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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문화유산] 아쟁, 줄을 타고 흐르는 민족의 혼

안상근      발표시간: 2026-04-07 10:43       출처: 길림신문 选择字号【

주급무형문화유산 아쟁 전승인 장위령의 이야기

연길시조선족무형문화유산보호쎈터의 연습실, 은은한 나무 향기가 배여 있는 공간에서 묵직하면서도 따뜻한 저음이 흘러 나온다. 마치 깊은 산골짜기에서 흐르는 계곡물처럼, 혹은 오랜 세월을 견뎌낸 로인의 목소리처럼, 그 소리는 듣는 이의 가슴 깊숙이 파고들어 정적인 울림을 남긴다. 이것이 바로 조선족의 대표적 현악기이자, 활현악기(弓弦乐器)인 아쟁(牙箏) 의 소리이다. 그리고 그 소리를 현대에 되살려 조선족 전통음악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이가 있는데 바로 주급무형문화유산 아쟁의 제5대 전승인 장위령이다. 그녀의 손가락이 아쟁의 줄을 어루만질 때 그것은 단순한 연주가 아닌, 한 민족의 력사와 정서가 현대를 향해 속삭이는 순간이 된다.

잊혀져 가는 소리를 찾아서

1983년생인 장위령은 어린 시절부터 전통 음악이 점차 사라져 가는 환경을 목격하며 자랐다. 대중가요와 서양 음악이 주류를 이루는 시대 속에서 조선족 고유의 악기인 아쟁의 존재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만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처음 아쟁 소리를 들었을 때 묘한 느낌이 들었어요." 그녀는 회상한다. "익숙하지 않아서 낯설기도 했지만 그 속에서 어떤 깊고 오래된 정서가 느껴졌습니다. 마치 우리 할머니의 옛이야기를 듣는 것 같았죠."

당시 아쟁은 다른 민족 악기인  '고쟁'과 혼동되기도 했고 심지어 많은 젊은이들조차 그 존재를 모르는 상황이였다. 전문 연주자는 고사하고 악기를 제대로 만드는 장인조차 찾기 어려울 지경이였다. 이러한 '소실의 위기'를 직감한 장위령은 이 소중한 문화유산이 력사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볼 수만은 없다는 강한 사명감을 느꼈다. 그녀의 결심은 단호했다. 스스로가 그 '소리'의 전승자가 되여야 한다고 결심을 내렸다.

스승으로 부터 이어받은 '계보의 승계'

장위령의 려정은 쉽지 않았다. 아쟁에 대한 체계적인 교재나 교육과정은 존재하지 않았고 배울 수 있는 곳도 극히 제한적이였다. 그러던 중, 제2대 아쟁 전승인 박영곤 선생님을  알게 되였다. 장위령이 몸담그고 있는 연길시조선족무형문화유산보호쎈터에서 조선족 예술단체라는 플래트홈을 활용하여 후속 인재를 양성하면서 연변대학 예술학원, 연변가무단 등 전문 예술 단체와 긴밀히 협력해 전문 예술가들을 초빙하여 아쟁연주 기법을 가르치고 아쟁예술을 중요한 민족음악 프로젝트로 선정한 덕분이였다.

박영곤선생님은 1980년대부터 연변예술학교에서 조선족 아쟁 연주 기술과 <산조>, <문인음악>, <궁중음악> 등 다양한 곡목과 연주 기법을 가르쳤으며 수많은 우수한 조선족 아쟁 연주자들을 양성했다. 

박영곤선생님으로부터 아쟁연주기술을 전수 받고있는 장위령

장위령은  2018년도부터 박영곤 선생으로부터 직접 지도를 받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얻었다. 이것은 단순한 악기 학습이 아니라 한 선배 예술가로부터 삶과 예술, 그리고 문화 전승에 대한 모든 것을 이어받는 '계보의 승계' 순간이였다.

"처음 스승님을 뵈였을 때, 스승님의 손때 묻은 아쟁을 보았어요." 장위령은 당시를 떠올리며 말한다. "그 악기에는 스승님의 시간과 열정, 그리고 이 악기를 지키려는 간절한 마음이 서려 있었습니다. 저는 그 무게를 느끼며 이 맥을 절대 끊어서는 안 된다고 다짐했습니다."

전통을 배우고, 현대를 풀어내다

박영곤 선생님에게서 장위령은 단순한 연주법을 넘어선 것을 배웠다. 우선 아쟁 고유의 연주 기법과 해석이였다. 아쟁은 활로 줄을 문지르는 활현악기로 그 활의 압력과 속도, 운궁법에 따라 무한한 음색을 만들어낸다. 특히 조선족 음악의 정수인 '산조(散調)' 중에서도 깊은 애조를 담은 '남도(南道) 계면조'를 표현하는 데 있어 아쟁만이 가진 독특한 음색과 표현력은 다른 어떤 악기로도 대체할 수 없는 것이였다. 장위령은 〈아쟁산조〉, 〈시나리〉, 〈중모리〉 등 전통 곡목의 정밀한 악보와 운지를 일일이 익혀나갔다.

