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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길림신문] 애독자들의 영원한 벗

안상근      발표시간: 2025-12-01 11:45       출처: 길림신문 选择字号【


남옥란

1990년 5월에 나는 룡정시교원연수학교에서 연변제일사범학교로 전근했다.

룡정시교원연수학교에 근무할 때 학교도서관에서 사업하였던 까닭에 신문 잡지를 읽는데 특히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사범학교에 전근된후 나는 학교의 시청각교연실에 출근하였다. 그때는 전 사회적으로 한창 전기화 교육열이 일기시작하던때여서 교연실에는 마련된 영상자료가 많았는데 재미있는 영화며, 련속 드라마, 노래영상도 기수부지였다. 하지만 나는 종이 신문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없었고 하루라도 신문을 읽지 않으면 무엇을 잃은 것처럼 허전하여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해마다 《길림신문》도 일년분을 한꺼번에 주문하였다. 한 과실에 계시는 선생님들은 학교 열람실에도 매일 신문이 있고 당직실에도 신문이 비치되여 있어 빌려 보아도 되는데 하필 아까운 돈을 팔면서 신문을 주문하냐고 의아해했다. 하지만 나는 집 식구들도 함께 보아야 한다며 기어코 신문을 주문해 보았다. 신문을 자주 읽으면서 또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올라 독자로부터 원고 투고자로 되고 싶어졌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교육적 가치가 있는 글감을 찾느라고 머리를 짜서 생각을 굴리군 하였다.

90년대에는 연변축구가 상당히 인기가 있을 때였다. 홈장 경기가 있을 때면 직접 축구장에 가서 보았고 원정경기는텔레비전을 통해 구경하였는데 연변축구 건아들의 씩씩한 모습이 머리속에 생생히 각인되였다. 20살 미만의 젊은 선수들이 경기에서 이겨 보겠다고 죽을 힘을 다해 뛰였지만 뜻대로 되지 않을 때도 많았다. 경기에서 지거나 하면 문명하지 못한 관중들이 생수병을 선수들에게 내던지면서 듣기 거북한 욕사발까지 퍼붓는 일도 있었다. 나는 내 자식같은 축구선수들이 그런 비무명한 대우를 받는 것이 몹시 가슴이 아팠다. 그래서 대중을 일깨우는 글을 쓰고 싶어졌다.

그래서 <져도 탓하지 않아요>란 제목으로 글을 써서 《길림신문》에 투고하려고 찾아갔다. 나는 원고지를 손에 들고 단숨에 《길림신문》편집 사무실에 뛰여 올라갔다. 젊은 남성 편집일군이 내가 쓴 글을 조용히 읽어 보더니 “글이 참 좋습니다. 이 글을 아주머니가 직접 쓰셨어요?”라고 인자하게 묻던 일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고 잊혀지지 않는다.

그 글이 바로 1996년 1월 27일부 《길림신문》에 발표되였다. 그때는 짤막한 기사 한 편이 신문에 발표되여도 무슨 큰 일이라도 한듯 우월감을 느끼던 때였다. 그 짧은 글이 내가 《길림신문》에 발표한, 그리고 문학의 쪽문에 발을 들여놓게 된 가장 첫 문장이였다.

더욱 나를 기쁘게 한 것은 과실 내의 선생님들이 《길림신문》에 게재된 내 글을 읽고 수요일 학습 시간에 '어떻게 문명한 축구 팬이 될 것인가' 를 주제로 학습 토론모임까지 펼친 것이였다. 짤막한 글 한 편이 막강한 정신적 에너지를 생성하였으니 기쁘기 그지없었다.

그후 나는 다 보고 난 신문들은 착착 접어 두었다가 시골에 계시는 시아버님에게 우편, 혹은 인편에 보내 드렸다. 한참 투병중이여서 마을 독보조에도 다닐 수 없고, 친구들과도 자주 만날 수 없어 사회와의 모든 소식이 끊어져 고독해하시던 시아버님은 너무 반가워 하셨다. 시아버님은 온 하루 신문에 파묻혀 살다싶이 하셨다. 신문이 너덜너덜해지면 밥풀로 붙여서 건사하였다. 아버님은 병으로 인해서 소식통이 막혀버렸는데 자네 때문에 문이 다시 열렸다고 그렇게도 기뻐 하셨다.

지난 30여 년 동안 《길림신문》은 나와 우리 식구, 친인들에게 무궁한 열량과 지식을 전수하여 주었다. 영화를 보거나 연출을 보려면 시간을 랑비하고 시간상 제한을 받는 현상이 존재하지만 신문은 짬짬히 자투리 시간에 묵독할 수 있어서 좋았다. 손을 거치고 다른 사람에게 넘겨 주기만 하면 다른 분들도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발이 없는 신문이 손에서 손을 거치면서 전 연변의 도시와 농촌이 신문 구독열에 빠지던 그때가 행복한 시기였다. 신문이 여기저기 돌아다녀서 신문이 구문이 되였다고 우스개 소리도 들었다. 하지만 신문이 닳아 떨어지고 낡았더라도 신문에 게재한 다양한 생활정보며 문학작품들이 류통기한이 지났다고 말하기는 어렵지 않는가?! 독자들에게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재미있는 문학작품을 게재했던 《길림신문》은 애독자들의 영원한 벗이였다.

이후에도《길림신문》이 독자들의 애대를 받는 좋은 신문으로서의 작용을 계속해서 발휘해 나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는 영원히 《길림신문》의 충실한 애독자가 될 것이다.


编辑:안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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