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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 이야기10]소희를 찾아 헤맸던 그날의 기억 

안상근      발표시간: 2026-03-19 10:52       출처: 길림신문 选择字号【

 ◎ 김채옥

방학을 맞아 려행길에 오르는 학생들을 보면 30여 년 전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내가 룡정시 북신소학교 4학년 1반 담임을 맡았을 때의 일이다. 아이들의 성화에 못 이겨 시교육국에서 조직하는 하령영에 참가하기로 했다. 북경은 두어 번 다녀왔지만 못 가본 곳도 많고 또 학부모님들도 담임선생님이 함께 간다면 시름놓고 애들을 보내겠다고 해서 결국은 떠나기로 결심했다. 아이들한테는 시험을 잘 봐야 북경에 데리고 간다는 조건을 내걸었고 애들 또한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 마침내 함께 떠나게 되였다.

10여 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무더운 한여름날 북경으로 향했다. 한 주일이나 되는 려행일정이라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배낭 가득 짊어진 아이들은 땀을 흘리며 힘들어했지만 려행의 설렘이 모든 것을 무마시켰다.

하루 종일 좌석기차를 타고 북경에 도착한 우리는 풍경이 수려한 향산료양원에 짐을 풀었다. 빡빡한 일정 속에 세계공원, 동물원, 과학기술관, 이화원, 만리장성을 돌며 아이들은 시야를 넓히고 꿈을 키웠다. 나흘째 되는 날 새벽, 천안문광장에서 국기게양식을 보고 고궁을 참관한다는 말에 아이들은 더욱 들뜨고 잠들지 못했다.

다음 날 새벽 3시, 우리는 잠에서 아직 채깨지도 못한 아이들을 뻐스에 싣고 천안문광장으로 향했다. 도착했을 때 광장은 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국기게양식은 해돋이와 함께 시작되기에 반드시 해 뜨기 전에 도착해야 했다. 사람이 너무 많았던 까닭에 키 작은 아이들은 아무리 발돋움해도 국기게양식을 잘 볼수 없었다.

나는 좀 더 나은 자리를 찾아 아이들 손을 잡고 이동하기로 했다. 손에 손을 잡고 떨어지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며 줄지어 이동했는데 도착해 아이들을 세어보니 우리 반에서 제일 작은 '꼬맹이' 소희가 보이지 않았다.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도 소희는 없었다.

당황했지만 30여 명 아이들을 책임져야 했다. 아이들에게 그 자리에서 꼭 기다리라고 당부하고는 원래 자리로 달려갔다.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다녀도 노란 모자를 쓴 소희는 없었다. 그 순간부터 나는 정말 당황하기 시작했다.

넓은 광장, 수만 명의 인파 속에서 소희를 잃어버렸다는 생각에 겁이 났다. 뒤에서 아이들을 관리하던 허선생님도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다시 한번 기다리라고 당부하고는 미친 듯이 소희를 찾아 나섰다.

처음에는 조금 당황하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찾을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있었기에 천안문광장과 그 주변을 헤매고 다녀도 다리가 아픈줄도, 배고픈줄도, 힘든줄도 몰랐고 갈증에 목소리가 갈아앉아 나오지 않아도 물마실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절망이 가슴 한가득 차올라 미친녀자처럼 소희만을 소리쳐 부르며 뛰여다녔다. 조선말로 소희를 불러대며 미친 사람처럼 마구 사람들속을 헤집으며 뛰여다니는 나를 보고 모두들 미친사람 아니냐는 표정이였지만 나는 언제 그런걸 헤아릴 게제가 못되였다. 그렇게 목이 쉬도록 찾아 헤맸지만 여전히 소희를 찾을수 없었다. 아이를 잃어버렸다는 생각에 랍치된 건 아닌지, 교통사고를 당한 건 아닌지 무서운 상상만 가득했다.

문장의 리해를 높이기 위해  AI기술을 리용해 생성한 사진임-편자 주

부모님들의 믿음과 부탁을 받고 애들을 데리고 왔는데 아이를 잃어버렸으니 이제 어찌해야 하나. 지친 몸으로 아이들 곁에 돌아왔을 때, 그들도 근심 가득한 얼굴이였다. 너무 애간장이 타서 죽고 싶은 심정까지 들었지만 남은 아이들을 위해 정신을 차려야 했다. 애써 태연한 척하며 아이들을 집합 장소로 데려갔다.

룡정에서 함께 온 팀들이 모이기로 한 약속 장소에 도착했을 때였다. 함께 온 한족학교의 왕선생님이 "이 학생이 선생님네 학교 학생 아니예요?" 하며 내 앞에 소희를 내세웠다.

영영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소희를 보는 순간, 나는 다리 맥이 풀리며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눈물이 줄줄 흘러 내렸다. 새벽부터 지금까지 정신없이 찾아 헤맨 소희가 이렇게 내 앞에 서 있다니, 꿈만 같았다. 나는 그 애를 와락 끌어안았다.

참으로 한바탕 악몽 같던 시간이였다. 정말 소희를 잃어 버렸다면 무슨 낯으로 학부모님을 대했을가? 그때의 막막함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후에 알고 보니 소희는 국기게양식이 잘 보이지 않아 앞으로 비집고 나가다가 노란 모자를 쓴 아이들이 줄지어 가는 모습을 보고 우리 학교 아이들인 줄 알고 따라갔던 것이다. 같은 지방에서 온 학생들은 모두 같은 모자를 쓰고 있었기에 뒤모습만 보고 다른 학교 학생들을 따라가게 된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그리고 허선생님은 아이들이 내 뒤를 잘 따라온다고 생각해 별일 없으리라 여긴 것이 화근이였다.

담임을 하면서 많은 일을 겪었지만, 그날의 기억만큼은 지금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그날 함께했던 제자들도, 대오에서 떨어졌던 소희도 언젠가 모여 앉으면 그날의 에피소드를 떠올릴 것이다. 북경 거리를 울먹이며 미친 듯 뛰여다니던 나의 못난 모습도 함께 떠올리리라. 그만큼 소중하고 잊지 못할 추억을 함께 한 제자들이 오늘은 어디에선가 열심히 뛰면서 살아가고 있겠지만 언젠가는 그들도 그때의 내 심정을 리해하리라 믿는다.


김채옥 프로필

1962년 연길현 광신향 출생

1981년부터 2017년까지 룡정시 북신학교와 룡정북안학교에서 교원사업에 종사 

2010년 연변작가협회에 가입, 

 수필, 시, 동시 등 백여편 발표


编辑:안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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