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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길림신문] 후회없는 사업에 혼신을 쏟아온 세월

김파      발표시간: 2025-09-17 17:09       출처: 길림신문 选择字号【

◎ 함길자

《길림신문》과 함께한 시간을 손 꼽아보니 어언 16년이 된다.  2009년 4월 23일, 《길림신문》 제6면에 <후회 없는 사업에 혼신을 바쳐 20년>(글 리강춘)이란 제목으로 된 나의 사업담이 실렸다. 한 평범한 시골 녀교원에게는 대단히 큰 영광이였다. 이 해부터 《길림신문》은 나의 동반자가 되였고 매년마다 《길림신문》을 주문하여 열심히 탐독했다.

《길림신문》에 개인 사적이 실리고 선후로 여러 매체들에 방송 출연을 하면서부터 나는 사업에 대한 책임감이 더욱 높아졌으며 선배님들의 부탁대로 초심을 잃지 않고 노력을 경주하였다.

누군가 ‘도전은 아름답다’고 했다. 나는 대담하게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었다. 2009년 6월, 나의 첫 대필글 <울고 웃는 인생 스토리>가 《길림신문》에 실렸다. 내가 쓴 글이 활자로 찍혀 신문에 실리다니 정말로 꿈만 같았다. 나는 너무도 신기하고 자랑스러워 신문을 들가방에 넣고 다녔고 여유시간에는 읽고 또 읽으면서 새롭게 충전했다.

나는 어깨가 으쓱했다. 이번에는 대필글이 아닌 나 자신이 직접 겪고 느낀 점들을 쓰고 싶었다. 몇십년간 애들과 함께 했던 올망졸망한 추억보따리들이 소중하기만 했다. 한족 친구들이였던 주묘, 당박이, 두소영, 왕흠과 조선족학교에 입학하여 발음법과 일상용어들을 힘들게 익히던 에피소드들이 생생하게 떠오르면서 머리속을 맴돌았다. 나는 며칠 밤을 지새우며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다가 드디여 <내 마음의 별들아...> 라는 제목의 첫 작품을 완성했다.

‘하루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나는 용기를 내여 주저 없이 제4회 《길림신문》 ‘인성교육 교원상’에 투고했다. 처음 쓰는 글이라 망신할가 봐 두렵고 조마조마 했지만 운좋게도《길림신문》에  글이 실렸다. 2010년 3월에는 우수상으로 선정되였다는 기쁜 소식까지 접했다. 글이 실린 것만으로도 만족인데  상까지 타게 되니 그때의 기쁨과 자랑을 한입으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2000년도부터 우리 학교는 큰 변화가 일어났다. 학생 인수가 급격히 줄어들었고 해외로 진출하는 교원들이 줄을 섰으며 도시학교로 전근되여 간 동료 친구들도 많았다.

어느 하루, 퇴근하고 집에 들어서니 ‘따르릉 따르릉...’ 전화벨이 심상치 않게 울렸다. 고중 친구한테서 걸려온 전화였다.

“길자야, 아직도 그 곳에 있나? 더 늦기 전에 빨리 나오라, 나는 한국 회사에 출근하는데 한달에 너네 일년 월급을 탄다. 너의 리력을 보내달라, 내가 추천해줄게.”

“아니야, 난 마음의 준비가 안됐어. 아직 떠날 상황도 안되고......”

얼버무리며 거절은 했지만 머리속이 복잡해지고 손에 일이 잡히지 않았으며 망설이기까지 하였다. 

‘준비된 사람에게는 기회가 온다’고 모순된 심리 속에서 갈팡질팡 헤매며 몸부림을 치는 나에게 짠하고 《길림신문》이 기적처럼 나타났던 것이다. 《길림신문》은 보석보다 더 값진 최고의 선물이였으며 나에게 방향을 잡아주었고 자신의 취미를 찾게 하였다.

묵묵히 우직하게 시골 교단을 지키던 나는 2009년부터 제2 전성기를 맞이했다. 새로운 욕망과 꿈이 생겼고 모든 잡념이 가뭇없이 사라졌다.

교원수기 <어린이마다 꽃처럼 피게>, <미안하다 얘들아>, <생일선물>, <나는 행복합니다> 등 글들이 륙속 《길림신문》에 실렸다. 몇십년 동안 마음속에 하고 싶었던 말들을 글로 표현하니 속이 뻥 뚫린 기분이였다. 비록 물질적 부자는 아니여도 정신적으로 부자가 되니 하는 일마다 행복했고 세상이 다 밝아 보였다.

나는 사회의 락오자가 되고 싶지 않았고 떳떳한 인민교원이 되고 싶었다. 부모들의 외국진출은 우리 아들에게 아픔과 상처를 남겨주었다. 나는 리향, 남호, 연미, 춘영의 눈물겨운 일상들을 정리하여 ‘인성교육 학생상’에 투고했다. 학생들의 글이 투고한 순서대로 신문에 실릴 때마다 학생들과 나누는 기쁨은 배로 커졌다. 우리는 서로서로 손잡고 교탁을 중심으로 빙빙 돌기도 했으며 어른인 나는 아이들처럼 퐁퐁 뛰며 기뻐했다. 그중 리향의 글 <후회>는 제4회 우수상으로 선정되여 반짝반짝 빛나는 영예증서와 묵직한 상금까지 받았다. 

전교가 들썩했다. 나와 리향은 전교 사생대회에서 표창을 받았고 나는 련속 2년간 선진사업자로 당선되였다.

《길림신문》은 내 취미를 키워주었고 꿈도 영글어가게 했다. 2014년, 나는 오매불망 그리던 작가협회 회원증을 받아 안게 되였다. 5년 사이 《길림신문》과 같은 우수 간행물에 70여편의 수기뿐만 아니라 신문기사도 발표하였으며 2013년 연변작가협회 제3회 ‘가야하’ 인터넷 문학상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나는 몇년간 《길림신문》을 애독하고 글 쓴 보람을 느꼈다. 2021년, 조선족학교가 하나 둘 문을 닫으면서 우리 학교도 페교를 선포했다. 마지막으로 학교를 위해 무엇을 할까 생각하다가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으로 《천교령진조선족학교력사》란 제목으로 1934년 학교가 창건된 이래 86년간의 유구한 력사를 기록한 책을 출판하여 학교 당안에 남겼는데 큰 위안이 된다. 



编辑:안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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