자연촌들로 이루어진 작은 공사마을이 있었다. 인구 9천 명 정도인 그 시골마을들은 강물처럼 잔잔한 세월이 흐르던 곳이였다.

내가 소학교 1학년에 입학했을 무렵, 공사마을에는 두 개의 학교가 있었다. 하나는 공사 소재지인 삼합에, 다른 하나는 그 곳에서 20리쯤 아래에 위치한 북흥에 있었다. 고향 마을이 공사 지역의 상단에 자리하고 있었던 터라 나는 자연스럽게 삼합소학교로 등교하게 되였다.

어린 마음에 학교 가는 길은 늘 설렘과 즐거움의 련속이였다. 마을에는 유치원이 없었지만 삼합에는 있었다. 어느 날, 김필이라는 아이와 키 작고 곱게 생긴 녀자 아이가 무대에 올라 《장님이 코끼리 만지기》라는 제목의 단막극을 선보였다. 아이들이 재미있다고 웃음보를 터뜨렸고 나는 그들이 어찌나 부러운지 눈물이 날 지경이였다.

조선으로 통하는 삼합 교두에서 공사 마을까지 이어진 신작로에는 아름드리 백양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바람이 불면 나뭇잎들이 은빛으로 반짝이며 손짓하던 그 길을 걸을 때면, 나는 친구들과 함께 <푸른 가로수>노래를 목청껏 부르며 걷고 뛰였다.

그때 나에게 책가방은 사치였다. 책과 도시락을 보자기에 포개여 허리에 묶고 다니는 것이 전부였다. 엉덩이가 해진 바지는 나비 모양 천으로 덧대였고 무릎은 네모난 천으로 다시 기워 입었다. 재봉틀이 있는 집에서는 겉천과 속천을 함께 누비여 보기도 좋고 오래 입게 했지만, 우리 집에는 그런 여유가 없었다. 그렇게 정성스럽게 기운 옷을 보며 나는 늘 부러움을 삼켰다.

공소합작사에서 돼지를 잡는 날이면 아이들은 그곁을 한참씩이나 떠나지 못했다. 붉은 피가 대야에 쏟아지고 끓는 물에 담가 털을 뽑고, 몸통이 여섯 토막으로 나뉘는 과정을 우리는 숨죽여 지켜보았다. 그때 내가 가장 부러워한 것은 다름 아닌 돼지 잡는 사람들이였다. 살코기는 감히 엄두도 못 냈지만 피 묻은 손으로 지레나 콩팥같은 내장을 구워 술안주로 삼는 그들의 모습이 너무나 부러웠다. 그 시절 누가 장래 희망이 무엇이냐고 물었다면, 나는 서슴없이 '돼지 잡는 사람'이라고 했을 것이다.

못 먹고 못 입는 가난한 살림이였지만 학교 가는 길만은 늘 즐거웠다. 그러나 초중 1학년 때의 4월 말, 어느 봄날에 열린 교내 운동대회는 나에게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남겼다. 각 학년별로 1반과 2반이 편을 갈라 점수로 승부를 겨루던 날이였다.

2반 대표로 장애물 경기에 나선 나는, 후덥지근한 날씨에도 겉옷을 벗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선생님이 더운데 왜 입었냐고 벗으라 다그쳐도 나는 입을 굳게 다물고 옷자락만 움켜쥐였다.

달리기 시작을 알리는 호각이 울렸다. 홍정골의 윤성주가 먼저 뛰여나가 나보다 10메터쯤 앞서 달렸다. 그는 나의 경쟁 상대의 한 사람이였다. 첫 장애물은 땅에 펼쳐 놓은 배구 그물이였다. 선생님들이 그물 끝 노끈을 량쪽에서 잡아당겨 바닥에 붙이고 있었다. 앞서 달리던 성주가 그물을 들어야 밑으로 빠져나갈 수 있었는데 혼자서는 들기 어려워 허둥지둥거렸다. 바로 그때 내가 도착했다. 성주가 간신히 그물을 들어 올리는 사이, 나는 달려오던 힘을 빌어 오른팔과 어깨, 머리를 차례로 밀어넣고 몸을 날려 먼저 빠져나갔다. 이어 사다리 구멍 통과와 책상 뛰여넘기에서도 원래 속도가 빨랐던 나는 쉽사리 1등을 차지했다.

경기를 마치고 땀에 흠뻑 젖은 채 운동장을 나서는데 웃반 녀학생들이 달려와 “잘했다!”며 겉옷을 벗기려 들었다. 나는 단추를 꽉 움켜쥐고 발악하듯 버텼다. 그들의 순수한 친절과 나의 비굴한 고집이 맞부딪쳤고, 결국 나는 그들의 손을 뿌리치고 말았다.

하지만 경기에서의 승리가 2반에게는 기쁨이겠지만, 내게는 지옥과도 같았다. 관우가 술이 식기 전에 적장의 목을 베여 돌아올 때, 류비와 병사들이 환호하던 그 광경에는 미치지 못해도 개선하는 병사만큼은 흥분해야 할 내가 오히려 괴로워 몸부림치고 있었다. 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교실을 향해 달렸고 등뒤에서 울리는 대회의 스피커 소리와 서로 자기편을 응원하는 웨침 소리는 빠른속도로 뛰는 맥박소리에 눌려 윙윙거렸다.

교실 복도는 물청소 덕에 시원했다.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 나는 겉옷을 벗지 못한 채 뜨거운 땀을 식혔다. 속옷은 이미 흠뻑 젖어 끈적끈적했다. 다른 아이들은 여름용 빨간 인조섬유 티셔츠를 입고 신나게 웃고 떠들었지만 내 속옷은 둘째 누나가 손으로 뜬 솜내의였다. 가는 무명실에 면솜을 물레로 자아낸 굵은 실로 뜨개질해서 만든 옷이였다. 더운 봄날에 겨울 솜옷을 입은 셈이였다.

내게는 그 어떤 더위나 흐르는 땀보다 남의 시선이 더 견디기 힘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내의를 보여줘도 아무도 개의치 않았겠지만, 그땐 나의 속옷 비밀이 탄로날가봐 그게 그렇게 두려웠다. 땀이 나고 더운 것은 참을 수 있었다. 땀에 젖어도 저녁에 빨아 가마 뚜껑이나 아래목에 말려 다음 날 입으면 그만이였다. 그러나 오직 남이 보는 것만은 괴로웠다. 땀과 힘듦과 냄새는 참을 수 있어도 가난이 드러날가봐 전전긍긍 하는 창피함은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이제 머리에 흰 서리가 내린 나이가 되여 이 글을 쓰며 떠올린다. 그 옷이 싫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을 말이다. 누나가 지어준 옷이면 그저 좋았다고 말하고 싶다. 그 시절 나는 내 옷이 다른 사람의 옷보다 못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 옷은 누나의 따뜻한 손길이 깃든 세상에서 가장 좋은 옷이였다. 지금도 그 옷이 그립다. 지금도 있다면 기꺼이 입고 싶다.이 글을 쓰면서 눈물이 난다. 누나가 그리워서 울고싶다. 그 옷을 입혀 학교에 보내면서 누나는 얼마나 마음 아파했을가?! 생각할수록 눈물이 더 난다.

변철수 프로필

1956년 길림성 연길현 삼합에서 출생

중앙미술학원 유화계 졸업

길림성 왕청현 문화관 미술 촬영부실 주임 력임

왕청현 정치협상회 위원 력임

길림성미술가협회 회원

다수의 유화 미술 작품 창작발표하고 수차 국가급, 성급 미술상 수상.


编辑:안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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