그 다음은 악기에 대한 리해였다. 아쟁은 크기에 따라 대아쟁, 중아쟁, 소아쟁으로 나뉘며 공명통의 목재(무궁화나물, 가래나무 등), 줄의 재질(비단실, 금속줄), 심지어 줄을 조이는 '염미(染尾)'라는 매듭의 방법까지 세세한 전통 제작법이 존재했다. 장위령은 연주자이자, 악기의 구조와 력사를 리해하는 연구자로서의 자세를 동시에 키워나갔다.

그러나 그녀의 공부는 과거에 머물지 않았다. "전통은 보관하는 것이 아니라 호흡하는 것"이라는 스승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장위령은 아쟁의 소리를 현대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언어로 풀어내는 실험을 시작했다. 전통 산조의 선률에 현대적인 화성을 더하거나 다른 민족 악기와의 협연을 통해 새로운 음악적 색채를 창조해 나갔다. 그녀의 목표는 '박물관 속 악기'가 아닌 '오늘의 무대에서 살아 숨 쉬는 악기'로 아쟁을 재탄생시키는 것이였다.

외롭고 험난한 전승의 길... 희망의 씨앗을 뿌리다

전승자의 길은 고독하고 험난했다. 가장 큰 장벽은 후계자 부족이였다. 아쟁을 배우려면 긴 시간과 인내가 필요했지만 이를 직업으로 삼아 생계를 유지하기는 어려운 현실이다. 젊은이들은 생존의 압박과 빠르게 변하는 문화 트렌드 속에서 전통 음악을 배우기보다는 다른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재정적 지원의 부족 역시 장벽이였다. 악기 구입, 악보 정리, 연구 활동, 공연 기획 등 모든 것이 자비로 이루어져야 했다. 전문 연주자 한 명을 키우기 위해 필요한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과 재정적 토대는 아직 멀리 있었다. 인식의 부재 역시 큰 장벽이였다. 일반 대중, 심지어 같은 조선족 공동체 내에서도 아쟁에 대한 관심과 리해는 매우 낮았다. 장위령은 "연주회에 와 주신 관객 분들로부터  '이게 무슨 악기냐'는 질문을 수없이 받았다"면서 "전통의 단절이 얼마나 깊은지 절감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위령은 좌절하지 않고 작은 변화부터 만들어나갔다. 그녀의 노력은 크게 세 가지 방향으로 펼쳐졌다.

첫째, 교육과 보급이였다. 그녀는 연길시직업학교 등에 출강하여 학생들에게 아쟁의 기본을 가르쳤다. 처음엔 호기심 반, 장난 반으로 시작한 학생들도 시간이 지나며 아쟁의 독특한 매력에 빠져 들었다. 또한 지역 문화쎈터나 작은 공연장에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무료 강좌와 체험 프로그램을 열어 '접근성'의 장벽을 낮췄다.

둘째, 공연과 협업을 통한 활로 모색이였다. 단독 공연뿐만 아니라 관현악단과의 협연, 현대 무용이나 영상 예술과의 협연 등 다양한 장르와의 만남을 시도했다. 이를 통해 전통적인 아쟁의 이미지를 탈피하고 '현대적이고 감성적인 악기'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구축해 나갔다.

셋째, 체계적인 기록과 연구였다. 스승으로부터 배운 모든 연주법과 곡목을 디지털 영상과 음원으로 남기기 시작했고 아쟁 관련 력사 자료, 악보, 각 시대별 전승자의 이야기를 수집하여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이는 미래의 전승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는 필수적인 작업이였다.

새로운 울림, 그리고 미래로

"저의 역할은 단지 옛 방식을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세대가 아쟁과 대화할 수 있는 창을 여는 것입니다."

장위령은 자신의 사명을 이렇게 정의한다. 그녀의 연주는 전통의 틀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그 안에 현대인의 감성과 호흡을 불어넣고 있다. 그녀의 손끝에서 나오는 아쟁의 소리는 더 이상 낡은 유물의 신호가 아니다. 그것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 삶에 대한 성찰, 그리고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담은 살아 있는 예술의 목소리로 재탄생하고 있다.

최근 그녀는 젊은 음악가들과 함께 실험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아쟁의 가능성을 넓혀가고 있다. 전자음악과의 결합, 실험적인 공연 형식 등 도전은 계속되고 있다. 또한, 그녀가 가르친 제자 중 일부가 본격적으로 아쟁의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제6대’ 전승인의 희망적인 싹도 보이고 있다.

조선족 전통음악의 깊은 울림을 간직한 아쟁, 그 소리가 력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을 때 장위령은 고독하지만 단호한 걸음으로 그 앞을 막아섰다. 그녀의 려정은 단순한 악기 전수가 아닌 민족 정체성의 한 축을 지키고 그것을 미래로 련결하는 문화 생명선 가치 지키기의 실천이였다.

한 사람의 열정이 모여 흐름이 되고 하나의 소리가 모여 교향곡이 되듯이 장위령의 노력은 이제 조용하지만 확실한 파문을 만들고 있다. 아쟁의 줄을 타고 흐르는 소리는 과거로부터 온 메시지이자 미래를 향해 던지는 질문이다. 그리고 그 소리가 끊이지 않고 흘러갈 수 있도록 장위령과 그 동료들은 오늘도 민족의 마음속에 영원히 간직될 멜로디를 조용히 그리고 끈질기게 만들어 가고있다.

/길림신문 안상근 기자 

사진제공: 연길시조선족무형문화유산보호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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